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훈 기자의 씨네 드 소년] '시네필'이 되는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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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13 09:37

반복 관람하고 '엔드 크레디트' 살펴보면… 영화가 더 잘 보인다

소품·카메라 동선 등 색다른 면 발견
영화 제작자 이름 새긴 엔드 크레디트
끝까지 보며 작품 대한 경의 표현도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축구 마니아', 힙합에 빠진 사람은 '힙합 마니아'라고 부릅니다. 영화 좀 본다는 사람은 '영화 마니아'가 되겠죠. 영화계에는 마니아 중의 마니아를 이르는 특별한 이름도 있습니다. 바로 '시네필(cinéphile)'이죠. 프랑스어 'cinéma(영화)'와 'phil(좋아하다)'의 합성어인데, 우리말로 옮기면 '영화광(狂)' 정도일까요. 시네필은 영화 보는 방법도 남다르답니다. 영화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영화 감상법을 소개합니다.


	‘엔드 크레디트’도 영화의 일부다. 엔드 크레디트를 끝까지 보는 일은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확인하는 작업일 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든 이들에게 보내는 경의의 표시이기도 하다. 사진은 프랑스 칸 영화제 60주년 기념작 ‘그들 각자의 영화관’(2007)에 포함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 ‘One fine day(어느 좋은 날)’의 한 장면.
‘엔드 크레디트’도 영화의 일부다. 엔드 크레디트를 끝까지 보는 일은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확인하는 작업일 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든 이들에게 보내는 경의의 표시이기도 하다. 사진은 프랑스 칸 영화제 60주년 기념작 ‘그들 각자의 영화관’(2007)에 포함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 ‘One fine day(어느 좋은 날)’의 한 장면. / 출처: IMDB

◇같은 영화 두 번 보기

"영화를 사랑하는 첫 단계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다. 둘째는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고, 셋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

1950년대 후반, 프랑스 영화계에 '새로운 물결(누벨 바그·Nouvelle Vague)'을 몰고 온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말입니다. 위대한 감독이면서 영화광이었던 그는 좋은 영화는 두 번이 아니라 백 번도 다시 볼 가치가 있다고 믿었어요.

이해가 잘 가지 않죠? 이미 본 영화를 왜 또 봐야 하는 걸까요? 그건 영화가 관객의 사정을 봐 주지 않고 질주하는 기차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을 때, 이야기가 잘 이해되지 않거나, 되새기고 싶은 구절이 생기면 책장을 앞으로 넘기곤 하죠. 그러나 영화는 그럴 수 없습니다. 쉬지 않고 앞으로 달려가니까요.

반복 관람을 하면 처음 봤을 때는 이야기를 좇느라 놓친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의 유연한 움직임과, 배우의 미세한 표정 변화가 눈에 들어 오고, 의미 없어 보였던 작은 소품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깨닫고 무릎을 치게 됩니다. 자막을 읽어야 하는 외국 영화라면 반복 관람으로 얻을 게 더 많겠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어둡던 극장이 밝아지면, 관객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아직 영화를 다 본 게 아닌 데도 말이에요. 마지막 쇼트가 나왔다고 해서, 영화가 끝난 건 아닙니다. '엔드 크레디트(End Credits)'가 남았거든요.

영화 말미, 검은 바탕에 깨알 같은 글씨가 죽 올라가는 광경을 극장에서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걸 엔드 크레디트라고 불러요. 영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이름과 역할을 기록한 목록이죠.

엔드 크레디트는 영화가 '종합 예술'이라는 것을 알리는 상징입니다. 연출과 각본, 촬영과 조명, 연기와 음악이 어우러진 작품이라는 것을 각자의 위치에서 땀 흘린 이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으로 드러내죠.

관객은 엔드 크레디트 덕분에 훌륭하게 연기한 단역 배우와 멋진 영상을 만든 촬영 감독,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미술 감독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엔드 크레디트를 보는 습관을 들이면 어느샌가 '맞아, 이 사람 저번에도 재밌는 영화를 만들었지' 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 때가 찾아올 거예요.

엔드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은 그 자체로 영화에 경의를 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방금 본 영화가 훌륭했다면 엔드 크레디트에 새겨진 이름들은 지켜봐 주세요. 가슴 가득 여운을 안고 고요한 극장을 홀로 빠져나오는 경험도 색다를 겁니다.

[오늘의 추천 영화]

시네마천국
1988년 l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


	시네마천국 포스터.
시네마천국 포스터. / 출처: 올포스터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0년대, 이탈리아 잔카르도에 있는 '시네마천국(Cinema Paradiso)'이라는 극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오랫동안 영사(영화를 상영하는 일) 기사로 일한 알프레도 할아버지와 영화를 좋아하는 소년 토토의 우정을 그렸죠.

다짜고짜 찾아와 "영사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토토에게 알프레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같은 영화를 백 번도 넘게 봐야 하는 지겨운 일이야. 거기다 일요일에도 쉴 수 없다고." 점잖게 타이르려 해봐도 토토는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결국 '영화를 펼쳐내는 일'을 배우고야 말죠.

'시네마천국'은 영화에 대한 영화입니다. 영화라는 예술을 위해 평생을 바친 영화인에 대한 존경이 곳곳에서 묻어나죠. 시네필이라면 반길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