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이 갑자기 캄캄해지더니 누런빛을 띤 붉은 불꽃과 연기가 일어났다. 비릿한 냄새가 방에 가득하고 화로 한가운데 앉은 듯 뜨거운 열기를 견딜 수 없었다. 아침에 보니 들판에 조개껍데기를 태운 듯한 재가 가득했다. 사방에 눈처럼 흩어져 내린 높이가 한 치(약 3㎝)나 됐는데, 모두 나무껍질이 타고 남은 것이었다."

1702년(숙종 28년) 5월 14일 백두산이 폭발한 상황을 묘사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이날 백두산의 분화 규모는 엄청난 화산재를 일으켜 전 세계 항공편 29％를 결항시킨 2010년 아이슬란드 화산 활동보다 10배가량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300여 년이 흐른 오늘날, 백두산이 또다시 심상치 않다. 최근 백두산 천지를 중심으로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화산 가스가 분출하는 등 폭발의 전조 현상이 포착됐다. 이번 폭발은 아이슬란드 화산 분화의 1000배 수준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15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깨어나는 백두산 화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방안을 논의했다. 전문가들은 "백두산은 당장 터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라며 "남북한이 적극적으로 협력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백두산 폭발 주기는 100년

백두산은 애국가 1절 첫 소절에 등장할 정도로 한국인에게 큰 의미가 있는 산이다. 그러나 지질학(지구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적으로 보면 역대 최악의 화산 폭발을 일으킨 위험한 활화산이다. 백두산은 지난 1만여 년 동안 세계 최대 규모로 분화한 화산 6개 가운데 하나다.

946년에 있었던 백두산 폭발은 이른바 밀레니엄 대분화라고 불린다. 이윤수 포항공대 환경공학부 교수에 따르면 당시 폭발에 방출된 화산 에너지는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6만 배, 2011년 1만8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동일본대지진의 4배가 넘는다. 이때 백두산에서는 남한 전체를 1m 두께로 덮을 수 있는 양의 화산재가 분출됐다. 일본 홋카이도와 쿠릴 열도 바닷속, 그린란드 빙하에서도 백두산의 분출물이 발견됐다. 백두산은 화산재로 뒤덮여 '백두(白頭·하얀 머리)'라는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해동성국(海東盛國·바다 동쪽에서 번성한 나라)'이라 불렸던 발해가 갑자기 멸망한 것이 백두산 폭발 때문이라는 학설도 있다.

공식적으로 백두산이 활동한 것은 1903년이 마지막이다. 고려 실록 등 옛 기록을 살펴보면 백두산 폭발은 100년을 주기로 일어난다. 정현기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학계에서는 백두산이 다음 달에 폭발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정 연구원에 의하면 2002~2005년 백두산에서 발생한 화산 지진 활동이 3000회에 이르고, 60도 내외이던 천지 주변 온천수 수온이 83도까지 올라가면서 백두산 분화의 가능성이 더 커졌다.



대홍수·화산 가스·화산재… 동북아까지 피해 클 듯

오창환 전북대학교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15일 토론회에서 "백두산이 분화하면 북한뿐 아니라 남한도 적지 않은 피해를 본다. 동북아시아 전체가 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고 했다. 백두산이 폭발하면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백두산 폭발이 더 위험한 것은 산꼭대기 칼데라호수에 20억t(톤) 넘는 물이 있어서다. 칼데라는 과거에 화산이 폭발하면서 분화구가 무너져 움푹 팬 지형으로, 천지는 칼데라에 물이 고여 이루어진 호수다. 뜨거운 냄비에 갑자기 물을 부으면 물방울이 튀어 오르는 것처럼 1000도 넘는 마그마가 천지 물과 닿으면 강력한 분화가 일어난다.

물은 즉시 수증기가 되고, 차가워진 마그마는 산산이 조각나 화산재로 변해서 대기 중으로 흩어진다. 수증기와 화산재가 뒤섞인 화산구름 기둥은 5㎞까지 치솟았다가 떨어져 내리면서 최대 시속 150㎞로 주변 지역에 비처럼 쏟아진다. 분화구에서 흘러나오는 700도의 마그마는 닿는 곳마다 불태우며 생명체를 위협한다.
천지 물이 흘러넘쳐 대홍수를 일으킬 수도 있다. 홍수가 부서진 암석과 화산재를 만나 시멘트처럼 뒤섞여 흐르는 라하르(lahar)는 지나간 지역을 매몰시키고 황폐하게 한다. 도로와 댐, 전기 시설 등 인공시설물은 마비되고, 토양을 깎아내 생태계도 파괴된다. 뜨거운 화산 가스와 화산재가 섞인 화쇄류(火碎流)도 위험천만하다. 고온의 화쇄류가 산을 타고 내려오면서 주변 산지에는 산불이 발생한다. 화쇄류를 마주친 사람은 400도 넘는 열기에 화상을 입고 질식사하게 된다.
화산 활동이 시작되면 백두산 주위 반경 60㎞ 지역이 용암으로 뒤덮인다. 반경 50㎞ 안쪽에 사는 사람들은 화산 가스로 질식사한다.
막대한 양의 화산재는 한반도를 넘어 일본·중국·러시아까지 영향을 미친다. 화산재는 항공기 운항을 방해해 교통·물류 대란을 일으킨다. 또, 호흡기 질환을 퍼뜨리고 토양을 산성으로 바꿔 농작물이 자랄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등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킨다. 윤성효 부산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한국이 입을 피해 규모는 11조 원이 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백두산이 폭발하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화산재가 떨어지기 전에는 문과 창문 등 외부 공기가 들어오는 틈새를 젖은 수건과 테이프로 막아야 한다. 심각한 경우 며칠간 외출을 못할 수도 있으니 물과 음식물, 방진 마스크와 의약품 등을 미리 준비한다. 실외에 있을 때 화산재가 떨어지면 마스크나 손수건, 옷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건물 안으로 신속하게 대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