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생이거저리를 본 적이 있나요? 아무 데서나 사는 녀석이 아니니 아마 못 본 독자들이 많을 거예요. 남생이거저리는 동해안 몇몇 바닷가에만 살고 있습니다. 바닷가 모래 언덕보다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에 사는데, 먹잇감이 모래사장에 많기 때문이지요. 녀석은 파래, 김, 다시마, 톳 등 해초를 최고의 밥으로 칩니다. 파도에 떠밀려 온 해초가 바닷가 모래밭에 있으니 그곳에 눌러 살 수밖에요.

바다 속에서도 광합성을 하는 해초는 영양분이 많아 남생이거저리에게 최고의 영양밥입니다. 특히나 해초는 무더기로 밀려와 양이 많으니 녀석들뿐 아니라 알에서 깨어난 새끼가 먹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해초를 들추면 어른벌레와 애벌레가 같이 보일 때가 잦습니다. 어른벌레와 애벌레가 모두 같은 집에서 같은 밥을 먹고 사는 것이지요.

남생이거저리 생김새는 마치 뚱뚱한 계란 같습니다. 넓적한 등판에다 얼룩덜룩한 무늬까지 있어 언뜻 보면 남생이를 닮았습니다. 모래 속으로 파 들어가려는 녀석의 머리 쪽에 손가락을 세우고 막아 봅니다. 순간 눈 깜작할 사이에 더듬이와 6개 다리를 오그려 배 쪽으로 숨깁니다. 그러곤 꼼짝도 안 합니다. 혼수상태인 '가사 상태'에 빠진 것이죠.

그 덕분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진을 실컷 찍습니다. 플래시가 아무리 터져도 깨어날 생각을 안 합니다. 이삼 분 정도 지났을까? 더듬이와 다리 끝이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오그렸던 더듬이와 다리를 쭉 펴고 재빨리 모래 위를 걸어갑니다. 여느 거저리들과 마찬가지로 건드리면 충격을 받아 일시적으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것이지요.

이번에는 녀석을 조심스레 잡았다가 놔줍니다. 그리고 잡았던 손의 냄새를 맡아 보니 역시 시큼하고 향긋한 거저리 특유의 냄새가 납니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내뿜는 화학 방어 무기 냄새지요.

무늬가 있고, 몸이 적갈색인 녀석의 딱지날개에도 흰무늬가 있습니다. 재밌게도 어떤 녀석은 딱지날개가 아예 흰색입니다. 몸 색깔이 달라도 녀석들은 모두 남생이거저리입니다. 함께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으니 같은 종이지요.

이렇게 종이 같은데도 몸 색깔 등 차이가 있는 것을 '변이'라고 합니다. 몸색이 다양해도 녀석들이 모래와 섞여 있으면 잘 골라내지 못할 정도로 모래 색깔과 비슷합니다. 보호색을 띠면 천적의 눈을 헷갈리게 한다는 사실을 어찌 알았는지 기특합니다.

상상의 숲 ‘곤충의 유토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