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전 세계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미국·영국·캐나다 등 16개 국가의 유엔군은 머나먼 이국 한반도까지 건너와 자유를 위해 싸웠다. 미국은 약 180만 명을 파견했다. 참전국 중 가장 많은 수다. 이 중 3만4000여 명이 전사했고 3700여 명은 실종됐다. 태평양 너머 가족들은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영원한 이별을 했다.

국가보훈처는 생존한 참전 용사와 유가족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사업을 매년 진행한다. 지난 26일 미국 참전 용사 유가족 50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5박 6일 동안 안보 현장과 발전한 한국의 모습을 둘러봤다. 29일에는 강원 철원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화살머리고지 일대를 찾았다.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이 진행 중인 지역이다. 이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19살에 한반도 바다에서 싸운 삼촌

"이곳 지형이 마치 화살처럼 생겨서 '화살머리고지'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여기 국군과 유엔군의 유해 약 300구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미군 유해가 19구, 프랑스군 3구, 나머지는 한국 병사입니다. 유해가 소중한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장병들이 노력하겠습니다." 남북공동유해발굴 TF의 문병욱 대령이 초소(GP)에서 화살머리고지를 내려다보며 설명했다.

화살머리고지는 백마고지와 더불어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1953년 네 차례에 걸쳐 남북은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결국 국군과 유엔군이 승리했지만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난달 1일부터 이곳에서 유해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지난해 남북 9·19 군사 합의에서 남북이 함께하기로 했지만, 공동 작업은 무산되고 우리 측만 단독으로 작업 중이다. 현재까지 57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국적을 확인하기까지는 최대 1년이 걸린다. 유해 외에도 철모와 방독면, 수통(물통), 판초 우의(우비) 등 군인들이 지녔던 유품도 2만3000여 점 나왔다.

화살머리고지 GP에 오른 유가족들은 치열했던 전투 현장을 향해 헌화하고 1분 동안 묵념했다. 결혼 후 2년 만에 남편을 잃은 조 레이너트(85)씨는 "그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장소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기쁘다"며 "6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유해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에이미 투즐리(58)씨도 철망 사이로 보이는 북쪽을 한동안 응시했다. "삼촌이 해군에 자원 입대했다가 6개월 만에 실종됐어요. 그때 삼촌은 불과 19살이었죠. 삼촌 유해는 북쪽에 있어서 지금은 찾을 수 없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언젠가 내 손자라도 삼촌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손자가 지금은 18개월인데 더 크면 삼촌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해줄 겁니다."

발전한 한국 소개하고 숭고한 희생에 감사해

'유엔 참전 용사와 유가족 재방한 사업'은 1975년 민간 단체의 주도로 시작했다. 2010년부터는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한다. 지난해까지 3만3000여 명이 한국을 다녀갔다.

이들을 초청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또 유가족이 간직해온 슬픔과 한을 위로한다. 발전한 대한민국 모습을 보여주며 참전 용사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뜻도 전한다. 데이비드 필킨스(57)씨는 “‘대한민국’ 하면 한국전쟁이 배경인 미국 드라마 ‘매시(MASH)’에서 본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너무나 발전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또 “이번 행사로 한국전쟁과 경제개발에 대한 이야기까지 자세히 듣게 돼 의미가 깊었다”고 했다.

전날 유가족들은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했다. 30일에는 창덕궁 등 고궁을 둘러보고 한식·한복 같은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하기도 했다. 5살 무렵 한국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셜리 앤 마이너(72)씨는 “이번 방문 내내 왠지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서 계속 휴지를 넣어 다녔다”며 “한국 사람들이 참전 용사의 희생에 진심으로 고마워해서 감동받았다”고 했다.

김주용 국가보훈처 국제협력관은 “위기에 처한 한국을 목숨 바쳐 도와준 분들에게 보답하면서 우리나라와 참전국의 유대도 더욱 돈독해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내년에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더 많은 분이 한국을 찾아 위로받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