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길목, 6월입니다. 중미산 옆구리에 난 오솔길을 걷습니다. 부딪치는 나뭇잎 소리에 취해 여유자적 걷는데, 어디선지 새빨간 곤충 한 마리가 눈앞을 휙 날아 지나갑니다. 꼬마 비행접시처럼 날더니 저쪽 나뭇잎 위에 뚝 떨어집니다. 살금살금 다가가니 눈부시게 아름다운 홍반디가 앉아 있군요.

빨개도 너무 빨간 주홍홍반디! 얼마나 빨간지 몸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것 같습니다. 몸 색깔도 아름답지만, 몸매 또한 군더더기 없이 늘씬합니다. 홍반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물 같은 딱지날개입니다. 딱지날개에는 칼날 같은 능선들이 밭이랑처럼 줄 맞춰 서 있고, 능선들 사이에는 네모난 점각이 수백 개나 찍혀 있어 마치 망사 옷을 입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개 숙인 모습이 반딧불이와 비슷하고 몸 색깔이 새빨개서 홍반디라고 부릅니다. 생김새가 비슷해도 홍반디는 발광기관이 없어 반딧불이처럼 불빛을 내지 못합니다.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쉬던 녀석이 몸단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앞다리로 더듬이를 끌어다가 주둥이로 구석구석 청소합니다. 이렇게 더듬이에 묻은 꽃가루며, 꽃 꿀이며, 물방울, 먼지 등을 닦아 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곤충은 감각기관이 더듬이에 몰려 있기 때문에 온도, 습도, 바람 방향, 다가오는 포식자의 체온 등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더듬이로 알아차립니다. 그러니 더듬이를 늘 깨끗하게 단장해야 이 변화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살금살금 다가가자 눈치 빠른 녀석이 새빨간 날개를 양옆으로 활짝 펼치고 비행접시처럼 휘리릭 날아갑니다.

주홍홍반디와 작별하고 얼마를 더 걸었을까? 양지바른 쪽 풀잎 위에 다른 홍반디가 앉아 일광욕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 녀석은 이름이 참 독특한 살짝수염홍반디입니다. 이 녀석도 홍반디 집안 식구답게 더듬이가 카리스마 넘치는 톱니 모양이고 딱지날개도 빨갛습니다. 또 암컷과 수컷은 더듬이 모양이 달라 암컷은 톱니 모양, 수컷은 빗살 모양입니다.

쉬는 녀석을 손으로 살짝 잡자 세상에! 딱지날개에서 피가 나옵니다. 녀석의 딱지날개에는 놀랍게도 그물처럼 얽힌 혈관이 있고 이 혈관 속에는 피(혈림프)가 가득 차 있습니다. 녀석은 위험에 처하면 딱지날개 가장자리에 있는 혈관 밖으로 피를 곧장 내보내기 때문에 딱지날개 가장자리에는 스며 나온 피가 한두 방울 이슬처럼 맺힙니다.

녀석의 피는 우윳빛으로 독 물질입니다. 피를 만져 보니 약간 끈적이고 냄새를 맡아 보니 약간 고약합니다. 내친김에 맛을 보니 쓰고 희한한 맛이 나 퉤퉤 뱉었습니다. 고혹적인 새빨간 딱지날개, 그 속에 품은 독. 홍반디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경고 색과 독 물질로 완전무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홍반디 집안 식구들은 왜 죄다 딱지날개가 빨갈까요? 그야 포식자에게 '내 몸에 독이 있으니 먹지 마' 하고 경고장을 보내는 것입니다. 독 물질을 품은 곤충들은 몸 색깔이 대개 노란색, 빨간색 등 빛깔이 화려합니다.

새들은 빨간색, 노란색처럼 화려한 옷을 입은 곤충들을 잡아먹지 않습니다. 화려한 색을 띤 먹이를 먹었다가 쓴맛을 보게 되면 화려한 색을 띤 먹잇감은 다시는 입에 대지 않습니다.

상상의 숲 '곤충의 빨간 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