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읽는 우리 문학] 교실 속의 권력 앞에 저항할 수 없었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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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13 10:09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년), 이문열(1948~) 作

너희는 당연한 너희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중략) 나는 되도록 너희에게 손을 안 대려고 했다. 석대의 강압에 못 이겨 시험지를 바꿔 준 것 자체는 용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너희 느낌이 어떠했는가를 듣게 되자 그냥 참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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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_ 교실에 나타난 작은 독재자

서울의 명문 초등학교에서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로 전학 간 주인공 한병태는 독재자이자 반장인 엄석대를 만나요. 첫날부터 병태는 석대와 충돌하게 되지만 결국은 저항을 포기해요. 왜냐하면 엄석대는 담임 선생님을 비롯한 아이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복종을 받았고, 병태는 그런 분위기에서 소외감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6학년이 되자 새 담임 선생님은 반장선거에서 엄석대가 몰표에 가까운 표를 얻은 걸 수상하게 여겨 아이들을 추궁해요. 그리고 엄석대가 부정행위로 전교 1등을 유지했다는 사실과 그동안의 비행을 낱낱이 밝혀내지요. 엄석대는 학교에 불을 지르고 어디론가 사라져요. 어른이 된 병태는 우연히 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에 붙들려 가는 엄석대를 봐요.

교실 안의 권력 구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50년대 말 시골의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엄석대를 통해 권력의 형성과 몰락 과정을 상징적으로 그린 작품이에요.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4·19 혁명 전후의 1960년대이지만, 작품이 발표된 1980년대 후반 독재정권의 잔재와 제5공화국의 권위주위적인 통치를 풍자한 것이기도 해요. 이문열은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특별 수업에서, 작품에 나오는 초등학교 5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인 독재정권을 실리에 따라서 허락한 60~70년대 미국 외교정책이고, 엄석대를 박살 낸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경직된 이념'을 상징한다고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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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태의 선택

겉으로 보기에는 전교 1등의 모범생이고 반을 잘 이끌어 가는 엄석대는, 알고 보면 폭력과 협박으로 반 아이들을 지배하는 비틀어진 권력자예요. 병태는 처음에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결국 석대에게 굴복하고 말아요. 오히려 석대의 오른팔이 되어 권력의 단맛을 즐기면서 살지요. 작가는 엄석대의 몰락을 통해 권력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한편, 석대의 권력에 휘둘렸던 병태와 다른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에 순응하는 소시민적 근성을 지적하기도 해요.

우상의 눈물, 아우를 위하여, 완장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배경·등장인물의 구성이 비슷한 소설로는 전상국의 단편 소설 '우상의 눈물'이 있어요. 이 소설은 교실에서 벌어지는 암투를 관찰자 입장에서 썼어요. 최기표로 대표되는 물리적이고 표면적인 폭력과, 반장과 담임 선생님의 치밀한 계획이라는 합법적인 폭력의 대립을 다뤘죠.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는 폭력에 기대어 학급을 운영하는 이영래에 맞선 피해자 급우들과 '나'의 저항과 대립을 다룬 소설이에요. 집단 안에서 개인이 지녀야 할 윤리적 책임이라는 문제를 제기하지요. 권력의 허망함을 다룬 윤흥길의 '완장'도 있어요. '완장'은 동네의 저수지 관리를 맡게 된 건달 종술이 완장을 차고 기고만장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장편 소설이에요. '완장'이라는 상징적 소재를 통해 인간의 본능과 권력의 속성 등을 보여주는 작품이죠.
	(사진 왼쪽)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오른쪽)해외에서 번역 출간된 도서 표지
(사진 왼쪽)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오른쪽)해외에서 번역 출간된 도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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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Our Twisted Hero’라는 제목으로 해외에 번역돼 소개됐어요. 또 1992년,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관심을 받았고 상을 받기도 했어요. 영화의 결말에서는 소설과는 달리 엄석대가 은사의 장례식에 대형 화환을 보내, 그가 어디선가 여전히 무서운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암시해요.

주니어RHK '통합지식 100 우리 고전' (한내글방 글, 손영경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