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희 박사의 신통방통 곤충] 모래거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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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09 09:35

뜨거운 여름엔 풀잎 아래로 피서
겨울엔 모래 속에서 겨울잠 자요

	우리가 바로 모래밭의 안방마님~!/함께 모여 있는 모래거저리.
우리가 바로 모래밭의 안방마님~!/함께 모여 있는 모래거저리.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바닷가 모래밭. 하도 척박해 '이런 곳에서 생물이 살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그런데 이곳에도 많은 생명이 삽니다. 모래거저리, 바닷가거저리, 해변해초꼬마거저리 등이지요.

이 중 모래거저리는 모래밭의 '안방마님'입니다. 동해안·서해안·남해안 가리지 않고 풀이 자라는 바닷가 모래밭이면 어김없이 만날 수 있거든요. 만약 바닷가에서 녀석이 보이지 않으면 그곳 생태계가 망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모래거저리는 딱지날개가 딱딱한 딱정벌레로 거저리류에 속합니다. 거저리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요? 중국에서 거저리를 '가짜로 걷는 곤충'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아마도 '걷다'란 말에서 생겨나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실제로 거저리는 걷기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모래거저리는 몸 크기가 서리태(껍질은 검고 속은 파란 콩)만 하고 색깔도 검은색이라 모래밭에서 금방 눈에 띕니다. 녀석은 뛰어나게 예쁘지도 않았습니다. 두루뭉술한 것이 그저 까만색 통치마 하나를 질끈 둘러 입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구슬을 촘촘히 꿰놓은 것 같은 더듬이는 봐 줄 만합니다.

모래거저리는 모래가 너무 뜨거워 발 디디기가 어려운 여름, 피서를 갑니다. 피서지라고 해 봤자 풀잎으로 그늘진 모래 속이나 버려진 널빤지 아래예요. 쓰레기 더미 아래에서 지내기도 하지요. 가을에는 드문드문 보이고,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아예 모래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가 겨울잠을 푹 잡니다.

녀석을 한 번 건드려봤습니다. 꼼짝도 안 하고 가짜로 죽은 척을 합니다. 실제로는 혼수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가사 상태'라고 하는데, 녀석은 어떤 자극을 받으면 자동으로 정신을 잃습니다. 몇 분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의식이 되돌아와 오그렸던 다리와 더듬이를 펴고 도망갑니다.

모래거저리는 위험한 상황이 되면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 말고도 하는 일이 또 있습니다. 시큼한 냄새를 내뿜는 것입니다. 모래거저리는 폭탄먼지벌레처럼 꽁무니에서 화학 독성 폭탄을 분사해 적을 쫓아내요. 자기 목숨이 위험에 처했을 때만 폭탄을 내뿜기 때문에 방어용 무기인 셈입니다. 신기한 것은 폭탄먼지벌레의 강력한 방귀 폭탄은 100도나 될 정도로 뜨거운데, 모래거저리의 방귀 폭탄은 뜨겁지가 않고 오히려 차갑답니다.
	몸통이 철사처럼 길고 매끈한 모래거저리 애벌레.
몸통이 철사처럼 길고 매끈한 모래거저리 애벌레.
상상의 숲 ‘곤충의 빨간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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