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희 박사의 신통방통 곤충] 금빛갈고리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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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25 10:11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오늘도 난 똥을 뒤집어쓰지

6월 말, 강원도 평창의 산골 마을 뒷산에 오릅니다. 간간히 소요산매미가 들려 주는 상쾌한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늘진 오솔길을 걷습니다. 쉬어갈 겸 나무 그늘 밑에 잠시 앉으니 저만치 서 있는 붉나무가 눈에 띕니다. 작은잎(소엽)을 열 개도 넘게 거느린 데다 잎자루에 날개까지 붙어 있어 붉나무인 것을 금방 알아챕니다. 바람에 이따금 흔들리는 작은 잎 끄트머리에 새똥이 묻어 있군요. 벌떡 일어나 붉나무로 다가가 잎을 살피니 역시 새똥이 아닙니다. 살짝 건드리니 '새똥'의 절반이 벌떡 일어나 이리저리 휘젓습니다. 아, 금빛갈고리나방 애벌레를 여기서 만나다니 오늘은 억세게 운 좋은 날입니다.


	금빛갈고리나방.
금빛갈고리나방.
대부분의 곤충은 포식자의 눈을 피해 잎 뒷면에 모여 숨어 지내는데, 녀석들은 얼마나 대담한지 모여 살기는커녕 작은 잎을 하나씩 차지하고 잎 앞면에 버젓이 앉아 지냅니다. 사람으로 치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죠. 또 큰턱이 튼튼해서 주맥만 빼고 잎살과 잎맥을 다 씹어 먹어 작은 잎은 주맥과 약간의 잎살만 남아 너덜너덜합니다.

아기 금빛갈고리나방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분비물과 똥으로 몸을 덮습니다. 아기 금빛갈고리나방은 다른 곤충에 비해 몸집이 큰 편이라 다 자라면 3㎝가 넘고, 더구나 나뭇잎 위에 앉아 식사하니 포식자의 눈에 쉽게 띕니다. 그래서 온몸을 새똥으로 변장해 '나 맛없어!'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금빛갈고리나방 애벌레.
금빛갈고리나방 애벌레.
그렇지만 아기 금빛갈고리나방이 모두 살아남는 것은 아닙니다. 쌍살벌류, 나나니벌류, 거미류, 침노린재류, 그리고 새들까지. 수많은 포식자가 주변에 있습니다. 그들이 공격하면 아기 금빛갈고리나방은 꼼짝없이 먹이가 됩니다. 하기야 힘센 포식자가 아기 금빛갈고리나방을 잡아먹지 않으면, 녀석들의 개체 수는 한없이 늘어나 옻나무과 식물의 잎을 다 먹어 치울 게 빤하고 결국에는 먹이가 모자라 모두 굶어 죽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힘센 포식자가 금빛갈고리나방의 수를 일정하게 조절해 주기 때문에 옻나무과 식물을 중심에 둔 먹이망이 건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인 녹색식물, 그 식물을 먹는 곤충, 그 곤충을 잡아먹는 포식자, 배설한 똥 등 자연 세계는 먹이 전쟁을 통해 생태계가 균형을 이룹니다. 이제 산길을 가다 옻나무, 붉나무를 만나면 한 그루도 허투루 보고 지나갈 일이 아닙니다. 뭇 생물들의 치열한 삶이 벌어지는 곳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