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인은 모든 사람이 6개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어요. 살아있을 때 잠자고 있던 이 영혼들은 죽고서 깨어나 천국 혹은 신들의 세계로 갈 준비를 해요. 이집트인들은 영혼도 먹고 자고 마시는 등 살아있을 때와 똑같은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죠. 지난 시간에 카와 바를 알아본 것에 이어서 이번에는 슈트, 케트, 렌, 아크를 소개합니다.

카와 바가 만나면 아크가 돼요

아크<그림 ①>는 미라에 보존된 카와 바가 장례의식을 거쳐 성공적으로 결합했을 때 생겨나는 영혼을 말해요. 오직 아크만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죠. 그래서 6개 영혼 가운데 아크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겼어요. 아크는 상형문자에서 '볏 달린 따오기 새'로 그려졌답니다.

아크라는 말은 '밝은 빛' '자비로운' 등 뜻을 가졌어요. 바와 마찬가지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능력이 있어요. 심지어 신들의 세계도 마음대로 넘나드는 존재로 여겼죠. 아크의 빛은 인간세상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일을 가져다주기도, 나쁜 일을 가져다주기도 하죠. 그래서 불길한 아크를 막는 주문을 새긴 비석을 세웠어요. 또 파라오의 아크는 특별하다고 여겼어요. 태양신과 함께 천상의 배를 타고서 우주의 어둠을 밝히고, 태양신의 적인 아포피스 뱀을 물리칠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죠. 고왕국 제5왕조의 9번째 파라오였던 우나스의 피라미드에는 마법의 주문을 새겼어요. 우나스의 아크는 그 누구의 아크보다 더 환하게 빛난다고 적었답니다.

카트, 하늘과 영혼의 매개

카트<그림 ②>는 영혼이면서 동시에 다른 영혼을 지키는 '영혼의 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카트는 죽은 사람의 몸이에요. 하지만 썩어 없어지는 시신이 아닌 특별한 방부처리가 된 미라입니다. 영혼들은 영원히 보존되는 카트가 없다면 존재하지 못해요.

그런데 모든 미라가 카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답니다. 사제에게 특별한 의식을 받은 미라만 영혼을 담을 카트가 됐답니다. 표범 가죽옷을 입고 장례의식을 관장하는 '셈' 사제가 주문을 외우고 셈을 보조하는 주문 사제가 옆에서 도왔다고 해요.

이집트인들은 장례를 치르고 사람을 묻을 때 '우샤브티'라는 이름의 사람모양 인형을 함께 묻었어요. 이 인형들이 사후세계에서 농사를 짓고 주인을 도와 심부름도 한다고 여겼죠. 한 무덤에서 수백 개의 우샤브티가 발견된 적도 있어요. 아마도 이 무덤의 주인은 사후세계에서도 할 일이 많았던 모양이에요.

슈트,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요

슈트(혹은 섀도)는 '그림자'라는 뜻이에요. 이 부채 모양 상형문자<그림 ③>는 차양을 나타내요. 북아프리카의 뜨거운 햇볕을 이기기 위해 이집트인들은 예부터 많은 종류의 부채나 차양을 만들었어요. 부채나 차양은 그늘을 드리워서 시원한 바람을 만들었죠. 따라서 슈트는 태양신뿐 아니라 태초의 조상신 중 하나인 공기의 신 슈와도 관련이 있답니다. 피라미드 안에서 발견한 문서에도 등장하는 슈트는 바람처럼 영혼을 빠르게 움직이게 하는 능력과 태양빛과 같은 역동적인 힘을 전달하는 능력을 갖췄습니다. 카트가 없으면 영혼들이 한데 뭉칠 수 없는 것처럼 슈트가 없으면 영혼이 움직일 수 없죠.

렌… “네 이름을 함부로 알리지 말라”

렌은 사람이 태어나며 얻는 이름을 의미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어난 순간 붙은 이름이 사람의 성격을 결정하고, 이름 속의 능력을 고스란히 얻게 된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이름을 자신들이 좋아하고 숭배하는 신의 이름을 따서 지었답니다. 이름 자체가 영혼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셈이죠.

‘라호텝’은 태양신 라와 평화와 만족을 의미하는 ‘호테프’를 합친 이름이에요. ‘라가 흡족해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라호텝의 이름을 받은 사람은 평생 라의 수호를 받고 태양신의 능력을 나눠 갖고 살게 된다 생각했답니다.

이렇게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한 바탕에는 고대 이집트 창조신화가 있어요. 이집트 북부 도시 멤피스의 수호신인 프타는 말로 세상의 모든 만물을 탄생시킵니다. 그가 뱉은 모든 이름은 생명을 얻어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됐죠.

이집트인들은 이름을 안다는 것은 상대의 능력과 한계를 아는 것이라고 여겼어요. 그래서 적군의 이름을 석판에 새기고 전쟁터에서 이걸 깨트리기도 했죠.

또 미워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고 지우는 행동을 하기도 했고요. 이집트 신전과 유적들을 보면 선대의 이름을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왕의 이름을 새긴 흔적이 남아 있어요. 조상 파라오의 이름이 가진 힘을 차지하려는 의도가 담겼답니다.

75개의 이름을 가졌던 태양신

태양신 라와 여신 이시스의 이야기를 다룬 신화에는 태양신이 무려 75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내용이 담겼어요. 태양신은 자기 이름을 절대 밝히지 않았는데, 이시스는 이름을 알아내서 태양신의 힘을 뺏기 위해 안간힘을 썼어요.

이시스는 지혜를 동원해 태양신의 74가지 이름을 알아내는 것에 성공했어요. 하지만 마지막 이름을 알아낼 수가 없었어요. 남은 단 하나의 이름만 알면 이시스는 태양신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죠.

어느 날 이시스는 기가 막힌 술책을 생각해 냈어요. 태양신이 재채기할 때 얼른 그의 침을 훔쳐서 마법의 주문을 걸었어요. 그 침을 섞어 만든 흙으로 독사를 만들었죠. 아무것도 모르는 태양신은 산책을 나왔다가 이시스가 만든 독사에게 물리고 말아요. 독을 치료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썼지만, 아무도 치료할 수가 없었어요.

이때 이시스 여신이 나타나 마지막 이름을 말해주면 고통을 없애주겠노라 말했어요. 태양신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며칠을 고생하다 결국 이시스 여신에게 자신의 마지막 이름을 알려줘요. 태양신의 이름을 모두 알게 된 이시스는 엄청난 힘을 얻게 돼요. 태양신은 결국 인간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게 되고요.

이후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선 자기 이름을 낯선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풍습이 생겼답니다. 또 이름을 알려주는 일은 ‘신뢰한다’는 뜻이랍니다.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상형문자를 전공한 이집트학자 강주현 선생님은 2012년부터 올초까지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이집트 문명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3000년 전 고대 이집트 동화를 번역한 ‘파피루스 속의 이야기 보따리’ 시리즈를 펴내고 있습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강주현 선생님께 이메일(sheshat77@naver.com)로 직접 물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