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연(48) 작가는 매일 자정 하루를 열었다. 오토바이 한가득 신문과 고양이 사료를 싣고 어깨에는 카메라를 둘러멨다. 동틀 무렵까지 사람들에게 신문을, 길고양이에게 밥을 배달했다. 햇살 들이치면 카메라를 들었다. 주린 배를 채우려 밤새 도시의 뒷골목을 쏘다녔을 길고양이의 고단한 삶을 10년 넘게 기록했다. '찰카기'라는 예명을 쓰는 그를 사람들은 '거리의 집사'라 부른다. 최근 환경재단 주관으로 열린 제1회 고양이영화제에서 '올해의 캣맘상'을 받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상이 졸업장이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아니어도 고양이들은 잘 지낸다'는 말이 듣고 싶었습니다."

10년 넘게 캣맘 활동… "우연히 찍은 사진, 인생 바꿔"

"까불이 왔네요. 왜 이렇게 늦었어."

지난 12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공원. 김 작가가 길손님을 반겼다. 갈색 털에 줄무늬가 있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김 작가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얘가 식탐이 많아요." 김 작가가 점퍼 주머니에서 간식을 꺼내 건네자 까불이가 허겁지겁 먹었다. 지각한 까불이까지 고양이 6마리가 식사를 즐길 무렵 김 작가는 조용히 카메라를 꺼냈다. '찰칵'. 시린 겨울을 나려 죽기 살기로 살을 찌우는 연약한 생명이 담겼다.

김 작가는 지난 2006년부터 '캣맘(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관악구 3개 동네에서 모두 22군데를 매일 돈다. 돌보는 길고양이만 50마리가 넘는다. 고양이는 영리한 동물이다. 밥 주는 사람이 성실하다고 판단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자리서 계속 기다린다. 반드시 올 것을 알아서다. "캣맘이 된 뒤로 여행 한 번 못 갔어요. 제 오토바이 소리만 들려도 '야옹'하고 달려오는데 어디 갈 수가 있어야죠."

우연히 찍은 고양이 사진 한 장이 그의 삶을 바꿨다. 월간지 기자로 일하던 그는 2001년 잡지사에서 나온 이후 취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담장에 앉아 있는데 가까이 가도 움직이질 않아요. 눈빛은 또 얼마나 고단하던지. 그때부터 고양이 사진만 찍었어요. 밥도 주게 됐고요."

길 위의 삶, 고스란히 카메라에

사진계 거장 최광호 작가가 2006년 주최한 '1019 사진상'에 당선되면서 이름을 알린 김 작가는 지금까지 전시회만 40회 넘게 열었다. 동물 사진이라고 하면 귀여운 모습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김 작가는 반대다. 지치고 병든,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은 순간까지 찍는다.

"길 위의 삶이란 처절하죠. 아등바등 애써도 3년을 못 살아요. 묻고 싶었어요. '고양이들이 이렇게 슬픈 눈을 하고 사는 나라, 저만 불편합니까?'라고요."

캣맘으로 사는 게 쉽지만은 않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쓰레기봉지를 뜯는 일이 없어진다" "고양이가 줄면 쥐가 들끓는다"고 설득해도 '그냥 싫다'는 사람이 대다수다. 몰래 사료에 쥐약을 탄 사람 때문에 죽은 고양이를 거둘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 지금까지 600마리가 넘는 길고양이의 마지막을 지켰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김 작가는 먼로를 잊지 못한다. 2008년 태어나 2015년 죽었다. 길고양이 치고는 오래 살았다. 할리우드 배우 메릴린 먼로처럼 코 밑에 점이 있어서 먼로라고 불렀다. 길고양이에게 이름을 준 건 먼로가 처음이었다. 형제들이 차에 치여 죽고서 먼로는 한 번도 도로에 나가지 않았다. 그런 먼로를 도로에서 거뒀다. 먼로의 27번째 새끼가 곁에 누워 있었다. '제 새끼 지키겠다고….' 김 작가는 눈물로 먼로를 묻었다. 봄이면 진달래가 예쁘게 피어나는 양지바른 곳에.

"길에서 태어났지만, 우리 이웃입니다. '지금도 고양이한테 따로 밥 주는 사람이 있다며? 요즘 배 곪는 고양이가 어딨다고' 소리를 듣는 게 소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