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만만세~♬"

'추석' 하면 전통 민속 경기 '씨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씨름의 역사는 고대부터 시작됐습니다. 선조들은 명절·장날·잔칫날 등 흥겨운 분위기가 무르익은 날에는 어김없이 모래판에 모여 열띤 응원을 펼쳤죠.

프로씨름이 전성기를 누린 1980년대에는 명절이면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천하장사의 탄생을 지켜봤습니다. 강호동과 이만기 등 천하장사가 꽃가마를 타고 의기양양하게 모래판을 도는 모습은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퍼졌어요. 우리 민족의 얼이 배어 있는 씨름은 지난해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어요. 남북 공동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았죠.

이 같이 자랑스러운 '국민 스포츠' 씨름의 명맥을 잇는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지난 1일 씨름 꿈나무 이우주(충북 음성 용천초 6) 군과 정상원(부산 안락초 6) 군을 강원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만났습니다.

▲ 40㎏ 이하 '경장급' 정상원 군 두 살 터울 친형 따라 씨름 시작 경기 함께 보고 기술 배우기도 꾸준히 열심히 하는 선수 되고파

이우주 군은 170㎝에 97㎏. 정상원 군은 146㎝에 40㎏이다. 우주 군은 소고기를 좋아하지만, 상원 군은 굳이 꼽자면 돼지고기가 더 좋단다. 우주 군은 처음 본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다. 상원 군은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는 수줍어 입을 떼기가 어렵다.

이렇게 다른 둘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씨름 선수’라는 것. 초등부 씨름 7개 체급 중 우주 군은 가장 무거운 ‘장사급(70㎏ 초과 120㎏ 이하)’, 상원 군은 가장 가벼운 ‘경장급(40㎏ 이하)’ 선수다. 동갑내기 두 어린이는 올해 열린 굵직한 전국 씨름대회에서 각각 5관왕을 차지했다. 외모와 성격, 식성까지 영 다른 둘이지만 씨름 이야기를 할 때면 초롱초롱해지는 눈빛만은 같았다.

힘 좋은 장사급, 민첩한 경장급

같은 스포츠지만 두 선수가 사용하는 기술은 완전히 다르다. 우주 군의 주특기는 ‘들배지기’와 ‘뿌려치기’. 그중 들배지기는 상대방을 번쩍 들어 넘어뜨리는 기술로 힘이 필요하다. “힘을 내려면 덩치도 커야 해요. 저는 엄마를 닮아서 또래보다 체격이 좋아요. 장사급에서는 보통이지만요. 무조건 덩치가 크다고 씨름을 잘하는 건 아니에요. 기술력도 있어야죠. 힘을 제대로 쓰는 법을 알아야 하니까요.”(우주)

상원 군은 민첩성이 필요한 기술을 주로 사용한다. ‘앞무릎치기’ ‘오금채기’ 등 상대방 몸 아래로 순식간에 파고들어가 다리를 공격하는 방법들이다. 키가 작으면 유리하다. 무게중심이 낮아 빠르게 아래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덩치가 큰 애들은 앞무릎치기 같은 건 거의 안 해요. 저한테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아요. 장사급은 키가 커서 무게중심이 위에 있으니까 아래로 공격하기 어렵거든요. 게다가 장사급은 한 번 밑으로 빠지면 살아남기 어려워요. 상대방이 몸무게로 그냥 눌러버릴걸요?”(우주)

체급과 관계없이 초등부 모든 경기는 1분이면 끝난다. 승부가 나지 않으면 30초 연장한다. 움직임이 재빠른 경장급 경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경기가 끝나버린다. 장사급 경기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진행된다.

사용하는 기술은 다르지만 두 선수 모두 “상대를 넘어뜨릴 때 가장 희열을 느낀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씨름을 배우기 전부터 기술로 다른 선수를 넘어뜨리는 게 재밌어 보였어요. 특히 기술만 뛰어나면 작은 사람이 자기보다 훨씬 커다란 사람을 넘길 수 있다는 점이요. 내가 직접 넘기면 짜릿할 것 같았죠.”(상원) “올해 3월 회장기 대회 결승전 마지막 판에서 상대를 넘기던 순간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1대0으로 지고 있다가 내리 두 판을 이겨서 역전승했거든요. 극적으로 이기니까 더 기분이 좋았어요.”(우주)

“예능인 강호동은 몰라도, 씨름 선수 강호동은 알죠!”

▲ 70㎏ 초과 '장사급' 이우주 군 또래보다 체격 좋아 씨름부 권유 훈련 시작하니 공부보다 재밌어 '씨름인' 강호동을 가장 좋아해요

상원 군은 두 살 차이 나는 친형을 따라 3학년 때 씨름을 시작했다. 형도 경장급 선수여서 둘은 통하는 게 많다. “추석 때 TV에서 보여주는 씨름 경기도 형이랑 같이 봐요. 기술 얘기하면서요. 형이 가끔 기술을 가르쳐주기도 해요. 놀 때도 가끔 장난삼아 씨름을 하는데 형을 이기지는 못해요(웃음).” 상원 군은 평소에도 혼자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보며 기술을 익힌다고 한다.

우주 군은 4학년 때 씨름부 형의 권유로 처음 샅바를 잡았다. 시간 날 때마다 유튜브에서 씨름 영상을 보며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막상 해보니 공부보다 훨씬 재밌었다. 방과 후 매일 3시간씩 성실하게 훈련을 하다 보니 실력이 쑥쑥 늘었다.

내년에 중학교 진학을 앞둔 두 선수는 고민이 많다. 중학생 선수 기준에 맞게 체중 조절을 해야 하기 때문. 우주 군은 빼야 하고, 상원 군은 찌워야 한다.

“같은 경장급이라도 중학생 기준에 맞추려면 20㎏은 찌워야 해요. 근데 원래 먹는 걸 즐기진 않아요. 최근에 조금 좋아하게 됐지만요. 많이는 못 먹는데 대신 자주 먹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라면이에요. 어떨 땐 두 개도 먹어요.” 상원 군이 말하자 우주 군이 “난 원래 잘 먹는 편”이라고 말했다. “전 소고기를 좋아해요. 대회에서 1등 하면 엄마가 선물로 고기를 사주세요. 그냥 배부를 때까지 계속 먹는데 3인분은 거뜬히 넘게 먹을 수 있어요. 할아버지는 저를 아끼셔서 옆에서 계속 먹으라고 하세요. 중학생이 되면 장사급 형들을 못 이길 것 같아 역사급(80㎏ 초과 90㎏ 이하)에서 시작하려고 해요. 그럼 9~10㎏은 빼야 해서 고민이에요.”

닮고 싶은 선수를 묻자 상원 군은 부산갈매기 씨름단의 오흥민 선수를 꼽았다. “오흥민 선수는 경기에서 상황 대처력이 좋으시고, 나이도 많은데 몸 관리도 잘하세요. 저도 꾸준히 열심히 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우주 군은 “강호동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유튜브에서 강호동 선수 경기를 자주 봐요. 승부욕도 엄청나고 이기고 나서 소리 지르는 퍼포먼스도 멋있어요.” 예능인으로서의 강호동도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우주 군은 깜짝 놀랐다. “강호동이 TV에 나온다고요? 아! 예능에 나오는 걸 본 적 있긴 한데…. 씨름 선수 강호동이 더 익숙해요. 열심히 해서 강호동처럼 천하장사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