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초등생 사이버 폭력이 늘어난다

  • 프린트하기
  • 이메일보내기
  • 기사목록
  • 스크랩하기
  • 블로그담기

입력 : 2018.09.11 10:44

데이터 셔틀·채팅 감옥·방폭… 밤낮없이 괴롭혀
소리 없는 '학폭'에 멍드는 아이들

초등생 10% "사이버 폭력 피해 경험 있다"
소셜미디어 통한 욕설·악플·따돌림 '급증'
신체적 폭력 없어 방관, 쉽게 가담하기도
가정서 올바른 스마트폰 교육이 이뤄져야


	초등생 사이버 폭력이 늘어난다
"너 같은 ×을 낳은 너희 부모가 불쌍하다" "더러워. 냄새 나니까 좀 씻고 다녀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 A 양이 친구들로부터 받은 카카오톡 내용이다. 2년 전 대구에서 전학 온 A 양은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6학년이 된 후로는 같은 반 학생들이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A양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한밤중 욕설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기본. 일부 학생은 A 양의 모습을 몰래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고 댓글을 달아가며 온갖 조롱을 했다.

소셜미디어에서 밤낮없이 이뤄지는 '사이버 폭력'에 아이들이 멍들고 있다. 사이버 폭력(Cyber Bullying)은 페이스북·카카오톡 등 소셜미디어에서 피해자를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지난달 27일 교육부가 내놓은 '2018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한 초등학생 3만5900명 중 10%(약 3300명)가 사이버 폭력을 경험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사이버 폭력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이버 폭력에 시달리는 초등학생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간 적이 있었거든요? 그날 남자애들이 제 사진을 몰래 찍어서 반 친구들이 모두 있는 단체 채팅방에 올렸어요. 사진을 본 다른 친구들이 '못생긴 오이' '옷 진짜 더럽게 못 입는다' 하면서 놀리는 거예요. 그날 집에 와서 펑펑 울고 티셔츠를 다 찢어버렸어요."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 조모 양은 단체 채팅방에서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됐던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조 양은 "다 장난이라고 했지만 당하는 사람은 절대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친구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은근히 따돌리고 무시할 때 죽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사이에서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사이버 폭력도 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발표한 '2017년 사이버 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초등학생 1500여 명 중 16.6%가 사이버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4년 전 같은 조사에서 사이버 폭력 경험자는 6.0%에 불과했다.

떼카·방폭… 도망갈 길이 없어요

사이버 폭력의 종류는 다양하다. ▲단체 채팅방에서 피해 학생에게 집단으로 욕설하는 '떼카' ▲괴롭힘을 피해 단체 채팅방에서 나간 학생을 계속 초대해 욕설하는 '채팅 감옥' ▲단체 채팅방에 피해 학생만 남겨두고 모두 퇴장해 따돌리는 '방폭' ▲피해 학생에게 데이터를 빼앗는 '데이터 셔틀' 등이 있다.

손석한 연세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학교폭력은 피해자가 전학을 가거나 학교를 나가지 않는 방법 등으로 어느 정도 '회피'가 가능했지만, 사이버 폭력에선 도망갈 길이 없다"며 "실제로 병원을 찾은 사이버 폭력 피해 학생들은 언제 어디서나 공격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때리는 것도 아닌데 학교폭력이라고요?"

문제는 사이버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는 점이다. 손 원장은 "신체적 폭력은 피해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 가담하지 않는 학생이 많다. 하지만 사이버 폭력은 피해자의 고통을 가늠하기 어려워 가해 학생을 따라 쉽게 가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김모(5학년) 군은 "여자애들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올 때마다 장난으로 '못생겨서 토할 것 같다'는 댓글을 단다"며 "친구들이 웃기다고 해 그게 학교폭력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인천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이모 양도 "친구들이 단체 채팅방에서 한 친구를 놀리고 욕하는 걸 종종 봤다"면서 "때리는 건 아니니까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 선생님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이버 폭력을 막기 위해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끼리 단체 채팅방을 만들지 못하도록 한다. 전남 한 초등학교의 강모 교사는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거나 단체 채팅방을 개설하지 못하게 하는 학교도 있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가정에서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 습관을 유심히 살펴보고 지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 관계자는 "사이버 폭력에 대처하기 위해 ▲폭력 증거를 캡처하고 ▲믿을 만한 어른에게 알리거나 ▲학교폭력 신고 전화 117에 신고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