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먼저 우주로 간 개가 있었다. 우주 개발 초기인 1950년대, 미국과 경쟁을 벌이던 소련(지금의 러시아)은 우주에서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느냐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용 로켓에 동물을 태워 보냈다. 잡종견 '라이카'는 눈에 띄게 예쁘거나 혈통이 좋지는 않았지만, 참을성 강하다는 이유로 실험견으로 발탁됐다. 그리고 1957년 11월 3일 스푸트니크 2호 로켓에 탑승해 상공 1660㎞까지 올라갔다. 라이카는 40도 넘는 열기 속에서 사투를 벌이다 끝내 하늘의 별이 됐다.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에 가기 4년 전의 일이었다.

최근 이를 소재로 동화책 '별이 된 라이카'를 낸 박병철(59) 작가는 "과학 실험에 희생되는 동물을 생각하며 책을 썼다"고 했다. 박 작가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우주의 구조' 등 70여 권 과학책을 우리말로 옮긴 '특급 번역가'다. 지난달 31일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사에서 그를 만났다.

라이카를 기억하고 삼순이를 생각하며

'별이 된 라이카'는 지난 2010년 박 작가가 쓴 첫 동화 '라이카의 별'에서 삽화를 바꾸고 편집에 변화를 준 새 버전이다.

―책을 쓰신 계기가 있나요.

"1995년 책을 읽다가 라이카라는 우주개를 알게 됐어요. 라이카를 소재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이야기를 생생하게 쓰려면 개를 자세히 관찰해봐야 할 것 같았어요. 당시 집 근처 모란시장(경기 성남)에서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다 키웠어요. 그게 '삼순이'예요. 라이카 같은 잡종인 데다 체중도 6.5㎏으로 비슷했죠. 함께 살다 보니 삼순이는 제게 자식 같은 존재가 됐어요. 다만 책 쓰기는 자꾸 미뤄졌죠. 시간이 흐르면서 2010년 삼순이에게 치매 증상이 생기더군요. 그 똑똑하던 녀석이 대소변도 못 가렸죠. 삼순이가 떠나기 전에 뭔가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해 열심히 글을 써 '라이카의 별'을 출간했어요. 책이 나온 뒤 삼순이를 품에 안고 한 장 한 장 읽어줬죠. 삼순이는 17살이 되던 2012년에 라이카가 사는 별나라로 떠났습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상상인지 궁금해요.

"굵직한 줄기는 사실이고, 라이카와 조련사 야코프의 대화 같은 잔가지는 상상이랍니다. 소련 항공의학연구소에는 수의사와 조련사가 많았어요. 가능한 한 기록에 남은 실제 근무자 이름을 책에 썼어요. 다만 라이카를 돌본 조련사 정보는 남아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야코프라는 이름은 제가 지었답니다."

―야코프가 라이카를 풀어줬지만, 라이카는 도망가지 않고 야코프 품으로 뛰어들었죠. 둘의 깊은 교감이 느껴져서 읽다가 눈물을 흘렸어요.

"삼순이가 라이카, 제가 야코프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며 썼어요. 저는 삼순이에게 최선을 다했고, 삼순이도 제게 그랬죠. 언젠가 저세상에서 삼순이를 만날 날을 기다려요."

인간 생명 위한 실험은 어쩔 수 없지만

카이스트 물리학 박사인 박 작가는 책을 쓸 때 무엇보다 사실 확인에 공을 들였다.

―사실 확인이 쉽지 않았다고요.

"우주 개발 정보는 국가 기밀이라 공개 자료가 많지 않았거든요. 세계 곳곳에 흩어진 자료를 모았어요. 틀린 게 없는지 확인했죠. 예컨대 이런 겁니다. 사람들이 흔히 라이카를 '첫 우주개'로 기억하는데, 실은 라이카 이전에 약 30마리 개가 로켓을 탔습니다. 이런 정보를 꼼꼼하게 봤죠."

―어린이조선일보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예전엔 과학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동물을 실험에 이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봤어요. 하지만 삼순이와 지내며 생각이 달라졌어요. 사람 생명을 위한 실험을 하려고 쥐에게 암세포를 주입하는 건 허용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라이카는 국가 간 우주 개발 경쟁에 희생된 거예요. 어린이들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 보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희미한 별이 떠 있었다. '라이카별'인지 '삼순이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니 어쩐지 코끝이 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