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일을 겪거나 사고를 당해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는 경찰서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만약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이라면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까. 대부분의 경찰서에서는 민간인 수화통역사를 불러 통역을 맡기거나 종이에 써서 대화하는 '필담'으로 신고를 돕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번거로워 장애인들의 불편이 컸다.

부산 영도경찰서 동삼지구대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수화 경찰' 김병훈(37) 순경이 있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이 관련된 사고나 사건이 발생하면 즉시 현장에 출동, 뛰어난 수화 실력으로 의사소통을 돕는다. 지난 3월에는 '평창 동계패럴림픽' 공식 수화 경찰로 활약하기도 했다. 지난 13일 지구대에서 근무 중인 김 순경을 만났다.

◇"왕복 4시간 거리 다니며 수화 배워"

그는 3년 전,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34세에 경찰이 됐다. 2015년 2월 경찰 공무원 합격 통보를 받자마자 '부산수화통역센터'에 연락을 했다. 수화 강의에 등록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이 되려고 공부를 하면서 '청각장애인은 경찰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대화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청각장애인들은 수화가 아니면 대화가 어려우니까 도움을 요청하기도 힘들겠죠. 경찰관이 수화를 할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발령받기 전까지 6개월간 센터를 다니며 수화를 배웠어요."

집에서 센터까지는 왕복 4시간 거리. 김 순경은 일주일에 세 번씩 수업을 들으러 갔다. 센터에 가지 않을 땐 책을 구매해 동영상을 보며 독학했다. 청각장애인을 직접 만나기 위해 농아인 관련 행사에 참여해 자원봉사도 했다.

"지구대에 발령받자마자 수화 배워놓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청각장애인과 연관된 신고가 들어와 현장에 가보면 다들 깜짝 놀라세요. 수화를 하는 경찰을 보시곤 신기해하고 반가워하시죠. 제가 수화로 '무슨 일이시죠?' 하고 묻는 순간 심각했던 분위기가 확 풀어지는 경우도 많았어요. '이 사람은 내 말을 들어주겠구나!' 하는 심리적 안도감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패럴림픽에 등장한 '수화 경찰'

지난겨울,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수화 경찰'을 뽑는다는 공고를 발견한 그는 기대를 품고 지원했다. 전국에서 7명의 수화 경찰이 모였다. '강릉 올림픽파크'에는 김 순경을 포함해 2명이 배치됐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에 12시간 동안 근무하며 매일 100명 이상의 청각장애인을 만났다.

"청각장애인들은 주로 40명 이상의 단체로 경기장을 방문했는데, 동행한 수화통역사는 많아야 2명이었어요. 강릉 올림픽파크는 규모가 커서 길 안내를 담당하는 자원봉사자가 곳곳에 서 있었지만 수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청각장애인에겐 큰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대신 '수화 경찰'이 그 역할을 했죠. 경기장과 화장실, 식당 등을 안내했습니다."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들에게도 '수화를 하는 경찰'은 낯선 존재였다. 인파가 많은 곳에서 수화로 대화하면 주변에서 '신기하다'는 반응이 들려왔다. 그는 온종일 서 있느라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사람들의 호의적인 반응에 힘든 줄도 모르고 신이 났다. 국제적 관심도 컸다.2020년과 2022년에 각각 올림픽 개최를 앞둔 일본과 중국의 준비위원회도 수화 경찰 사진을 찍어갔다.

"특히 장애인분들이 '수화 경찰'이라고 적힌 명찰을 보고 무척 감동하셨어요. 어떤 분은 제가 추운 날씨에 장갑을 안 끼고 수화한다고 핫팩을 쥐여주셨어요. 들고 있던 음료수를 건네기도 하시고요."

김 순경은 "앞으로도 '수화 경찰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청각장애인분들이 하신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우리를 위한 경찰이 따로 있다는 게 고맙다'였어요. 아직은 수화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열심히 공부해서 그분들께 도움이 되는 경찰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