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여제' 최정(22)의 최근 일 년간 성적표는 화려하다. 궁륭산병성배를 포함해 지난해 열린 세계 여자 바둑대회 3개를 모조리 석권했다. 올해 초에는 한국 여자 바둑계의 최고수를 가리는 프로여자국수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우리나라 여자 기사 최연소, 최단 기간 9단으로 승단했다. 국내외 여자 바둑계를 평정했다고 평가받는 최정을 지난 19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국기원에서 만났다.

"지난 일 년간의 활동에 대해 스스로 점수를 매기면 100점 만점에 70점요. 좀 짜죠? 원래 저한테는 점수를 짜게 주는 편이에요. 너무 만족하면 발전이 없잖아요."

◇타고난 담력 앞세워 큰 경기서 줄줄이 승리

최정이 바둑돌을 잡은 지는 올해로 16년째다. 바둑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권유로 일곱 살 때 처음 도장을 찾았다. 2005년 아홉 살 나이로 유창혁 9단의 제자가 됐고, 2010년에 프로 입단에 성공했다.

2012년 1월 여류명인전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10번이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한국기원 소속 여자 기사 가운데 대회 우승 기록이 가장 많다. 국내 여자 바둑 랭킹 1위 자리는 51개월 연속 놓치지 않고 있다.

최정은 "노력과 타고난 재능이 반씩 섞여 이뤄낸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루에 7시간 정도 꾸준히 바둑 공부를 한다. 경기를 펼치거나 복기(경기 후 바둑을 뒀던 대로 다시 놓아보는 것)를 하고, 다른 선수들의 바둑 대결 과정을 기록한 기보를 연구한다.

"제 일이 바둑기사다 보니까 바둑을 하지 않고 놀면 '근무 태만죄'를 짓는 기분이에요. 그렇다고 남들보다 훈련 시간이 결코 많은 편은 아니에요. 무작정 앉아 있기보다는 짧은 시간 집중해서 공부해요."

최정은 누구를 만나도 기죽지 않고 전투적으로 경기에 나서기로 유명하다. '소녀 장사'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그는 "대국할 때 압박감을 이겨내는 담력은 타고난 것 같다. 남들과 달리 큰 대회나 강한 상대와의 대결에 나설 때 오히려 기대되고 재밌다"고 했다.

◇노래방서 열창하고 춤추며 스트레스 풀어

▲ 바둑 연습 중인 최정.

오랜 시간 바둑계에 몸담으면서 달라진 부분도 있다. 최정은 과거 경기 결과에 크게 연연했다. 중요한 시합에서 진 날이면 밥을 먹거나 샤워하다가도 자책하며 괴로워하기 일쑤였다. 이제는 본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냈다.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몸이 쑤시고 답답하면 나가서 친구들과 몸 쓰는 운동을 해요. 주로 족구, 농구, 탁구 같은 구기 종목을 즐겨요. 혼자서 코인 노래방(동전 노래방)도 자주 가요. 평소에 좋아하는 방탄소년단 노래나 다른 댄스곡을 10곡씩 한 번에 예약해놓고 계속 불러요. 아무도 안 보니까 방 안에서 노래 부르면서 뛰고 별짓을 다 해요(웃음)."

최정이 가장 닮고 싶은 선수는 중국의 루이나이웨이(55) 9단. 그는 2000년 세계 최초로 남녀 통합 기전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바둑기사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는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중국 '건교배 여자바둑오픈전'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최정은 "환갑을 앞둔 나이에 루이나이웨이처럼 현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게 쉽지는 않다"며 "기량도 출중한 데다 바둑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식지 않는 모습이 멋있다"고 말했다. "바둑이 하기 싫어지거나 현재 실력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들 때면 그분을 떠올리며 나태한 저 자신을 채찍질해요. 제가 좀 더 발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분이에요."

인터뷰를 마치고 최정은 가슴 부분에 태극기가 달린 패딩을 빠르게 걸쳐 입었다. 한국기원 소속의 대한민국 바둑 국가대표임을 상징하는 점퍼였다. "오늘 할 일을 끝냈으니 스트레스 풀러 가야죠. 친구와 맛있는 밥 먹고 집에 가서 웹툰 볼 생각이에요. 잘 먹고 푹 쉬어야 다음 대전도 잘할 수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