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수회의록'의 표지

나는 벌의 굴을 파헤치고, 여왕봉을 짓밟고 수많은 벌 떼를 죽이고, 했다. 나는 벌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불공대천의 원수였을 것이다. 그들은 불가항력의 나에게 원한을 풀기 위하야 얼마나 맹렬하였든가.

줄거리_ 잊을 수 없는 동물들

'동물집'은 소박하고 평화로운 농촌 풍경을 배경으로 동물들과 주인공이 경험한 세계를 그린 단편소설이에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소·닭 등 동물에 관한 이야기지만, 주인공과 주인공의 가족, 이웃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서울에서 장사를 하다가 크게 실패하고 온 가족이 소를 타고 시골로 이사할 때의 이야기나 마치 전쟁을 하듯 친구들과 함께 온갖 위험을 감내하며 벌집을 따내는 장면 등 재미와 감동을 함께 주는 작품이에요.

어린 시절의 추억

'동물집'은 주인공이 형님의 손에 이끌려 서울로 올라오는 것으로 끝나요. 개·벌·닭·뱀·돼지·메뚜기·개구리들과 영영 이별을 하는 주인공의 서글픈 심정이 나타나 있어요.

서울에 와서 모자도 사 쓰고, 구두도 사 신고, 책과 연필같이 신기한 물건도 많이 생겼지만, 마음은 여전히 시골의 자연과 친구들에게 가 있고 시골 생활이 그리워서 못 견디겠다고 고백하죠. 시골에서의 생활이 '꿈같이 아름다웠다'라고 고백하는 주인공은 그 정든 땅을 다시 한 번 밟아 봤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해요.

안회남의 아버지 안국선

안회남의 아버지는 개화기의 신소설 작가인 안국선이에요. 안국선의 대표작 '금수회의록'은 동물이 나와서 자신들과 사람을 비교하며 사람의 잘못된 점을 꾸짖는 내용이에요. 동물을 내세워 인간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풍자한 우화 소설로, 까마귀·여우·개구리·벌 등이 등장하죠.

'금수회의록'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판매 금지가 내려진 소설이에요. 발간 이후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통감부에서 치안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판매를 금지했죠.

김유정과의 우정

안회남은 휘문고등보통학교(지금의 휘문고등학교)에 다닐 때 '봄봄' '동백꽃'을 지은 소설가 김유정과 같은 반 친구였어요. 안회남이 김유정보다 한 살 아래였지만 서로 하모니카 밴드를 결성하고, 체조 연습도 하고, 하굣길에 군것질도 함께하는 단짝이었죠.

안회남은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학교를 그만두고 잡지사에서 일했는데, 김유정과는 계속 교류를 하며 우정을 유지했어요. 김유정은 폐결핵을 앓다가 서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병상에서 쓴 마지막 글이 바로 친구인 안회남에게 보내는 편지였어요.

안회남도 훗날 김유정을 추억하며 '겸허-김유정전'이라는 소설에서, '그가 살았을 때에도 나는 그에게 잘하지 못했는데, 그가 간 후에도 이렇게 잘못이 많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이 늘 내 눈에 가득하다'며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어요.

나의 이야기만 하겠다!

안회남은 박태원과 함께 1930년대의 대표적인 신변소설 작가로 꼽혀요. 신변소설이란 객관적인 현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작가 자신의 실제 체험과 신변적인 이야기만을 다룬 소설을 말해요.

안회남은 평소에 '나는 소위 기성 문단, 기성 작가를 멸시한다'고 말하며 기존의 소설 창작 방법을 부정했으며, 자신의 연애와 결혼, 친구,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 등 자신과 주변 인물의 실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소설을 많이 썼어요.

그러나 1940년대에 이르러 징용 체험을 담은 '불'을 펴내는 등 현실 생활 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작품의 경향도 점차 변화했죠. 안회남은 조선 문학가 동맹에서 활동하다가 1948년에 월북했어요.

한 글자 제목의 작품

'불'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8월에 조선 문학가 동맹 기관지인 '문학'의 창간호에 실린 작품이에요.

1944년 징용에 끌려가 1년 동안 탄광에서 일했던 안회남의 체험이 담겨 있어요. 이 시기에 안회남은 징용 체험을 토대로 '쌀' '소' '말' '별' 등 한 글자 제목으로 된 같은 계열의 작품을 여러 편 썼어요.

주니어RHK '통합지식 100 우리 고전' (한내글방 글, 손영경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