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희 박사의 신통방통 곤충] ―풀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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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25 09:33

여리게 생겨도… 고약한 독 내뿜죠

	풀잠자리(왼쪽)와 풀잠자리 알.
풀잠자리(왼쪽)와 풀잠자리 알.

어른 풀잠자리는 아무리 봐도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습니다. 몸매는 야리야리한데다 가냘프고, 더듬이는 가늘고 기다랗습니다. 동그란 두 눈은 호숫물이 비칠 정도로 청초합니다. 거기다 초록빛 날개는 환상 그 자체. 날개 막이 얼마나 얇은지 속살이 은근히 비칩니다.

아무리 봐도 잠자리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왜 이름에 잠자리가 들어갔을까요? 이름만 들으면 잠자리 집안(잠자리목) 식구라고 오해하기 딱 좋습니다. 아마도 이름을 지을 때 녀석의 몸이 가늘고 날개가 얇고 날개 맥이 그물처럼 촘촘해서 잠자리라고 착각한 것 같습니다. 또 '풀'은 온몸이 풀색이어서 붙여졌습니다.

풀잠자리는 여리게 생겼지만 몸속에 독 물질이 있습니다. 살살 만져 보면 고약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가슴에 분비샘(독샘)이 한 쌍 있어서 거미나 침노린재 같은 포식자와 맞닥뜨리면 분비샘에서 독 물질을 내뿜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스팅크플라이겐(악취를 풍기는 파리라는 뜻)이라고 부릅니다. 녀석이 내뿜는 독 물질에는 스카톨이란 물질이 들어 있어 고약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어미 풀잠자리는 부속샘으로 하얀색 분비물을 내보내 철사처럼 기다란 '실'을 만든 다음 실의 맨 끄트머리에다 알을 낳아 붙입니다. 실 끝에 매달린 알은 긴 꽃대 위에 피어난 꽃 같기도 하고, 색깔이 흰색이어서 곰팡이가 슨 것도 같습니다. 하얀색 실을 살살 만져 보니 질긴 데다 휘어지지도 않고 빳빳합니다. 알은 입김을 훅 불어도 실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쯤이면 어미 풀잠자리의 알 낳는 솜씨가 묘기 대행진 감입니다.

왜 어미 풀잠자리는 알을 실에 붙여 두는 걸까요? 그야 알이 무사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어미는 알을 낳고 죽으니 알을 돌볼 수 없고, 알을 잎이나 나무줄기 등에 붙여 놓기보다 실 끄트머리에 붙여 공중에 매달아 두어 개미나 무당벌레 같은 포식자가 알을 쉽게 먹어 치우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공중에 떠 있으니 포식자의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게다가 가느다란 실을 타고 올라가기에는 포식자의 몸이 육중해 알은 그림의 떡입니다.

농촌진흥청의 한 곤충 연구자가 실에 붙은 알과 실에서 떼 낸 알을 관찰해 보니 실에 붙은 알의 부화율이 훨씬 높았습니다. 또 만약 어미 풀잠자리가 알을 하나씩 떨어뜨려 낳지 않고 수십 개의 알을 한 자리에 붙여 낳는다면, 아기가 육식성이라 먼저 깨어난 애벌레가 다른 알을 먹어 치울 수도 있습니다. 육식성 곤충은 배고프면 부모고 형제·자매고 상관 않고 잡아먹으니까요. 문득 알을 하나씩 실에다 낳은 어미 풀잠자리의 크나큰 배려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상상의숲 '곤충의 빨간 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