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보통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 몸과 마음이 다친 사람을 치료해 일상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의사의 일이다. 내과·외과·정신과 등 분야는 달라도 '생명을 지킨다'는 목표는 같다. 법의학자는 그래서 특별하다.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에게 의술을 편다. 시체를 부검해 사망 이유를 밝히고, 시체 연구로 인류가 더 건강하게 살 방법을 찾는다.

베테랑 법의학자 유성호(47)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최근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책을 냈다. 지난 20여 년간 1500구 가까이 부검한 그는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면서 삶을 더 사랑하게 됐다"고 말한다.

워너원이 멋진 이유

"워너원의 마지막 모습에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다 담겨 있습니다."

지난 14일 서울대학교 의대 연구실에서 만난 유 교수는 대뜸 지난달 해체한 프로젝트 그룹 워너원 얘기부터 꺼냈다. "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후회 없이 춤추고 노래했을 거예요.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의학자로서 죽음을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만나면 안타까워요. 생명은 언젠가 소멸하기 마련입니다. 죽음에 대한 성찰은 역설적으로 매 순간 열심히 사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유 교수는 월요일마다 시체 3~4구를 부검한다. 사망 시각과 이유가 불분명한 시체 앞에 설 때마다 '반드시 밝혀 드리겠다'고 속으로 기도한다. 부검은 환자를 치료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억울한 죽음을 맞지 않았는지 확인해 수사에 도움을 주고, 유족에게는 가족의 죽음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가려져 있던 진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음식을 먹다 질식사한 것으로 알려졌던 군인이 부대원의 집단 폭행으로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윤 일병 사건'(2014년)이 대표적이다.

유 교수는 부검하다 눈물 쏟은 적도 많다. 2015년 1월 발생한 경기 의정부 아파트 화재로 숨진 여성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불길 속에서도 다섯 살 아들을 꼭 끌어안고 지킨 여성은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환자는 온몸에 화상을 입었는데, 아이는 거의 다치지 않았어요. 마지막까지 홀로 남을 아이를 걱정했을 고인을 부검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법의학자 전국에 40명뿐… "힘들어도 의미 있는 길"

스스로 "활자 중독이었다"고 고백할 만큼 독서를 좋아하는 유 교수는 초등학생 때 루이 파스퇴르(1822~1895)의 전기를 읽고 의사의 꿈을 품었다. 광견병에 걸린 소년을 치료한 파스퇴르처럼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의대에서도 임상의(직접 환자를 대하는 의사)를 목표로 했지만, 졸업을 앞두고 우연히 들은 강의가 진로를 바꿔 놓았다.

"이윤성 교수님의 법의학 강의를 듣고 가슴을 쳤어요. 법의학자는 생의 마지막 순간의 진실을 파헤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죠. 그 길로 교수님을 찾아가 법의학자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제가 10년 만에 들어온 제자였다는 걸요."

유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법의학자는 40여 명뿐이다. 다른 의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봉급이 적은 데다 매주 시체를 봐야 하는 부담도 크다. 일본의 경우 70여 개 의대에 모두 법의학자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전국 40개 의대 가운데 11곳에만 법의학자가 있다. 서울대에서도 유 교수 이후 법의학자가 나오지 않았다.

"법의학자는 가려진 진실을 밝혀내는 사람입니다. 사명감이 있어야 하고, 시체를 보고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담대함도 필요하죠.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의미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법의학자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갈 후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