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 강일나들목에서 빠져나와 팔당대교 쪽으로 10여 분 달리면 '나무 고아원'이라 쓰인 높다란 나무 푯말을 볼 수 있다. 문자 그대로 이곳에는 갈 곳 없는 나무들이 모여 사는 특별한 고아원이 있다.

여름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가로수였지만 꽃가루가 너무 많이 날려 천덕꾸러기가 된 버즘나무, 도로 확장 공사로 베어지기 직전까지 갔던 강변 국도의 소나무, 해마다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지만 군부대 건물을 새로 올리면서 폐기될 뻔한 감나무 등 한때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지만 결국에는 버려진 나무들이 여기에 있다.

지난 16일 조재훈(56) 하남시청 공원녹지과장의 안내를 받아 나무 고아원(하남 망월동)을 둘러봤다. 조 과장은 입구에 우뚝 선 수양버들 한 그루를 가리키며 말문을 열었다. "이 나무가 수술만 세 번을 받았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거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이렇게 건강해졌어요. 이제는 나무 고아원의 '랜드마크'가 됐습니다."

높이만 15m에 달하고 수령도 50년 가까이 됐다는 수양버들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2001년, 한 공사 현장에서 이미 반쯤 베어진 것을 어렵게 옮겨왔지만 줄기 대부분이 썩어 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때부터 힘겨운 사투가 시작됐다. 썩은 부분을 도려내 살균·살충 처리하고 인공 나무껍질을 덧씌워 새살이 돋아나길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수술받은 것이 지난 2010년. 햇수로 10년이 돼서야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생사의 고비를 수차례 넘기고서야 푸른 잎을 드리우게 된 수양버들과 마찬가지로 나무 고아원 나무들은 저마다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여느 수목원 나무들이 곧게 뻗은 각선미와 여러 갈래로 뻗은 풍성한 가지를 자랑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곳 나무들은 사실 좀 못난 편이다. 이리저리 휘어 있는 것은 기본이고, 줄기에 상처가 깊게 팬 나무들도 더러 보였다.

"하남시 춘궁동에서 옮겨온 이 느티나무들은 누렇게 떡잎이 생겨 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로 폐기될 뻔했어요. 여기 은행나무는 나무를 심기만 하고 돌보지 않아 심한 병충해를 입었고요. 주인이 '혹시 살릴 방법이 없느냐'고 전화를 해와 저희가 데려오게 됐죠. 나무도 사람과 같아서 제대로 관리해 주지 않으면 아프거나 모나게 자라기 마련입니다. 지금은 다들 건강해졌지만, 예전에 받은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모양이 제각각이에요."

나무 고아원이 문을 연 건 지난 2001년의 일이다. 하남시청이 시내 가로수 교체 사업을 하면서 오갈 데 없어진 버즘나무 700여 그루를 현재의 나무 고아원 부지에 옮겨 심은 게 그 시작이었다. 뒤이어 은행나무, 느티나무, 홍단풍나무 등 수천 그루가 이사를 오면서 '나무 고아원'이라는 이름의 수목원이 조성됐다.

현재는 8만9000㎡ 부지에 50여 종, 1만5000여 그루가 뿌리내려 울창한 숲을 이뤘지만, 나무 고아원이 처음부터 '꽃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을 갈아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토양으로 만드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묘목상에게서 나무를 사오는 비용보다 버려진 나무를 옮겨와 심고 가꾸는 데 훨씬 더 큰돈이 들었기 때문에 '예산을 낭비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조재훈 과장은 "말 못 하는 나무라 해도 모두 소중한 생명인데, 조금만 보살펴주면 살 수 있는 나무들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고 했다.

땀과 애정을 쏟은 세월이 벌써 17년. 이곳에서 건강을 회복한 나무 1000여 그루가 조경수나 가로수로 '입양'돼 나가기도 했다. 나무들의 쉼터였던 나무 고아원이 이제는 시민의 휴식 공간이자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성과다. 오는 27일에는 나무 고아원 내 3만㎡ 부지에 조성된 '유아 숲 체험원'도 문을 연다. 어린이들이 버려졌던 나무들을 보고 만지며 자연과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깨우치도록 하는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날 초등학교 1학년 자녀와 함께 나무 고아원을 찾은 조은숙(41)씨는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이런 곳에 같이 와 직접 느끼게 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며 "'나무야 아프지 마' 하며 수술받은 나무를 쓰다듬는 아들을 보니 한 번 더 이곳에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