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장인을 만나다] ⑦ 3대째 가업 이은 재단사 이경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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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13 10:09

양복 한 벌 만드는 데 3만 땀… 100년째 이어온 '신사의 품격'

102년 세월 깃든 양복점 운영
치수 잴 때 손님 파악하는 작업 중요
맞춤 정장 찾는 젊은 고객 늘어 기뻐

'종로양복점'은 3대째 이어져 온 102년 전통의 양복점이다. 이곳의 3대 대표인 이경주(73)씨는 올해로 50년 경력의 재단사다. 양복점 역사의 절반을 책임진 그는 매일 아침 양복과 넥타이를 말끔히 차려입고 양복점 문을 연다.


	이경주씨는 올해로 102년째 ‘맞춤 양복’을 제작하고 있는 종로양복점의 3대 대표다.
이경주씨는 올해로 102년째 ‘맞춤 양복’을 제작하고 있는 종로양복점의 3대 대표다. / 양수열 기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양복… 똑같은 옷은 없다

"맞춤 양복을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손님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양복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옷감 선택이나 재봉하는 일은 그다음이에요."

지난 9일 만난 이경주 대표의 말에는 그의 경영 철학이 한껏 묻어났다. 기성복이 넘쳐나는 시대에 '맞춤 양복'은 번거롭고 불편하다. 양복 한 벌을 맞추려면 치수를 재기 위해 한 번, 가봉한 옷을 입어보기 위해 또 한 번, 그리고 완성된 옷을 찾으러 최소 세 번이나 양복점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번거로움에도 맞춤 양복을 원하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에 가위를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장 한 벌을 만드는 데는 보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우선 손님의 신체 곳곳을 측정한 뒤 작업대에 깔린 재단지에 '옷본'을 그린다. 이 옷본을 손님이 고른 원단 위에 놓고 그대로 재단하고, 원단들을 가봉(임시로 바느질하는 작업)해 옷 형태를 갖춘다. 이후 손님이 다시 가게를 찾아 가봉한 옷을 입어보고, 치수와 스타일을 세밀하게 조정한다. 손바느질로 원단을 한 땀 한 땀 꿰매는 본격적인 작업은 그 이후에 시작된다. 정장 옷 한 벌에는 약 3만 땀 정도 들어간다.

"간혹 입던 옷을 가져와서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하는 손님이 있어요. 그런데 그건 불가능해요. 재봉된 옷을 아무리 측정해 만들어도 미세하게 차이가 나기 마련이거든요. 여러 벌 옷을 만들어간 단골도 매번 치수를 다시 재는 걸요."

그는 손님의 팔길이, 가슴둘레, 진동(어깨선에서 겨드랑이까지의 폭) 등 신체 20여 곳을 꼼꼼히 측정한다. 치수만이 아니다. 허리가 앞으로 굽었는지, 뒤에 젖혀졌는지, 어깨 각도는 어떤지까지 모두 기록한다. 그래야 손님 몸에 꼭 맞는 '맞춤 양복'이 탄생할 수 있다.


	이경주 대표가 원단 위에 옷본을 올려놓고 재단하는 모습.
이경주 대표가 원단 위에 옷본을 올려놓고 재단하는 모습.

◇전쟁도 끊지 못한 100년 가업

종로양복점의 역사는 창업주인 할아버지 이두용(1881~1942)씨가 종로 보신각 옆에 가게를 차리면서 시작됐다. 당시 종로양복점은 조부의 빼어난 솜씨에 함흥과 개성에 분점을 낼 정도로 성업했다. 그의 아버지 이해주(1914~1996)씨는 1942년에 가게를 물려받았다. 6·25전쟁 중에도 피란을 떠난 대구에서 옷을 만들며 가업을 이어갔다.

이경주 대표는 재단사의 길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1969년 아버지의 권유로 '양복장이'가 됐다. "기술은 보통 어릴 때 허드렛일을 하면서 기초부터 닦아요. 그런데 저는 나이 스물다섯에 처음 가위를 잡으려니까 당최 일이 안 되는 거예요. 저 때문에 단골들도 많이 떨어져 나갔죠."

그는 악착같이 버텼고, 10년 정도 지나자 일이 손에 익기 시작했다. 선친은 그제야 '곳간 열쇠'를 아들에게 넘겨줬다. 그는 "아버지께 제대로 된 칭찬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면서 "양복 만드는 일에 자부심이 상당했던 아버지에게는 내 솜씨가 성에 안 차셨을 것"이라며 웃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사용하던 (왼쪽부터) 다리미판, 줄자, 무쇠 다리미.
할아버지 때부터 사용하던 (왼쪽부터) 다리미판, 줄자, 무쇠 다리미.
◇"맞춤 양복에 주목하는 젊은 층 반가워"

"요즘엔 20~30대 젊은 고객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2010년대 접어들면서 자기만의 옷을 입고 싶어하는 개성 강한 젊은이들이 가게를 찾기 시작했어요. 여성복처럼 옷을 너무 꽉 끼게 입으려는 경향이 있지만요."

과거와 달라진 점은 또 있다. 손님들이 작업에 걸리는 긴 시간을 기다려준다는 것. "20~30년 전만 해도 손님들이 그렇게 닦달을 했어요. 삶에 여유가 없던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3~4일 안에 빨리 만들라고 재촉을 했었죠. 그때는 구정·추석·연말이면 양복 한 벌씩 해 입곤 했는데, 그 시기에 갑자기 손님이 몰리니까 작업이 더뎌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그렇게 화를 냈어요. 요즘 손님들은 '잘 만들어달라'는 말과 함께 묵묵히 기다려주시니 무척 고맙죠."

이경주 대표는 양복 만들기에 평생을 바쳤지만, 정작 자신이 입는 양복은 몇 벌 되지 않는다고 한다. "재단 일을 배울 땐 양복 실컷 입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일을 하면 할수록 제 옷을 만들기에는 옷감이 아깝다는 생각이 커지더라고요. 좋은 옷감이 있으면 손님들 옷을 더 만들어야죠. 그게 양복장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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