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산 소녀. 아빠가 퇴근길에 사다준 초콜릿을 잔뜩 먹다 이가 썩어도 마냥 행복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초콜릿을 더 배우고 싶어 낯선 호주 땅으로 유학도 떠났다. 그로부터 8년 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월드 초콜릿 마스터스 파이널 2018(이하 월드 초콜릿 마스터스)'. 훌쩍 자란 소녀는 세계 최고의 초콜릿 명장을 뽑는 이 대회에서 역대 한국인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인 5위에 올랐다. 롯데제과의 초콜릿 전문 매장인 길리안 카페에서 근무하는 김은혜(32) 초콜릿 셰프 이야기다.

2박 3일간 전 세계 셰프와 펼친 초콜릿 대전(大戰)

"월드 초콜릿 마스터스는 호주에서 초콜릿을 공부할 때부터 '꿈의 대회'였어요. 세계 최고의 초콜릿 셰프를 뽑는 자리니까요. 언젠가 대회에 나가 제가 만든 초콜릿으로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어요. 대회 최종 순위가 발표됐을 때 그때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터져 나오더라고요." 지난 20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서 만난 김 셰프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초콜릿 월드컵'으로 불리는 월드 초콜릿 마스터스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초콜릿 공예 대회 중 하나다. 2005년부터 3년마다 파리에서 열린다. 프랑스·스위스·벨기에 등 초콜릿으로 이름깨나 날리는 나라의 스타 셰프들이 참여해 초콜릿 공예 실력을 겨룬다. 올해는 각 나라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한 22명의 셰프가 국가대표 자격으로 참여해 승부를 펼쳤다.

"까다롭고 어려운 대회예요. 2박 3일간 총 7개 분야를 완벽히 소화해내야 하거든요. 초콜릿을 조각해 대형 예술 작품을 만들거나, 원산지가 다른 카카오빈을 섞어 최상의 맛을 내는 초콜릿 바를 만드는 식이죠. 분야별로 지켜야 할 규칙도 수십 가지가 넘어요. 초콜릿 바의 경우 무게는 500g을 넘지 않아야 하고 서로 다른 세 가지 맛이 한 번에 느껴지도록 제조해야 해요. 3년 내내 이 대회만 준비하는 셰프들도 많죠."

김 셰프는 지난 7월 본격적인 대회 준비에 나섰다. 그는 "업무하랴 대회 준비하랴 지난 몇 달간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며 "대회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100페이지가 넘는 규정집을 외우고 또 외웠다"고 말했다. "연습하면서 완벽한 초콜릿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먹어보면 그렇지 않았어요. 속 재료 비율을 수십, 수백 번씩 바꿔 가면서 맛 테스트를 했습니다. 밤낮없이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와 보상받는 기분이에요."

다루기 까다롭지만 매력적인 초콜릿… 평생 함께하고 싶어

김 셰프는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졸업 후 진로를 찾다 '초콜릿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초콜릿 셰프의 길을 택했다. 그는 "초콜릿 공예는 미적 감각이 있어야 잘할 수 있다"며 "미대 다니면서 배운 기술을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에 활용할 수 있어 딱 맞는 직업"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제 막 큰 대회를 마친 김 셰프는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또다시 초콜릿 연구에 돌입했다. 크리스마스·밸런타인데이·화이트데이 등이 이어지는 '초콜릿 성수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김 셰프는 "초콜릿에 어떤 재료를 어떤 비율로 섞어야 맛있을지 연구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며 "한번 맛보면 잊히지 않을 정도로 독특하고 맛있는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매일 다양한 식재료를 섞어 가며 공부한다"고 말했다.

초콜릿 셰프가 생각하는 초콜릿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주저 없이 '까다로움'을 꼽았다.

"초콜릿은 다루기 어려워요. 온도 차이에 따라 모양이 변할 뿐만 아니라 맛도 미묘하게 달라지거든요. 이런 초콜릿을 가지고 최상의 맛을 내는 하나의 '요리'를 만들어 냈을 때 가장 뿌듯하죠. 앞으로도 사람들 눈길을 끌면서 입맛을 사로잡을 만한 초콜릿을 만들고 싶어요. 하도 많이 먹어서 초콜릿 먹는 건 질려버렸지만, 만드는 건 평생 질리지 않을 것 같네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