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카툰연구소가 무너지면서 갱 속으로 떨어졌던 수리 엄마, 사비 엄마, 마루 엄마는 낯선 곳에서 길을 헤매고 있었다. 어떤 곳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 곳이었다.

"가도 가도 똑같아요. 보세요. 러닝머신을 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요. 우리는 뛰고 있지만 계속 한 장소에 있는 것 말이에요. 혹시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 거 아닐까요?"

사비 엄마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미로? 우리가 영화 메이즈러너 주인공이라도 된 거예요? 우와 신난다."

마루 엄마는 철딱서니 없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마루 엄마, 우린 카툰연구소가 무너지면서 왕애지를 피해 달아나다가 깊은 갱 속으로 떨어졌어요. 그리고 중요한 건 그때 우리의 아이들과 함께 떨어졌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신이 난다고요?"

수리 엄마는 발끈 화를 내며 말했다. 하지만 마루 엄마는 여전히 싱글벙글하였다.

"수리 엄마는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살아요? 그런다고 밥이 나오나? 뭐가 나오나?"

마루 엄마의 아이 같은 대답에 수리 엄마와 사비 엄마는 한숨만 푹푹 쉬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봐요. 우리가 아이들이랑 함께 떨어졌지요? 그렇다면 아이들이랑 같은 장소에 있다는 거잖아요? 오케이? 이제 같은 장소에 있으니까 찾기만 하면 되는 건데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느냐고요."

마루 엄마의 말은 꽤 그럴싸하게 들렸다.

"내가 메이즈러너라고 했잖아요? 분명히 이 미로 안에 아이들이 있다니까요? 운 좋으면 아이들 아빠들도 찾을 수 있겠죠? 호호."

마루 엄마는 확신을 갖고 말했다.

"아이들 아빠라니…. 걸리기만 해봐. 가만 안 둘 테니. 아이들을 꼬드겨서 이 난리를 만들었는데 내가 가만둘 줄 알아요? 나타나기만 해봐. 아주…."

수리 엄마는 손가락 관절을 우두둑 꺾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어떻게 찾아요?"

사비 엄마가 물었다.

"메이즈러너 영화 안 봤어요? 영화에 보면 움직이는 거대한 벽이 나오거든요. 그 벽은 열렸다 닫혔다 하죠. 우린 그것과 비슷한 장애물을 찾아야 해요. 여기에 분명히 어떤 수상한 장애물이 있을 거예요."

그때였다. 멀리서 타오르는 노란 불꽃이 보였다. 딱히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노란 불꽃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마루 엄마가 먼저 노란 불꽃 근처로 다가갔다. 수리 엄마와 사비 엄마가 말릴 새도 없었다. 마루 엄마를 보고 용기를 낸 수리 엄마와 사비 엄마도 뒤따라 걸어갔다.

세 엄마가 다가가자 노란 불꽃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고 잠시 후 점점 사그라졌다. 그리고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지옥의끝 달력이었다. 지옥의끝 달력은 분명히 불에 타버렸었다. 그런데 다시 나타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불에 활활 타는 걸 직접 봤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분명히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수리 엄마는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또 소녀처럼 놀라고만 있을 거예요?"

마루 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지옥의끝 달력을 덥석 집어들었다. 순간 수리 엄마와 사비 엄마가 비명을 꽥 질렀다. 그런데 마루 엄마는 지옥의끝 달력을 펼쳐보며 웃기까지 했다.

"이게 요물이야. 요물. 절대 안 죽는다니까. 이것 보세요. 멀쩡하죠? 불에 타는 모습도 노란 불꽃도 다 가짜예요. 가짜. 보세요. 우리가 처음 이 달력을 받았을 때처럼 멀쩡하잖아요?"

마루 엄마가 지옥의끝 달력을 보여줬다. 수리 엄마는 조심스럽게 지옥의끝 달력을 만져보고 살펴보았다. 정말 멀쩡했다. 불에 타들어간 흔적이나 불에 그슬린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지옥의끝 달력의 날짜가 이상했다. 변화가 있었다.

1, 2, 3, 4, 5, 6,
7, 8, 9, 10, 11, 12,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13일과 14일이 없어요."

수리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마루 엄마와 사비 엄마도 달력의 날짜를 확인해보았다. 지옥의끝 달력에는 5, 6, 7, 8, 9, 10, 11, 12, 13, 14일이 없었다. 그런데 5, 6, 7, 8, 9, 10, 11, 12가 채워지고 13과 14만 없었다.

"이제야 알겠어요. 사라진 날짜는 모두 열흘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동안 우리 아이들이 날짜를 찾아낸 거예요."

마루 엄마가 말했다.

"그럼 13일과 14일은 아직 찾지 못한 거네요? 맞죠?"

사비 엄마였다.

"그렇다면 불타서 죽었다고 생각했던 지옥의끝 달력이 다시 나타났고 아직 찾지 못한 날짜만 빈칸으로 남은 채 나타났다면?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수리 엄마는 의문을 던졌다.

"이 달력을 우리에게 보낸 사람은 분명히 왕애지였어요. 그 왕할배 말이에요."

수리 엄마의 의문은 계속됐다.

"그 왕할배가 지옥의끝 달력을 맘대로 할 수 있는 자라면 우리 앞에 이 달력을 다시 보낸 자도 왕애지일 거예요. 그렇다면…."

수리 엄마가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어디선가 왕애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 우리가 이 달력을 완성하길 바라고 있겠죠? 날짜를 바꾸길 원하면서…."

수리 엄마의 안색이 하얘졌다.

"날짜가 다 채워지면 날짜를 바꿀 수 있을 거예요. 왕애지는 그때를 기다리는 거고요. 왕애지는 골든릴리 책을 잃어버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수리 엄마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 우리 아이들을 찾으러 미로 속으로 뛰어듭시다. 갑시다."

마루 엄마는 용감했다.

"얘들아 엄마가 간다."

마루 엄마가 소리쳤다.

"13일과 14일. 기다려라. 우리가 기어코 찾을 테니까."

수리 엄마가 소리쳤다.

"건강하기만 해. 엄마가 갈게."

사비 엄마가 소리쳤다.

세 엄마들은 지옥의끝 달력을 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이제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아이들을 찾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처음에는 러닝머신을 뛰는 것처럼 같은 장소를 걷고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앞에 뜻밖의 장소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