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 박물관 나들이] 벽에 걸린 거대한 물고기, 크시팍티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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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12 09:42

곰처럼 거대한 머리… 호랑이처럼 뾰족한 이빨…
파충류냐고? 아니 물고기야!

1822년 영국의 아마추어 고생물학자 기드온 만텔은 사우스다운스 지역에서 동물 턱뼈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12㎝ 길이의 뼈에는 뾰족한 이빨 11개가 붙어 있었다. 만텔은 이 턱의 주인이 악어처럼 생긴 파충류일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이 턱의 주인은 파충류였을까?

월척이오!

만텔이 턱뼈 조각을 발견하고 23년이 지나서야 턱뼈의 정체가 밝혀졌다. 1845년 스위스의 생물학자이자 지질학자였던 루이 아가시는 이 뼈가 물고기의 아래턱뼈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가시는 자신이 쓴 책에서 턱뼈의 주인이 악어가 아니라 물고기라고 바로잡았다.

유럽이 아닌 바다 건너에 있는 미국에서도 이 물고기 화석이 발견됐다. 화석을 발견한 사람은 내과의사이자 세균학자인 조지 스턴버그였다. 그는 1870년 어느 날 길이가 40㎝나 되는 지느러미 화석을 발견했다. 스턴버그는 이 화석을 고생물학자 조셉 레이디에게 보냈다. 지느러미는 칼처럼 뾰족했다. 그래서 레이디는 이 물고기에게 '칼 지느러미'라는 뜻의 그리스어 '크시팍티누스(Xiphactinus)'라는 학명을 붙였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872년에 더욱 잘 보존된 크시팍티누스의 화석이 발견됐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크시팍티누스의 골격 화석은 미국 캔자스주(州)의 사막 한가운데서 발견했다. 이 화석은 몸길이가 무려 5m에 달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보다 조금 더 큰 크기다!


	1억 년 전에서 6600만 년 전 사이에 살았던 고대 물고기 '크시팍티누스'.
1억 년 전에서 6600만 년 전 사이에 살았던 고대 물고기 '크시팍티누스'. / 조재무

2m 물고기를 삼킨 물속의 대식가

크시팍티누스는 공룡 시대가 끝날 무렵인 1억 년 전에서 6600만 년 전까지 살았던 물고기다. 이 물고기의 완벽한 골격을 최초로 발견한 코프의 말을 빌리면 크시팍티누스는 '불도그'라는 개처럼 생겼다. 주둥이는 짧고 머리는 곰처럼 거대했으며, 이빨은 10㎝ 정도로 호랑이 이빨처럼 컸지만 얇았다. 얼핏 보기에 크시팍티누스는 강력한 턱 힘으로 먹이를 씹어 먹었을 것 같다. 하지만 크시팍티누스의 턱은 힘이 약했다. 그럼 크시팍티누스는 이 턱을 이용해 어떤 먹이를 먹었을까?

비밀은 미국에서 발견된 화석에서 풀렸다. 1952년 미국의 고생물학자 조지 스턴버그는 캔자스주에서 4m 길이의 크시팍티누스 골격 화석을 발견했다. 이 화석의 배 속에는 크시팍티누스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은 것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크시팍티누스의 배에 들어 있던 것은 다른 물고기였다.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온전한 물고기 말이다. 놀라운 것은 크시팍티누스에게 잡아먹힌 물고기의 크기였다. 몸길이가 무려 2m나 됐다. 크시팍티누스는 자기 몸길이의 절반이나 되는 거대한 먹이를 한 번에 꿀꺽 삼켰던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햄버거 15개를 한 번에 삼키는 것과 같다.


	육식성 바닷물고기 파키리조두스. 오늘날의 다랑어처럼 작은 해양 동물을 잡아먹으며 살았다.
육식성 바닷물고기 파키리조두스. 오늘날의 다랑어처럼 작은 해양 동물을 잡아먹으며 살았다.
물고기가 사막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크시팍티누스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물고기인 '파키리조두스'도 주목할 만하다. 파키리조두스는 다 자라면 몸길이가 최대 3m나 되는 거대한 물고기다.

재미있는 사실은 파키리조두스와 크시팍티누스의 화석이 북아메리카 내륙에서 자주 발견된다는 것이다. 드넓은 바다에서 살았던 물고기들이 왜 사막에서 발견되는 것일까? 파키리조두스와 크시팍티누스가 살았던 공룡 시대에는 북아메리카 대륙에 메마른 사막이 없었다. 그 대신 육지를 가로지르는 얕고 따뜻한 바다가 있었다. 이 바다에는 파키리조두스와 크시팍티누스뿐 아니라 버스만 한 몸집의 바다악어도 살았다. 이처럼 대륙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바다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그 이유는 지구 표면을 이루는 여러 개의 땅덩어리인 '판' 때문이다. 공룡 시대가 끝나갈 무렵 판 두 개가 서로 부딪쳤다. 하나는 북아메리카 대륙을 포함하는 '북아메리카판'이었고, 다른 하나는 동쪽에 있던 '패럴론판'이라 불리는 해양판이었다. 두 개의 판이 서로 부딪치자 북아메리카판보다 무거웠던 패럴론판이 밑으로 가라앉았다. 패럴론판은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북아메리카판을 잡아당겼고, 패럴론판이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은 북아메리카 대륙의 안쪽 땅을 낮아지게 만들었다. 이때 낮아진 땅으로 주변의 바다 생물들이 흘러들어 왔다. 파키리조두스와 크시팍티누스는 이렇게 만들어진 바다에 등장했고 그 뒤에 번성했다. 하지만 6600만 년 전 패럴론판이 완전히 가라앉고 북아메리카 대륙이 다시 높아지면서 파키리조두스와 크시팍티누스가 살았던 바다가 사라지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주로부터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로 떨어져 엄청난 규모의 대멸종이 일어났다. 거대한 물고기 파키리조두스와 크시팍티누스는 이때 티라노사우루스·트리케라톱스와 같은 거대한 공룡들과 함께 지구에서 사라졌다.

현암주니어 '우주와 지구, 생명의 역사-서대문자연사박물관' (글 박진영, 사진 조재무, 기획 서대문자연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