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루 남았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내일(23일)이 특별한 날이냐고? 2019 한국프로야구 KBO 리그 개막일이잖아! 내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거야.

아차, 내 소개가 늦었군. 나는 야구공이야. 일반 공과는 조금 달라. 난 '공인구'거든. 한국야구위원회(KBO)가 프로야구 경기에 쓸 수 있다고 공식 인정한 공이지. 프로야구 경기에는 공인구만 나갈 수 있어. 경기 시작 전까지 컴컴한 상자에 갇혀 있으려니 좀이 쑤시는데, 내 인생 이야기를 들어볼래?

스리랑카 숙련공이 한 땀 한 땀 꿰매 완성

한국 야구 공인구의 역사는 2016년 시작됐어. 그전에는 구단마다 다른 공으로 경기를 했대. 홈팀이 공을 준비하고 원정팀을 맞이했지. 그런데 경기마다 사용되는 공이 다르니 문제가 생겼어. 같은 세기로 쳐도 어떤 공은 멀리 튕겨 나가 홈런을 기록하는데 어떤 공은 덜 튕겨 나가는 거야. 선수들의 실력이 아닌 공 만드는 기술에 따라 성적이 달라지면 불공평하잖아. 그래서 특정한 기준에 따라 만든 공만 쓰기로 했어. 모두 똑같은 공을 가지고 같은 조건에서 겨루기로 한 거야.

내 고향은 인도양의 섬나라 스리랑카야. 내가 지금의 모양을 갖추게 된 날이 어렴풋이 기억나. 동그란 고무에 싸인 코르크 심을 기계가 양털실과 면사로 빠르게 감았어. 그 위에 재단해 놓은 소가죽을 덮었지. 자랑을 하자면, 소가죽도 양털실도 모두 최고급 소재를 썼단다. 내가 이 과정을 거쳐 기계에서 나오니, 손에 굳은살이 잔뜩 박인 숙련공이 기다리고 있었어. 가죽을 빨간 실로 한 땀 한 땀 꼼꼼히 꿰매서 이어붙였지. 어찌나 빠르던지, 108땀을 뜨는 데 15분밖에 걸리지 않았어.

이 과정에서 헤어진 친구도 있어. 타원형인 친구, 가죽에 흠이 난 친구, 땀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 친구는 따로 분류됐어. 프로 경기에는 쓰일 수 없으니, 사회인 야구 리그로 가게 된다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공인구의 생명은 완성도와 규격이거든.

온도·습도까지 맞춤 보관하는 '특급 대우'

올해 내 권장 둘레는 234㎜, 무게는 147g이야. 지난해보다 둘레는 1㎜, 무게는 1g 늘었어. 크고 무거워지니 반발계수(공이 튕기는 정도)는 낮아졌지. 작년보다 덜 튕기도록 설계된 거야. 내가 너무 잘 날아가면 타자가 실력 발휘를 하기에 유리하거든. 실제로 작년에는 한국 프로야구 정규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홈런(1756개·720경기)이 터졌어. 공 때문에 타자의 타율은 높아지고, 투수의 방어율 등은 낮아진다는 '타고투저' 현상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지. 이번 시즌에 이 문제가 해결될지는 두고 봐야 할 거야.

어쨌든 나는 공장에서 '합격' 판정을 받아 상자에 담겼어. 3주 동안 배를 타고 한국으로 오느라 멀미가 나 죽을 뻔했다니까. 경기 여주의 물류 창고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나를 극진히 모시더군. 창고 온도는 23도, 습도 50％로 맞춰졌어. 내가 원래 모습대로 유지되기에 가작 적합한 환경이거든.

며칠 후 KBO 관계자들이 와서 우리를 찬찬히 둘러보고는 나와 내 친구들이 어느 구단으로 갈지 정해줬어. 특정 구단에 더 좋은 공이 가지 못하도록 행선지를 무작위로 지정했지. 구단마다 2주에 약 10박스의 공을 받게 돼. 한 박스에는 120개의 공이 들어 있단다.

나는 결국 SK 와이번스의 홈구장인 문학경기장으로 왔어. 구단에서도 내 모양이 변형되지 않도록 온도, 습도를 최대한 맞춰주고 있어. 내가 눌릴까 봐 박스들을 겹쳐 쌓지도 않지. 나를 홀대한다면 KBO에서 찾아와서 관리에 더 신경 쓰라고 주의를 줄 거야.

홈런볼이 될까, 연습볼이 될까

그래도 박스 안에만 있으려니 너무 답답해. 경기가 시작되기 1시간 30분 전에야 비로소 빛을 볼 수 있거든. 경기의 심판이 와서 박스가 잘 봉인됐는지 확인하고 나를 꺼내줄 거야. 내 상태가 시합에 쓰기에 적합한지도 눈으로 다시 확인하겠지.

경기가 시작되면 배트보이나 배트걸이 경기장에 나가 있는 심판에게 우리 공인구들을 한 타(12개)씩 전달해 준대. 심판에게서 공을 받아 든 투수는 포수를 향해 나를 훅! 던지겠지? 허공을 시원하게 가르며 날아갈 생각을 하니 벌써 기분이 좋아지는군! 이왕이면 외야 펜스를 훌쩍 넘는 홈런볼이 되고 싶어.

그게 아니라면 난 경기장 바닥에 떨어지겠지. 경기가 끝나면 볼보이들이 이리저리 흩어진 공을 한데 모을 거야. 공인구 담당 직원이 ‘공인구 입출 장부’에 오늘 경기에서는 공을 몇 개 썼고, 몇 개가 남았는지 꼼꼼하게 기록해. 보통 경기당 120개 정도의 공을 쓴다고 해. 이 중 홈런볼이나 파울볼은 공을 잡은 관중이 가져가지.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공은 다시 공식 경기에서 쓰지 못하고 각 팀 훈련용으로 활용돼. 주로 타격 연습용으로 선수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봉사하지. 언젠가는 초·중·고등학교 야구팀이나 아마추어팀에 기부돼서 더 일하게 될 수도 있대.

나는 결국 어디로 가게 될까? 내일이면 운명이 결정될 거야. 부디 내가 홈런볼이 돼서 야구 팬 곁에 소중하게 보관되길 기도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