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문지로 총 만들까?"

"응! 휴지 심으로 손잡이를 만들면 되겠다."

지난 11일 대구 달서구. 정재현(대구 송일초 5)·재훈(대구 송일초 2) 형제가 거실 탁자 위에 놓인 신문지를 돌돌 말기 시작했다. 테이프와 글루건을 들고 한참 끙끙댄 끝에 형제는 제법 그럴듯한 모형 총을 만들어 냈다.

이어 철제 옷걸이가 등장했다. 재훈 군은 옷걸이를 구부려 동그랗게 만든 뒤, 구멍 난 세탁 망을 잘라 그 위에 씌웠다.

"옷걸이 농구대예요. 신문지를 공처럼 말아서 동생이랑 누가 골을 많이 넣는지 겨뤄볼 거예요."

엄마 김주연(38)씨는 형제의 놀이를 지켜보다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 살짝 손길을 내밀었다.

"아이들은 자유만 보장해주면 우유팩이나 뽁뽁이(에어캡)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놀아요. 오히려 어른들이 놀이를 어렵게 생각하죠. 값비싼 교구나 유행하는 장난감을 사줘야 할 것 같고, 무언가 교육적인 효과를 봐야 할 것 같고, 옆에서 하나하나 지도해줘야 할 것 같은 거죠. 사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충분히, 주어진 시간을 즐길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뿐이에요."

김씨는 인터넷에서 '놀이 전도사'로 통한다. 자녀들이 노는 모습을 기록한 '놀이 일기'를 올해로 9년째 블로그에 게재하고 있다. 주로 신문지, 휴지 심, 비닐봉지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한 놀이법을 소개하는데 구독자가 6만7000명에 이를 만큼 반응이 뜨겁다.

김씨는 "하루에도 수십 통씩 '아이와 어떻게 놀아야 하느냐'는 쪽지와 메일을 받는다"면서 "대부분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없다거나 마땅한 놀이법을 모르겠다는 내용인데 그때마다 '부담감을 버리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녀들과의 놀이에 부담을 느끼는 부모들을 위해 300개가 넘는 놀이를 제안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놀다가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놀이들인데, 대부분 '재활용품'을 재료로 활용한다. ▲낡은 칫솔로 장난을 치다 생각해낸 '칫솔 그림 그리기' 놀이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하다가 떠올린 '솔방울로 새집 만들기' 놀이 ▲베란다 텃밭에서 식물을 기르다가 시작한 '식물에 이름 지어주기' 놀이 등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를 개발하기도 한다.

김씨는 놀이의 대원칙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 ▲일상에서 소재를 찾을 것 ▲비용과 시간을 많이 들이지 말 것 ▲자녀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할 것 ▲자신의 편의를 위해 자녀의 욕구를 막지 말 것 등이다.

한국아동권리학회 고문을 맡고 있는 황옥경 서울신학대학교 보육학과 교수는 김주연씨의 사례가 일상에서 아동의 놀 권리를 실현하는 '모범'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놀이가 중요하다'는 말이 자꾸 나오니까 여러 정책이 나오긴 하는데 정작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나 취향, 욕구는 배제돼 있다"면서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여가와 놀이를 즐기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또 "놀이는 몰입을 돕고, 긴장을 완화하며, 갈등 조정 능력과 문제 해결력을 기르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것이 놀이하는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놀이가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권리라는 것을 부모가 먼저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