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친구가 때리고 욕해도 아들은 자기가 바보라고 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지난 17일 올라온 글이다. 정부가 학교폭력을 뿌리 뽑을 대책을 세워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친구가, 가족이, 이웃이 학교폭력에 멍들었다는 애끓는 청원이 벌써 500건 넘게 나왔다. 교육부의 '2018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폭력을 경험한 학생은 5만 명에 달한다.

▲ 공연을 관람하는 ‘꼬마 태권도인’들. 이날 공연에는 태권도를 수련하는 전국 초등생과 태권도장의 관장과 사범 등이 참석했다./최항석 객원기자

학교폭력을 격파하기 위해 어린이조선일보와 국기원이 힘을 합쳤다. '태권도로 배운 예절과 인내, 배려하는 마음이 폭력 없는 건강한 학교를 만든다'는 '학.폭.격.파' 캠페인을 함께하고 있다.

지난 20일에는 서울 국기원 중앙수련장에서 태권도를 수련하는 초등생을 대상으로 학교폭력의 문제를 알리는 뮤지컬 공연을 무료로 선보였다. 도복을 차려입고 나타난 '꼬마 태권도인'들은 배우들과 하나가 돼 현장을 달궜다.

▲ 준범 역을 맡은 배우 김성훈이 공연 도중 라면을 먹는 연기를 하다 말고 객석으로 내려왔다. “라면 먹을 사람”이라는 김성훈의 말에 관객들은 “저요”하며 손을 들었다. 재미를 강조해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했다./최항석 객원기자

도복 끈 질끈 묶고 "서로 아껴줘야 친구죠!"

"우리가 언제 널 괴롭혔어? 그냥 재밌게 논 거잖아!"

'학교폭력 예방'이 주제인 뮤지컬 '심心풀이'의 초반부. 고등학생 준범이 같은 반 재호를 윽박지른다. 준범은 운동도 잘하고 성적도 좋아서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모범생으로 소문이 났다. 하지만 친구들은 준범을 '일진'으로 부른다. 사실 준범은 재호를 수시로 때리고, 심부름을 시키고, 가끔은 돈도 빼앗는다. 재호는 외톨이다. 친구들은 늘 당하기만 하는 재호를 '바보'라고 부른다.

이날 오전 10시, 공연이 시작되자 웃고 떠들기 바빴던 꼬마 관객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화려한 조명과 신나는 음악에 맞춰 배우들이 춤추고 노래하자 어깨를 들썩이며 공연에 몰입했다. 그러나 착하고 멋진 사람인 줄만 알았던 준범이 재호를 괴롭히기 시작하자 객석에선 "재호 때리지 마" "태권도로 혼내 준다"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복 끈을 질끈 매면서 분을 삭이는 학생도 있었다.

최근 태권도 3품을 땄다는 박정민(서울 강일초 5) 군은 "친구끼리 때리고 욕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서로 아껴줘야 친구다"라며 "내 몸을 지키기 위해서 태권도를 시작했는데 앞으로는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구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공연에 앞서 국기원 태권도 시범단이 화려한 태권도 공연을 선보였다./최항석 객원기자

웃고 울면서 자연스럽게 학교폭력 문제 깨달아

'심心풀이'는 가르침에 초점을 맞춘 보통 교육용 뮤지컬과 다르게 '재미'를 강조했다. 학교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뤘지만, '준범이 우연히 친구들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됐다'는 설정을 더해 누구나 흥미를 가지고 볼 수 있게 했다. 공연 제목처럼 심심풀이로 주변 사람을 괴롭혔던 준범이 잘못을 뉘우치고 재호와 진정한 우정을 나눈다는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관객이 울고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학교폭력의 실상을 깨닫기를 바랐다"는 게 '심心풀이'를 연출한 윤은대 극단 디아코노스 기획실장의 설명이다.

학생 9명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러 온 조유진(21) 서울 신동태권도장 사범은 "교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어른들이 봐도 좋을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박지은(29) 서울 갈현용인대태권도장 사범은 "아이들이 평소 '친구가 학교폭력을 당했다'거나 '나도 당할까 봐 무섭다'고 말한다"며 "아이들이 뮤지컬을 보면서 '저는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 뿌듯했다"고 했다.

국기원 관계자는 "대한민국을 이끌 미래세대가 학교폭력으로 고통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전 세계 태권도의 본산(本山·조직의 중심)인 국기원은 앞으로도 학교폭력을 뿌리 뽑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