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고대 이집트 문명이 있게 한 '나일강의 선물' 중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한 식물이 있습니다. 바로 '파피루스'예요. 작게는 1m에서 크게는 5m까지 자라는 파피루스는 축축한 습지에서 사는 다년생 식물이랍니다.

파피루스는 고대 이집트어로는 '와제'라고 불렸어요. 상형문자로는 아래와 같이 썼답니다.

파피루스의 새순이나 작은 가지는 식용으로 쓰입니다. 말린 뿌리는 태워서 연료로 사용할 수 있어요. 오랫동안 싱싱함을 유지하는 데다 꽃이 아름다워서 장식으로도 애용됐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로 종이를 만들어 쓰기도 했어요. 오늘날 우리가 쓰는 '페이퍼(paper·종이)'라는 말도 파피루스에서 비롯된 것이죠.

파피루스는 6695㎞에 걸친 나일강 줄기를 따라 무성하게 자라며 고대 문명의 번성을 지켜봤답니다.

파피루스 줄기로 '종이'를 만들다

파피루스는 이집트 고왕국 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전해져요. 기원전 3100년 유적인 이집트 사카라 지역의 제1 왕조 '헤마카'의 무덤에서 최초로 발견됐죠.

파피루스로 종이를 만들기 전에 고대 사람들은 알 껍데기나 짐승 가죽, 평평한 돌 표면 등에 기록을 남기곤 했는데요. 파피루스로 종이를 만든 뒤에는 기록을 남기기가 훨씬 편했겠죠?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 줄기를 얇게 잘라 물에 불린 다음 투명해진 파피루스 줄기를 가로 세로로 겹쳐서 종이를 만들었어요. 풀을 쓰지 않고 망치로 파피루스 줄기를 오랫동안 두드려서 서로 붙게 했죠. 줄기를 여러 겹 겹쳐 만든 파피루스 종이에 글씨를 쓰면 잉크가 줄기 속 섬유질 사이에 갇혀 오랫동안 색깔과 형태가 유지됐답니다. 수천년 전 파피루스를 지금도 읽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파피루스 배를 타고 저승을 여행하는 왕

파피루스의 쓰임새는 이뿐만이 아니에요. 종이를 만들기 훨씬 전부터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로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만들어 사용했답니다. 파피루스 줄기를 이용해 밧줄·상자·가방·침대·의자·신발·커튼·장난감 등 온갖 물건을 제작했어요.

심지어 파피루스 줄기를 단단히 엮어서 나일 강을 건너는 데 필요한 배까지 만들었답니다. 파피루스로 만든 배는 이집트 고왕국 시대에 아비도스라는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됐어요. 폭 3m에 길이는 25m나 되는 이 배는 30명의 뱃사공이 노를 저을 수 있을 만큼 컸어요.

파피루스 배는 고기잡이를 할 때 주로 사용됐는데요. 훗날 나무로 배를 만들 수 있게 된 이후에도 파피루스 고깃배를 본뜬 배가 제작됐어요. 대표적인 예가 대 피라미드로 유명한 쿠푸왕의 배랍니다. 길이가 43m에 달하는 쿠푸왕의 배는 피라미드 남쪽 구덩이에 묻혀 있었어요. 아마 옛 사람들은 왕이 죽은 뒤 이 배를 타고 신들과 함께 하늘나라를 여행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종교의식을 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배라고 이해하면 쉬워요.

신화 속 파피루스… 아기를 보호한 신성한 식물

고대 이집트인들은 신이 세상을 만들었을 때 솟아나온 땅을 뒤덮은 식물이 파피루스라고 믿었어요. 그래서 이집트의 모든 신전에는 파피루스 모양의 기둥이 서 있죠.

어떤 학자들은 파피루스 기둥이 세워진 곳이 과거와 미래를 잇는 ‘입구’를 뜻한다고 주장해요. 이집트 테베지역에 있는 카르낙 신전의 중심에는 모두 134개의 파피루스 기둥이 세워진 ‘대열주식 홀(Great Hypostyle Hall)’이 자리 잡고 있답니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인들은 축복받은 영혼이 갈 수 있는 저승세계의 여행지 중 하나를 ‘갈대밭’이라고 불렀어요. 여기서 갈대밭은 바로 파피루스 밭을 의미해요.

파피루스와 관련한 신화도 있어요.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이야기인데요. 이시스는 ‘케미스’라는 곳에서 자식 호루스를 홀로 키웠어요. 남편 오시리스는 세트 신에 의해 목숨을 잃었죠. 케미스는 파피루스가 무성하게 자라는 이집트 북부 삼각주의 늪지대였답니다. 이시스는 세트 신의 눈을 피해 호루스를 애지중지 키웠는데요. 그래서 파피루스는 아기 호루스를 보호한 신성한 식물로 여겨져요.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여러 신에게 파피루스 지팡이를 바치는 장면을 담은 신전 벽화가 많죠. 마치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술 지팡이처럼 말이에요. 대표적인 예가 소의 모습을 한 하토르 여신과 고양이 모습을 한 바스테트 여신이 파피루스와 함께 있는 장면이랍니다.

출제자를 소개합니다

상형문자를 전공한 이집트학자 강주현 선생님은 2012년부터 올초까지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이집트 문명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3000년 전 고대 이집트 동화를 번역한 ‘파피루스 속의 이야기 보따리’ 시리즈를 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