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고대 이집트 최초의 파라오인 나메르에 대해서 배웠죠. 그리고 파라오의 존재를 입증한 결정적인 증거가 된 유물인 '나메르 화장판'이 무엇인지 알아봤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나메르 화장판에 숨어 있는 비밀들을 좀 더 자세하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나메르 왕의 이름을 새긴 '세레크'

나메르 화장판의 윗부분에는 바아트 여신 옆에 네모난 상자처럼 보이는 그림이 있죠. 이걸 '세레크'라고 부릅니다. 세레크는 왕의 이름을 담아내는 역할을 하는데요. '이름이 알려진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세레크는 상형문자로 이렇게 쓴답니다.

'세'<그림①>는 접어놓은 천을, '레'〈그림②〉는 입을, '크'〈그림③〉는 동물의 태반을 각각 상징해요. 그리고 이 그림〈그림④〉은 왕궁 정문을 형상화한 것이죠.

세레크에는 왕의 이름도 새겨져 있지만, 호루스 신도 함께 담겨 있답니다. 이게 중요해요. 파라오와 호루스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죠. 그래서 호루스를 상징하는 독수리 문양을 세레크에 함께 새기곤 했습니다. 고대 이집트 제1왕조의 세 번째 왕인 제트 왕의 세레크가 대표적이죠. 하지만 나메르 화장판에서는 호루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데요. 세레크 일부분이 파손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어요.

고왕국 4 왕조 이후부터는 '카르투슈' 사용

세레크가 고대 이집트 문명 초창기에 파라오와 호루스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사용한 '왕의 이름표'라면 '카르투슈'는 고왕국 4 왕조 이후부터 활발하게 쓰인 '왕의 명찰'입니다.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없었던 시기에 이 유물을 발견한 프랑스인들이 카르투슈(총구의 화약통)와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여줬죠. 나중에 원래 이름이 '셰네우'라는 것이 밝혀졌어요.

카르투슈를 둘러싼 둥근 고리는 '쉔'이라고 부르는 데요. '수호'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쉔 안에 들어 있는 카르투슈를 영원히 보호하겠다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바람을 담았죠. 쉔에는 파라오가 이승과 저승세계를 상징하는 둥근 고리를 따라 신들과 함께 하늘의 배를 타고 영원히 항해한다는 종교적인 의미도 있답니다.

나메르 왕은 실제로도 키가 컸을까?

나메르 화장판을 보면 나메르 왕이 모든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크게 묘사돼 있죠. 이것은 나메르 왕이 실제로 이렇게 거대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사실적인 원근법을 따르기보다는 중요한 정도에 따라 비율을 결정하는 이집트 예술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랍니다.

또 고대 이집트의 벽화나 유물에는 하나같이 인물의 정면이 아닌 옆모습이 묘사돼 있는데요. 인물의 코와 턱선, 수염 등이 옆모습을 통해 가장 분명하고 아름답게 표현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이 원칙은 고대 이집트 문명이 지속한 3000년 동안 변함없이 지켜졌답니다.

나메르 왕, 두 가지 왕관을 썼어요

나메르 화장판에는 나메르 왕이 서로 다른 모양의 왕관을 쓴 모습이 담겨 있어요. 둥그런 고깔모양의 왕관<그림①>은 상(上)이집트의 왕을, 끝 부분이 돌돌 말린 왕관<그림②>은 하(下)이집트의 왕이 썼죠. 두 개의 왕관을 겹쳐놓은 것이 통일 이집트의 왕관<그림③>이랍니다.

상이집트의 왕관은 ‘헤제트’로 ‘빛처럼 하얗게 빛난다’는 뜻이에요. 하이집트의 왕관은 ‘제세레트’로 ‘붉다’ ‘강하다’ 등 의미가 있죠. 통일 이집트의 왕관은 ‘세케메티’(상하이집트의 통치자) 또는 ‘페세켄트’(두 개의 왕관)라 불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