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판타지 소설|사라진 베이징맨] (67화) '별들의 해협'에 갇힌 배 쪽으로 누군가 걸어오고 있어!

  • 하지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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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11 09:38

수리는 배에 올라타 방향타를 잡았다. 배를 때리는 거친 파도와 빗줄기는 없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의 바람이 줄기차게 불고 있었다. 하지만 배는 끄떡하지 않았다. 오히려 돛은 더욱 팽팽해졌다. 스키드블라니르의 힘이었다.

"저거 갈매기야?"

마루가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떠들었다. 사비가 말했다.

"여기가 바다냐? 갈매기라니? 쯧쯧."

	[청소년 판타지 소설|사라진 베이징맨]
일러스트=나소연

마루가 갈매기라고 착각한 건 사실 허공을 가득 채운 별들의 빛이었다. 빽빽하게 모여 있는 별들은 각각의 별 무리로 인해 날개 달린 갈매기처럼 보였다. 수리는 별의 해협을 뚫고 나가는 기분이었다. 수리가 방향타를 움직일 때마다 별 무리는 파도의 물거품처럼 허무하게 부서졌다. 점점 더 별들의 해협은 치밀해지고 단단해졌다. 배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급기야 별들이 배를 둘러싸고 있었다.

"배가 더는 움직이지 않아. 내가 마법사가 아닌 이상 더 이상의 방법은 없을 것 같아."

수리는 크게 낙담했다. 당장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도 않았다.

"빨리 가야 할 텐데. 릴리가 걱정스러워."

사비는 릴리가 죽을까봐 걱정됐다.

"그럼 아빠가 아니었단 말이야?"

마루는 반항적으로 소리쳤다.

"아빠라면 이런 상황이 생길 수가 없잖아? 또 다른 누군가 들었다는 거잖아? 그렇다면 누구지?"

마루는 의심쩍은 것이 많았다.

"그 노래의 암호를 또 다른 누군가 알고 있는 건 아닐까?"

마루의 의심은 계속됐다.

"그럴 리 없어."

수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지?"

참다못한 퀴번사제가 수리에게 날 선 질문을 던졌다. 퀴번사제는 사실 배에 올라탄 그 누구보다 마음이 급했다.

"무슨 말씀하시려는지 알아요. 릴리움이라는 노래를 아는 사람이 있겠죠. 많겠죠. 당연하죠. 그 노래를 나와 아빠만 아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릴리움이라는 노래를 내가 난수 방송이라는 채널로 보냈잖아요. 그건 릴리움이라는 노래를 통해서 알리려는 암호를 아빠만 알 수 있다는 뜻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그저 아름다운 노래네? 릴리움이네? 이렇게 듣게 되겠지만, 아빠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거죠."

"아빠가 릴리움이라는 노래를 어떤 암호로 받아들인다는 거지?"

퀴번사제는 여전히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특별한 구조 신호요. 아빠가 릴리움을 들었다면 내 신변에 위험이 닥쳤다는 것을 알 거예요. 그래서 탈출…."

순간 수리를 말을 멈췄다. 수많은 별이 이제는 배를 우악스럽게 조여 오고 있었다.

"아빠가 너의 노래를 듣고 위험을 알아차린 거라면서? 그런데 이게 뭐지? 당장 죽게 생겼어. 별들이 우리를 조여 오고 있잖아?"

"좀 가만있어 보세요. 그동안 우린 갖은 모험을 다하며 다양한 위험을 겪었지만 보시다시피 지금까지 안 죽었어요. 어른이 왜 그래요?"

마루는 퀴번사제를 어린아이 나무라듯 했다. 퀴번사제는 마루를 노려보다가 그만 고개를 돌렸다.

"저것 봐. 저게 뭐지?"

사비가 무언가를 가리켰다. 길이었다. 그런데 길이 달려오고 있었다. 수리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빠가 길을 보내주었을 거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길이었다. 길의 빛은 너무나 찬란해서 별들마저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수리는 방향타를 움직여 뱃머리가 빛의 길을 향하게 했다. 뱃머리 장식으로 붙어 있는 석영 조각이 태양처럼 이글거렸다. 그러자 배는 스키드블라니르의 정체성을 찾았는지 순식간에 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쏜살같이 내달렸다. 얼마나 빠르게 달렸는지 잠깐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별들은 아직도 배를 감싸고 있었다. 아무리 길의 빛으로 내달렸어도 결국 또 별들의 해협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럴 리가 없을 텐데."

수리는 아빠가 난수 방송을 들은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 듣고 수리를 이곳으로 끌어들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순간 배가 '끼익' 하는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다. 별들이 모여 있는 공간은 마치 심장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크게 부풀었다가 작게 쪼그라들기를 반복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 열심히 풀무질을 하는 것처럼 계속 반복했다.

"미로의 중심으로 들어왔어. 별들이 체계 없이 아무렇게나 모여 있어. 아무렇게나 움직이고 있어. 그리고 이 시공간은 아직도 자신의 형태를 찾지 못하고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거야. 자. 느껴보라고."

수리가 말했다.

"그럼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온 사람이 아빠야? 그럼 아빠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사비는 아빠부터 찾았다.

"그럼 여기가 도대체 카툰연구소의 12번 방에 있는 미로의 중심이야? 아니면 진짜 우주의 새벽인 미로의 중심이야? 헷갈려."

마루가 방방 뛰면서 말했다.

"빨리 릴리를 살려야 해."

퀴번사제가 말했다. 그때 배를 둘러싸고 있던 별들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방들이 나타났다. 수리에겐 역사적인 방이었다. 퀴번사제와 릴리가 살았던 70만 년 전의 그 언덕과 카툰연구소의 아빠의 서재. 베이징공항의 사람들로 북적이던 로비와 키 큰 측백나무가 경이로웠던 핑의 12층 아파트. 베이징맨이 부활했던 주구점의 용의 동굴과 베이징 시내의 어둡고 습한 지하도시, 퀴번사제가 갇혀 있던 지하동굴 감옥과 퀴번사제가 연금술을 연마하던 로마의 연금술사의 방까지…. 그 모든 방이 수리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배신자 핑이 보였다. 핑은 로마에 있던 퀴번사제의 연구실에서 골든릴리 책을 읽고 있었다. 무슨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보였다.

"릴리는 다행히 안정을 찾았어. 안색이 좋아졌어. 고마워."

퀴번사제가 수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아직 고맙다는 말은 일러요. 베이징맨을 진짜 사라지게 해야죠. 그때 고맙다는 말을 해주세요."

수리는 퀴번사제를 안심시키는 말을 했지만, 여전히 시선은 눈앞에 펼쳐진 방들을 향해 있었다. 릴리를, 베이징맨을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수리를 잔뜩 억누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배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별 무리 때문이 그 모습이 확실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별들의 해협을 그렇게 걸어오고 있었다. 수리는 아직 모습을 감추며 걸어오는 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