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그때 그 사건] 한양 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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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11 10:44

산과 강에 둘러싸인 '한양', 조선의 도읍지로 낙점

이성계(1335~1408년)는 왕위에 오른 후 도읍을 옮기기로 결심했어요. 풍수지리에 밝은 승려인 무학대사(1327~1405년)에게 땅을 알아보게 했죠.

무학대사가 처음 고른 땅은 충남 공주에 있는 지금의 계룡산 근처였어요. 그런데 이곳은 땅이 좁아서 백성들이 살기 어렵고, 토지도 비옥하지 못했어요.

다음으로 고른 곳이 한양이었어요. 한양은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가 서쪽에는 바다가 있고 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있었어요. 적이 쳐들어와도 방어하기에 유리했어요. 또 나라의 중심에 있어 백성에게 거둔 곡식과 물자를 나르기도 좋았어요.
	[조선, 그때 그 사건] 한양 천도
무학대사는 뒤에는 인왕산 줄기가 있고 왼쪽으로는 백악산(지금의 북악산), 오른쪽으로는 남산을 둔 곳(지금의 종로구 필운동)을 궁궐터로 정했어요. 백악산과 남산이 좌청룡(左靑龍)과 우백호(右白虎)가 돼 궁궐을 잘 지켜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성계의 충신이었던 정도전(1342~1398년)이 이 의견에 반대했어요. 무학대사의 말대로라면 궁궐의 방향이 동쪽이 돼야 하는데, 역사적으로 궁궐은 모두 남쪽이었다며 남향을 고집한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의 경복궁 자리에 조선의 첫 궁궐이 들어서게 됐어요.

그 후 한양에는 '도성'이 세워졌어요. 도성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도읍을 보호하기 위해 왕이 사는 궁전과 그 주변을 둘러싼 성이에요. 조선 왕조 500년의 도읍지가 세워진 거예요. ▲숭례문(남대문)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숙청문(숙정문)이 도성의 사대문으로 출입구 역할을 했어요.

예림당 ‘대한민국 어린이라면 꼭 알아야 할 우리 역사 100대 사건’ (전지은 글, 홍성지 그림, 김재일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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