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별난 직업] 책 이야기꾼 '책비와 전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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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0.08 09:59

전문적으로 이야기책 읽어주는 '책비'
시장·길거리에서 소설 낭독한 '전기수'

조선 후기 사람들은 오늘날의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세책점'에서 책을 빌려봤어. 특히 한글로 쓰인 소설이 부녀자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지. '수호전' '서유기' '삼국지' 등 한글로 번역된 중국 소설을 비롯해 '사씨남정기' '장화홍련전' 등 한글로 된 소설은 없어서 못 볼 정도였어. 조선 시대 생겨난 '책비'와 '전기수'는 이렇게 재미난 책을 대신 읽어주는 역할을 했단다.

목소리 바꿔가며 책 읽어주는 여종 '책비'

가난한 선비들은 생계가 어려워지자 밥벌이나 하려고 세책점을 열었다고 해. 세책점에서는 놋뚜껑이나 그릇 등을 담보로 잡고 책을 빌려 줬어. 돈은 책을 돌려받을 때 받았지. 책을 빌려가는 계층은 양반·평민·노비 등 다양했어. 당시 세책점은 한양에만 있었어. 시골로 시집간 서울 여성들이 친정에 왔다가 많이 빌려 봤다고 해. 친정집에 며칠씩 묵으면서 소설 읽기에 푹 빠져 지냈지. 18세기에 세책점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다고 해. 실학자 이덕무는 이런 내용의 글을 남기기도 했지. '부녀자들이 집안일을 게을리하면서 소설을 빌려 읽느라 재산을 탕진하고 있다. 그들이 소설 읽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부녀자의 소설 읽기 열풍은 가라앉지 않았어. 특히 세책점 소설은 부잣집이나 사대부 집안의 여인에게까지 인기가 높았어. 그들은 '책비'라고 불리는 말 잘하는 여종을 머리맡에 불러 앉혔어. 그들은 등장인물에 따라 목소리를 바꿔 가며 이야기를 들려줬지.

책비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 머리맡에 '짠보'라는 수건을 두었어. 책을 읽다가 슬픈 대목이 나오면 사대부 집안의 여인에게 미리 알려 줬지. 여인은 이야기를 듣다 눈물이 나면 수건을 들어 닦았어. 수건을 많이 쓸수록 책 읽어 주는 값이 더 올라갔다고 해.
	[역사 속 별난 직업] 책 이야기꾼 '책비와 전기수'
흥미로운 대목에서 이야기 멈추며 돈 버는 '전기수'

조선 후기에는 길거리에서 돈을 받고 이야기책을 읽어 주던 사람도 있었어. 바로 '전기수'야. 상상 속 용궁 이야기를 담은 '심청전' 같은 전기소설(傳奇小說·기이한 소설)을 읽어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전기수는 시장과 다리 밑, 길거리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주로 소설을 낭독했어. 소설 내용을 줄줄 외운 뒤 혼자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읽었지. 감정을 섞어 이야기를 더욱 맛깔 나게 표현했단다. 영·정조 때 문학가인 조수삼의 '추재집'에는 전기수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

추재집에 따르면, 당시 동대문 밖에 아주 유명한 전기수가 살았다고 해. 그는 청계천 첫 번째 다리와 두 번째 다리, 교동 입구와 대사동 입구 등을 번갈아 다니며 소설을 읽었지. 이야기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한 번 자리 잡은 청중은 전기수의 말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고 해.

그는 이야기를 한참 들려주다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에 이르면 갑자기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청중은 다음 대목이 궁금해 너도나도 돈을 꺼내 들었지. 청중이 돈을 모두 던지고 난 뒤에야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고 해. 이처럼 조선 시대에는 전기수나 책비 같은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 정말 많았단다.

가문비 어린이 '역사를 바꾼 별난 직업 이야기' (신현배 글, 이소영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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