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실이 창의성을 키워주는 '열린 놀이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다락방에서 친구와 비밀 이야기를 속삭인다. 복도로 나와 미로에서 술래잡기를 하거나, 미끄럼틀을 타기도 한다. 따뜻한 바닥에 누워 책을 읽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보드게임도 한다. 교실 한쪽은 거대한 낙서장이다. 친구에게 전하는 말이나 자신의 상상을 펼친 그림이 빼곡하다.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선보인 '꿈을 담은 교실' 풍경이다.

◇학생들이 꿈꾸던 학교가 현실이 되다

지난 14일 오전 8시 50분 서울 면동초등학교 1학년 2반 교실. 등교한 아이들이 자리에 가방을 놓고 교실 뒤편으로 달려갔다. 게시판과 함께 벽을 꽉 채운 노란색 유리 칠판에 보드마카로 낙서를 시작했다. '넌 그림을 참 잘 그려.' '사진 찍을 때 좀 웃어봐.' 각자 친구들한테 하고픈 말을 적더니 깔깔댔다. 자세히 보니 책상 위도 전부 화이트보드였다. 유하음 양은 "교실에 스케치북이 가득하다"면서 "마음껏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어 행복하다"며 웃었다.

1·2교시가 끝난 뒤 중간 놀이 시간이 되자, 2~4층에 걸쳐진 1학년 교실 복도가 왁자지껄했다. 가장 큰 함성으로 채워진 3층으로 향하니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복도 전체가 실내 놀이터였다. 학생들은 밧줄을 잡고 경사진 언덕을 오른 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며 신나게 놀았다. 바로 옆 커다란 미로에서는 술래잡기와 소꿉놀이가 한창이었다.

2층 복도는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책을 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독립된 방 느낌을 주는 아늑한 원형 공간들도 들어섰다. 이곳에서 책을 펴든 아이들의 얼굴에서 편안함이 묻어났다. 무대 등 발표 공간으로 디자인된 4층 복도도 눈길을 끌었다.

김숙희 1학년 부장 교사는 "바뀐 교실과 복도를 본 학생들이 "여기가 천국이네!"라고 외쳤다"면서 "다양한 놀이 수업도 가능해졌다"고 했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학교생활에 더욱 잘 적응합니다. 사실 1학년 학생들에게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는 건 고문이나 마찬가지예요(웃음). 아이들의 표정이 정말 밝아졌어요."

◇"공간이 변해야 수업도 변합니다!"

'꿈을 담은 교실'은 서울시교육청이 서울시와 함께 올해 처음 추진한 사업이다. 획일화된 교실을 학생 중심의 창의·감성적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게 주요 내용. 총 53억2000만원을 투입해 여름방학 때 20개 초등학교에서 공사를 진행했다. 주로 1~2학년 교실(복도)을 대상으로 삼았다.

디자인 작업에는 건축가뿐 아니라 학생과 교사가 두루 참여했다. 면동초의 경우 1학년 학생들이 그린 '다니고 싶은 학교' 그림에 교사와 건축가가 의견을 더해 완성했다. 건축가와 어린이 공간 전문 디자이너가 아이들의 생각을 듣기 위해 직접 학교로 찾아오기도 했다. 서울 금호초등학교가 그 주인공이다.

이날 오후 금호초를 찾았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리모델링한 1학년 5개 교실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복도와 교실을 합친 1학년 2반과 5반 교실에는 책걸상 옆으로 2층짜리 다락방이 자리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봉과 암벽, 미끄럼틀을 이용해 다락방을 오갔다. 몇몇은 다락방에 옹기종기 앉아 수다를 떨거나 보드게임을 즐겼다. 둥근 달 모양의 조명도 이색적이었다.

민해란 양은 "다락방에서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친구들한테 털어놓곤 한다"고 말했다. "아, 그리고 학교 오기 싫어하던 남자아이들이 달라졌어요. 교실이 놀이터처럼 변해서 신난대요. 다른 학년 언니·오빠들도 우리를 부러워해요(웃음)." 고태현 군은 "비 오거나 미세 먼지 많은 날에도 놀 장소가 생겨 좋다"며 엄지를 들었다.

교실 뒤편에 벌집 모양 조형물이 들어선 1반 교실도 인상적이었다. 쿠션이 깔린 조형물 안에서 학생들은 책을 읽거나 이야기꽃을 피웠다. 김혜경 금호초 교장은 "친환경 목재를 사용해 아이들 건강에도 신경 썼다"면서 "이 모든 공간이 때론 무대나 수업 장소도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꿈을 담은 교실'을 매년 확대해나간다는 방침이다. 내년에는 초등학교 22개교와 중학교 11개교 공사에 나선다. 김홍미 서울시교육청 초등교육과 장학관은 "열린 놀이 공간이 창의 수업을 가능케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