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스마트폰·TV가 사라진 현대인 일상을 상상하기란 어렵습니다. 이 기기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부품이 있는데요. 바로 '반도체'입니다. 자랑스럽게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기업의 반도체 기술력은 전 세계 1위입니다. 애플·퀄컴·인텔 등 세계적인 전자제품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만든 반도체를 사용하죠. 그런데 최근 반도체 생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주요 재료 일부를 일본 기업으로부터 사왔는데, 일본 정부가 수출 절차를 까다롭게 바꿔버렸거든요. 우리나라 기업은 곤경에 처했고 정부는 당황했습니다. 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걸까요? 우리나라 정부와 국민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요?

강제노역 배상 판결 불만, 경제 보복으로

사건은 지난 4일 시작됐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날부터 반도체 제조의 핵심 물자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에칭가스의 한국 수출을 규제했어요. '일본 기업이 이 재료를 한국에 팔 때는 사용 목적과 방법을 적은 서류, 무기용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일본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고 정한 거예요. 문제는 허가를 받기까지 무려 90일이나 걸린다는 겁니다.

재료를 제때 구하지 못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반도체를 만들 수 없게 돼요. 한국의 전체 수출액 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나 됩니다. 반도체를 수출하지 못하면 우리나라 경제성장도 큰 타격을 받을 거예요.

일본 정부는 왜 우리나라를 곤란하게 만든 걸까요? 지난해 11월 우리나라 대법원은 '일본 전범 기업은 한인 강제노역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어요〈본지 2018년 12월 11일자 1면〉. 당시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협정을 통해 이미 두 나라 간 합의가 끝난 부분에 다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우리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했죠. 이번 조치는 당시 판결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일본 정치인들은 "이 재료들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가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됐을 수 있다"며 안보 문제도 제기합니다.

고조되는 반일 감정… 강경한 일본

우리나라 정부는 일본이 경제 보복을 철회하도록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에요. 국가 간 자유무역을 보장하는 국제기구인 WTO는 정부가 직접 수출을 통제하는 것을 금지하는데요. 일본 정부가 이 규칙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국제 사회에 알리겠다는 거죠. 앞으로 일본에서 핵심 부품을 수입하지 않고, 국내에서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도 했어요.

국민의 반일 감정도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 제품을 사지 말자며 '일본 기업 명단'을 인터넷에서 공유하는가 하면,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6일 "동네 수퍼마켓에서 일본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소셜미디어에는 일본 여행을 취소했다는 인증도 줄지어 올라왔죠. 일본 정부도 주장을 굽히지는 않을 태세입니다. 일본 방송 NHK는 8일 "한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일본 정부가 규제 품목을 확대할 것"이라고 보도했어요.

전문가들은 감정적 대응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홍식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WTO에 제소하고 불매운동을 하면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갈 수 있다"며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일본과 협상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