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인터뷰] '수도권 지하철 환승 지도' 만든 함정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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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10 10:25

휠체어로 지하철 타려면 곳곳이 장애물… 장애인 맞춤 환승 영상 만들었죠

"여기부터는 안내 표시판이 없네요. 앞으로 계속 가다가 왼쪽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엘리베이터는 경사로를 올라가야 있어요."

함정균(46)씨는 장애인에게 각 지하철역 환승 경로를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어쩌다 장애인 함박TV' 운영자다. 중증장애인인 그는 지난 5월 마침내 교통 약자를 위한 '수도권 지하철 환승 지도'를 완성했다. 지금까지 1년 6개월간 수도권 지하철 62개 환승역에 직접 가서 161개 영상을 찍은 끝에 마무리한 작업이다. 지하철에서 환승할 때마다 곤란을 겪는 장애인을 위해 엘리베이터와 리프트로 갈아타는 경로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휠체어와 유모차 이용자의 시행착오를 덜어주는 '숨은 영웅' 함씨를 지난 5일 서울 강북구 미아사거리역에서 만났다.
	서울 강북구 미아사거리역 플랫폼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함정균씨가 미소 짓고 있다. 경력 12년의 마술사였던 그는 2013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장애인을 위한 지하철 환승 정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김종연 기자
서울 강북구 미아사거리역 플랫폼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함정균씨가 미소 짓고 있다. 경력 12년의 마술사였던 그는 2013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장애인을 위한 지하철 환승 정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김종연 기자
교통 약자에게 험난한 지하철역, 안내도 부족

함씨의 전동휠체어 앞에는 촬영용 카메라와 마이크, 핸드폰이 달려 있다. 영상 제작을 위해 구입한 장비들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가는 길이 완전히 달라요. 장애인은 더 멀리 돌아가야 해요. 휠체어는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 없잖아요. 이 시설들이 어디에 설치돼 있는지도 제대로 안내되지 않은 경우가 많죠." 지하철역을 둘러보던 함씨가 말했다. 비장애인을 위한 환승 정보는 넘쳐난다. 몇 번째 차량 칸에서 내려야 효율적인지까지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정보는 찾기 어렵다. 겨우 찾은 리프트는 타고 내리는 데만 40분이 걸리기도 한다.

그는 2016년 11월 처음으로 영상을 제작했다. 한 역에서만 30분 이상 길을 헤맨 날이었다. 생각해보니 다른 장애인들도 비슷할 것 같았다. 겨우 찾은 환승 경로를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조회 수가 점점 올라가더니 '고맙다'는 댓글도 달렸다.

이후 본격적으로 영상 제작에 뛰어들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리프트가 설치된 계단의 경사가 가파른 신길역, 충무로역에서는 공포를 느꼈다. 더 나은 영상을 찍으려고 같은 길을 3번 오가기도 했다. 4개 노선이 지나는 서울역에서는 무려 11개의 영상을 찍었다.

열 손가락 중 오른쪽 검지와 왼쪽 중지만 쓸 수 있는 그에게는 영상 편집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일일이 자막을 넣어야 했고,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새 팔 전체가 욱신댔다. 4분짜리 영상을 만드는 데 7시간이 걸린 적도 있다. 하지만 이동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힘이 솟았다.

"미국에서 제 영상 믿고 한국 여행 오신대요"

함씨가 사고를 당한 건 지난 2013년. 교통사고로 목뼈가 손상돼 팔다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당시 그는 경력 12년의 마술사였다. 국내외를 누비며 쉴 새 없이 공연을 하던 그가 2년 동안 병원에만 누워 치료를 받았다. 세상과 단절됐다는 좌절과 소외감이 그를 덮쳤다. 하지만 낙천적인 성격이 곧 그를 일으켰다. 병상에서 스마트폰으로 그동안 쌓은 마술 노하우를 담은 책을 썼다. "제 아이들인 쌍둥이 남매(당시 6세)를 보고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빠가 지쳐 있으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없잖아요. 사고 후에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져서 행복해요."

지하철 환승 영상 제작도 활력이 됐다. 각종 공모전에서 상을 타는 등 우수한 콘텐츠로 인정받으면서 자신감이 커졌다. '그동안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이 영상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는 댓글이 달렸다. '이 역을 촬영해 달라'는 요청도 있다.

"최근에 미국에서 연락이 왔어요. 중증장애인 남편을 둔 분인데 한국을 여행하고 싶지만 막막하셨대요. 그러다 발견한 제 영상이 마치 '한 줄기 빛'과 같다고 했죠. 제 영상만 믿고 다음 달에 한국에 오신답니다(웃음)."

그의 목표는 올해 안에 경기권 환승 영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앞으로 할 일이 많아요. 누군가가 장애 때문에 이동에 불편을 겪지 않는 날까지 사명감을 가지고 움직여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