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인터뷰] 평창의 빙판 만든 배기태 아이스 테크니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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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09 09:38

"물 뿌리고 얼리는 과정 150번 반복해야 '최고의 빙판' 완성되죠"

얼음판 달리는 스케이팅 선수서 얼음판 제작하는 사람으로 변신
내 기술로 빙판 만드는 데 10년 걸려
평창올림픽 빙판서 세계新 3개 기록… 선수들 기량 발휘에 보탬돼 기뻐요

'아이스 테크니션'은 스포츠 경기에 사용되는 빙판을 제작하고 관리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얼음을 얼리는 사람이 아니라 '최고의 얼음'을 만들어내는 기술자다. 맨 콘크리트 바닥에 수차례 물을 뿌려 얼음을 얼리고, 종목별 특성에 맞게 얼음판을 깎아내 선수들에게 최고의 얼음판을 제공한다.

배기태(54)씨는 국내 유일의 아이스 테스니션이다. 지난달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의 얼음판을 책임졌고, 오늘(9일) 개막하는 '평창패럴림픽' 기간에도 활약할 예정이다. 지난 7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만난 배기태씨는 "고르게 잘 얼어 반짝반짝 빛이 나는 빙판을 보고 있으면 하나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웃었다.


	배기태 아이스 테크니션이 강릉 아이스아레나 경기장에 들어선 잠보니(얼음 표면을 평평하게 다지는 차)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배기태 아이스 테크니션이 강릉 아이스아레나 경기장에 들어선 잠보니(얼음 표면을 평평하게 다지는 차)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강릉=김종연 기자

◇최고의 빙판 만들기 위해 150번 물을 붓고 얼리기 반복

"지난 평창올림픽 때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제게 와서 모두 이렇게 말했어요. 자기가 여태 뛰어본 얼음판 중에 단연 최고라고요(웃음). 덕분에 이번 올림픽 기간 제가 담당한 아이스아레나의 빙판 위에서 세계신기록이 세 개나 나왔어요.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다는 생각에 참 기뻤습니다."

빙상 종목의 경우 얼음의 질이 선수들의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얼음판 표면이 고르지 못하거나 얼음이 녹아내리는 등 빙판에 문제가 발생하면 선수들의 기록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배씨를 비롯한 아이스 테크니션팀이 올림픽 기간 밤낮으로 빙판과 씨름했던 이유다.

"빙판을 만드는 작업은 아주 정교하고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아이스아레나의 빙판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물은 90t에 달해요. 한 번에 부어서 얼리는 게 아니라 조금씩 뿌리고 얼리기를 반복합니다. 호스를 이용해 0.2㎜ 두께로 물을 뿌려 얼리고 상태를 확인 한 다음 그 위에 다시 물을 뿌려서 얼리는 과정을 150번가량 반복하죠."


	빙판 표면 온도를 재는 모습. 배기태씨는 “종목마다 빙판 온도가 달라서 수시로 온도를 체크해야 한다”며 “피겨스케이팅은 영하 3도, 쇼트트랙은 영하 7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빙판 표면 온도를 재는 모습. 배기태씨는 “종목마다 빙판 온도가 달라서 수시로 온도를 체크해야 한다”며 “피겨스케이팅은 영하 3도, 쇼트트랙은 영하 7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종목에 따라 얼음 두께도 다르다. 또 얼음의 단단하고 무른 정도, 빙판의 표면 온도와 습도도 제각각이다. 각 경기의 특성에 맞춰 빙질을 맞추는 작업도 아이스 테크니션의 중요한 임무다.

"점프 기술이 많은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다른 빙상 종목보다 2㎝ 정도 더 두껍게 얼음판을 제작해야 해요. 선수들이 더블 악셀 같은 점프를 뛰고 착지할 때 얼음이 많이 파이기 때문이죠. 또 얼음판이 너무 단단해서도 안 돼요. 그럼 착지할 때 얼음판이 충격을 받아 쩍 갈라질 수 있거든요. 반면 쇼트트랙이나 스피드스케이팅은 얼음판이 단단해야 선수들이 질주하기가 편해요. 그래서 얼음이 가장 단단해지는 영하 7도로 표면 온도를 계속 유지해줘야 합니다. 얼음판을 한 번 만들고 끝내는 게 아니라 경기 중에 쉴 새 없이 온도를 재고 조절해야 합니다."

◇매력적인 빙판의 세계… 2000년부터 기술 배워

'빙판 장인' 배씨가 얼음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초등학교 때다. 우연한 기회에 스케이트화를 신었는데 소질이 있었다. 우연히 나간 강원도 대회 초등학생 3000m 코스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스피드스케이팅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중학생 때 빙상 선수로 스카우트되며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걷게 됐다. 국가대표로도 활동했지만 선수 생활을 오래하지는 못했다.

"선수 생활을 하긴 했지만 운동 자체가 힘들고 재미없었어요. 은퇴 후에 얼음판은 근처에도 안 가겠다고 다짐했죠. 그러던 2000년 어느 날 대학교 2년 선배인 육기순 전 대한컬링연맹 사무국장을 통해 아이스 테크니션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됐어요. 정말 매력적인 일이더라고요. 매번 잘 만들어진 얼음판을 달리기만 했지 그 얼음판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곤 상상을 못했어요. '직접 얼음판을 달려 봤으니 누구보다 잘 만들 자신이 있다'는 묘한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그때부터 아이스 테크니션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배기태 아이스 테크니션
당시 국내에서는 아이스 테크니션 기술을 배울 수가 없었기 때문에 빙상 강국 캐나다로 가서 얼음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았다. 배씨는 "첫 3년간은 선배가 물을 뿌릴 때 호스가 엉키지 않도록 뒤에서 줄을 정리하는 일만 했다"며 "나만의 노하우가 담긴 빙판을 만들어 내기까지 1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했다.

"제게 빙판은 '자식' 같은 존재입니다. 저와 팀원들이 불철주야 만들어낸 빙판 위에서 선수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첫 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기쁩니다. 이번 동계패럴림픽에서도 선수들이 좋은 기량을 낼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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