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인터뷰] 역도 유망주 이선미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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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10 10:00

수줍은 열일곱살 소녀, 장미란 기록도 뛰어넘다

"'제2의 장미란'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부담스러워요. 제 이야기가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것도요. 다음에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거든요. 올림픽에 나갈 때까지 사람들이 저를 몰랐으면 좋겠어요."

지난 8일 오후, 경산 경북체육고등학교 역도체육관에서 만난 '소녀 역사(力士)' 이선미(17) 선수가 수줍어하며 말했다. 이 학교 2학년인 그는 한국 역도계에서 가장 빛나는 유망주. 올해 6월 '역도 여제' 장미란(34)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세운 여자 고등부 최중량급 기록을 깬 데 이어, 지난달 전국체전에서 대회신기록을 수립하며 2관왕에 올랐다.

	이선미 선수가 경북체고 역도체육관에서 바벨을 잡고 활짝 웃고 있다.
이선미 선수가 경북체고 역도체육관에서 바벨을 잡고 활짝 웃고 있다. 그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3학년 선배 김지현을 라이벌로 꼽으며, “언니가 나보다 더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면 자극이 된다”고 했다. / 경산=조현호 객원기자
고 3 장미란 기록, '고 2 이선미'가 넘어서다

이날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체육관에 온 그는 어기적댔다. "전국체전이 끝나고 4박 5일간 휴가였거든요. 어제 오랜만에 훈련했더니 다리에 알이 잔뜩 배겼어요. 휴가 동안 뭐했느냐고요? 밀린 잠을 실컷 자고, 놀이공원에도 다녀왔어요."

이번 전국체전에서 여자 고등부 75㎏ 이상급 경기에 나선 이선미는 합계 266㎏(인상 118㎏, 용상 148㎏)을 들어 올렸다. 높디높았던 '장미란의 벽'을 뛰어넘은 지난 6월의 기록(인상 117㎏, 용상 146㎏, 합계 263㎏)을 불과 4개월 만에 늘린 것이다. 인상은 바벨을 한 번에 머리 위로 양팔이 쭉 펴지도록 드는 종목. 용상은 바벨을 먼저 어깨까지 들어 올린 다음, 머리 위로 드는 종목이다.

"순간 괴력이 나왔나 봐요(웃음). 사실 손목 부상 때문에 6월 기록만 나와도 성공이었거든요. 6월에 그 기록을 세웠을 때는 정말 꿈꾸는 기분이었어요. 구름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느낌? 이상하게 몸도, 바벨도 가볍더라고요."

이선미는 실전에 강한 스타일이다. 연습 때 부진하다가도 시합 때 자신의 최고 성적을 낸다. "대회 직전에는 무척 떨려요. 몸무게를 재고 경기를 하기까지 2시간 정도 시간이 있거든요? 이때 계속 왔다갔다해요. 그런데 이상하게 경기장에 서면 긴장이 사르르 풀려요. 어차피 지나갈 순간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바벨을 든 제 모습이 웃겨서 막 웃을 때도 있어요."

현재 키는 174㎝. 장미란(170㎝)보다 체격 조건이 좋다. 몸무게는 120㎏으로, 이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매일 5시간가량 강도 높은 운동을 하는 만큼 자칫 방심하면 살이 빠지기 때문이다. 끼니마다 고봉밥을 먹고 초콜릿과 젤리 같은 간식을 달고 산다. 고기는 한 번에 5인분을 후딱 해치운다. "한동안 살이 안 쪄서 고민이었어요. 이제 노하우가 좀 생겼죠. 하하."

쉴 때는 영화나,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영상을 찾아본다. "체육관을 나오는 순간, 머릿속에서 역도를 아예 지워버려요. 그래야 운동할 때 더 집중할 수 있거든요."

	수줍은 열일곱살 소녀, 장미란 기록도 뛰어넘다

	수줍은 열일곱살 소녀, 장미란 기록도 뛰어넘다
"올림픽에서 바벨을 멋지게 들어 올릴래요!"

이선미가 역도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체육 시간에 강당에서 친구들과 농구를 하다가 스카우트 나왔던 경북체고 역도 감독 눈에 띄었다. 당시 키 170㎝, 몸무게 80㎏으로 역도 하기 적합한 체격을 갖췄기 때문이다.

"엄마가 그러시는데 아기 때 분유를 남들의 2~3배 먹었대요(웃음). 커서도 먹는 걸 워낙 좋아해 배부른데 먹고 또 먹었어요. 운동은 원래 싫어했어요. 하지만 역도는 왠지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낯설면서도 흥미로웠어요."

처음에는 15㎏짜리 바(bar)도 들지 못했다. 바벨이 바닥에 떨어지며 내는 "우당탕탕" 소리도 무섭게 느껴졌다. 상·하체를 단련하는 훈련도 버거워 운동을 자주 빼먹었다. 경북체중에 진학하고 나서도 방황은 이어졌다.

"중학교 3학년 때 엄마한테 선언했어요. "소년체전에서 3관왕 못하면 역도 그만둘 거야!" 역도를 하기 싫어서 한 말인데, 진짜로 해낸 거 있죠. 연습량도 턱없이 부족했는데 말이에요. 역도를 계속 하라는 하늘의 계시였나 봐요."

이후 마음을 다잡고 성실하게 바벨을 들었다. 나가는 대회마다 시상대에 섰고, 신기록 행진을 펼쳤다. 올해 국가대표로도 발탁됐지만 그 자리를 정중히 사양했다.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다.

"스물한 살쯤 태극마크를 달고 싶어요. 새로 만들어진 진천선수촌이 그렇게 근사하다면서요? 언젠가 저도 그곳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꿈을 키워나가겠죠(웃음)? 장미란 선수처럼 실력도 뛰어나고 인성도 좋은 선수가 될래요."

또 다른 꿈 이야기도 했다. "올림픽에 세 번 출전한 뒤에는 세계 여행을 떠날 거예요. 살도 빼고 예쁘게 꾸미고…. 물론 지금의 제 모습도 좋아요. 역도는 제가 뚱뚱한 제 자신을 사랑하고,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