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비장애인 함께 가꾸는 일터 비누 만들며 '행복한 동행' 실천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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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03 09:58

[오늘은 '세계 장애인의 날'] 발달장애인 고용 '동구밭' 비누 공장

장애인에겐 일자리이자 마음 나누는 놀이터
야유회 즐기며 전 직원 모두 허물없이 지내
급여도 비장애인 직원들과 차별없이 지급

	자신들이 만든 비누를 들고 미소 짓는 동구밭 ‘가꿈지기’들. 박준협(왼쪽에서 두 번째)씨는 지난 2016년 9월 ‘1호 가꿈지기’로 동구밭에 들어왔다./김종연 기자
자신들이 만든 비누를 들고 미소 짓는 동구밭 ‘가꿈지기’들. 박준협(왼쪽에서 두 번째)씨는 지난 2016년 9월 ‘1호 가꿈지기’로 동구밭에 들어왔다./김종연 기자
매년 오늘(12월 3일)은 국제연합(UN)이 지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완전한 참여와 평등'이라는 구호 아래 장애인도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1992년 만들어졌다.

서울 성동구에는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회사가 있다. 동구밭이라는 정겨운 이름을 가진 이 회사는 비누를 만든다. 비누를 만드는 사람은 지적장애나 자폐증이 있는 발달장애인들이다. 동구밭의 목표는 '더 많은 장애인과 함께하는 것'이다. 월매출이 400만 원 늘면 발달장애인 1명을 추가로 고용한다. 2016년 9월 1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17명의 발달장애인이 동구밭에서 비누를 캔다.

	서울 성동구에 있는 동구밭 비누 공장의 작업 풍경.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도 각자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서울 성동구에 있는 동구밭 비누 공장의 작업 풍경.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도 각자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마음 나누는 '가꿈지기'들… "여기선 모두 친구예요"

지난달 29일 찾아간 동구밭 비누 공장에선 향긋한 풀내음이 났다. 10여 명의 '가꿈지기'들이 상추·바질·오이 등 자연에서 난 재료만 쓰는 천연비누를 만들고 있었다. 가꿈지기는 동구밭에서 발달장애인 사원을 부르는 말이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현우입니다. 김씨입니다. 당신은 박씨인가요?" 동구밭에서 한 달 남짓 일했다는 김현우(21)씨는 처음 본 기자를 살갑게 맞았다. "카키색은 상추! 모래색은 케일! 보라색은 오이랑 가지를 섞은 거예요"라며 동구밭 비누를 자랑스레 소개했다.

165㎡(50평) 남짓한 공장은 시끌벅적했다. 가꿈지기들은 '비누 자르기' '비누 모양 잡기' '비누 포장하기' 등 각자 맡은 임무에 따라 빠르게 손을 놀리면서도 "일요일에 뭐 할 거야?" "오늘 점심 맛있는 거야?" 등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동구밭에서는 모두 친구다. 10여 명의 비장애인 직원과 17명의 가꿈지기들이 허물없이 어울린다. 주기적으로 야유회를 떠나고, 마음 맞는 사람끼리 주말에 놀러 가기도 한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돌 가수나 영화를 주제로 수다를 떤다. 가꿈지기가 되기 전까지 선생님 아니면 부모님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발달장애인들에게 동구밭은 일터 이상이다. 사람과 만나 마음을 나누는 놀이터다.

2016년 9월부터 동구밭에서 일해온 '1호 가꿈지기' 박준협(21)씨는 "기계로 비누를 자르는 일이 재밌다. 친구들이랑 같이 일해서 더 재밌다. 일하러 올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동구밭 비누는 서울·수도권 각지에 있는 텃밭에서 직접 수확한 작물로 만든다. 발달장애인 1명과 대학생 봉사자 1~2명이 짝을 이뤄 밭을 일구고 우정을 쌓는 ‘동구밭지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동구밭 제공
동구밭 비누는 서울·수도권 각지에 있는 텃밭에서 직접 수확한 작물로 만든다. 발달장애인 1명과 대학생 봉사자 1~2명이 짝을 이뤄 밭을 일구고 우정을 쌓는 ‘동구밭지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동구밭 제공
"장애인도 정당한 대가 받는 사회가 '평범한 사회'"

우리나라 중증장애인 대다수는 열심히 일해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 최저임금법 제7조는 '정신·신체 장애로 일할 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는 허가를 받아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사업주가 '고용한 장애인을 최저임금 지급 대상에서 빼달라'고 낸 신청을 고용노동부가 받아들인 비율이 전체의 95.6%에 달한다.

동구밭은 다르다. 가꿈지기들에게 비장애인과 같은 급여를 준다. 이윤만 쫓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노순호(28) 동구밭 대표는 "당연한 일인데 이걸 지키지 못하는 곳이 많아서 특별해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발달장애인들이 땀 흘려 일한 대가를 받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느끼기를 바란다"며 "가꿈지기를 더 많이 맞을 수 있도록 동구밭을 키워가는 게 내 역할"이라고 했다.

가꿈지기들은 동구밭에서 일하는 비장애인 직원들에게는 일상의 피로를 잊게 하는 활력소 같은 존재다. 이선화(27) 동구밭 매니저는 가꿈지기들과 함께하면서 웃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며칠 전 한 분이 '시각 장애인 친구를 복지관에서 만났는데 악보도 보지 않고 악기 연주하는 모습이 멋져서 좋아하게 됐다'고 고백하더라고요. 얼마나 솔직한지 몰라요. 처음에는 '내가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어요. 제가 배우는 게 더 많은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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