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탕! 탕! 탕!'

광주 마지초등학교에는 여느 학교에서 듣기 어려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전동 톱이 나무 자르는 소리, 망치가 못을 때리는 소리가 5층 복도를 가득 메운다. 마지초만의 특별 공간 '엉뚱공작소'에서 학생들이 각종 물품을 만드는 소리다. 쓰레기통, 의자, 책상, 놀이용 자동차까지 뚝딱 완성한다.

마지초 학생들은 학교 어디든 마음대로 꾸밀 수 있다. 새하얀 블라인드에는 알록달록한 그림을 그렸고, 유리창에는 펜으로 낙서를 해놨다. 복도 곳곳에는 언제든 쉴 수 있는 아늑한 쉼터가 마련됐다. 미니 카페에서는 와플·아이스티 등 음식도 만든다. 지난 14일 학생이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뤄지는 학교, 마지초를 찾았다.

"수업 끝나도 집에 가기 싫어요"

"예쁘게만 꾸미면 그건 '모델하우스'죠. 거기선 사람이 살 수 없어요. 우리 학교는 조금 투박할지라도, 가구나 장난감 어디든 아이들의 손때가 묻어 있어요. 금방 망가져도 괜찮아요. 고치면 되거든요." 마지초 공간 변화를 이끈 김황 선생님이 말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엉뚱공작소'였다. 전동 톱과 전동 드릴, 망치, 드라이버, 못 등 각종 공구가 벽과 선반에 가득했다. 3D 프린터 5대도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학생들은 이곳에서 학교에 필요한 물건이나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을 제작한다. 책꽂이, 휴대전화 거치대, 책상, 의자 등 뭐든 가능하다. 옆에 있는 '엉뚱 카페'에서는 간단한 간식도 요리한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 '달보드레' 교실에서는 놀이판이 벌어졌다. 책상을 치운 넓은 공간에서 학생들은 굴링이나 전동자동차를 타고 놀았다. 역시 모두 직접 만든 장난감들이다. 굴링은 폐타이어에 나무판자와 바퀴를 덧대어 만든 기구다. 전동자동차는 낡은 의자에 나무판자를 붙이고 바퀴와 모터를 달아 완성했다. 주경준(6학년) 군은 "예전에는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서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PC방에 갔는데, 이제는 학교에 남아 이것저것 만들다 간다"며 "엄마도 학교에서 놀겠다고 하면 안심하고 허락해주신다"고 말했다.

복도에는 미니 탁구대가 설치돼 있었다. 창고에 있던 과학실 책상을 개조한 것이다. 헌 책상을 예쁘게 색칠하고, 이동하기 쉽도록 다리 밑에 바퀴를 달았다. 판자로 탁구채도 만들었다. 유리창은 깨끗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깼다. 마지초 유리창에는 누구나 펜으로 낙서할 수 있다. 창문에는 "힘내" "넌 할 수 있어!" 등 서로 응원하는 문구가 가득했다.

썰렁한 복도가 아늑한 쉼터로

마지초에서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된 건 지난해다. 이전까지는 학생들이 맘 놓고 쉬거나 놀 공간이 없었다. 칠판에 낙서하거나 화단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 전부였다. 운동장도 축구를 하는 팀이 있으면 꽉 찰 정도로 비좁았다. 김 선생님은 학생이 쓸 공간이니, 학생 의견을 들어 환경을 바꿔보기로 했다. 설문 조사를 했더니 많은 학생이 "앉을 곳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규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차가운 복도 바닥이나 계단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책상이 가득한 교실에서는 숙제 외엔 할 일이 없었고, 다른 반 친구와 어울려 놀기도 어려웠다.

쉼터 조성부터 진행했다. 복도를 차지하고 있던 유리 진열장과 초록 게시판부터 없앴다. 그 대신 미끄럼틀을 타거나 블록 놀이를 할 수 있는 쉼터를 곳곳에 마련했다. 박수연(3학년) 양은 "추운 날도 학교 안에서 아늑하게 놀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필요한 물품을 학생 손으로 만들 공간도 마련했다. 빛바랜 책상이 가득했던 실과실을 개조해 엉뚱공작소를 조성했다. 그렇게 죽어 있던 학교 공간을 하나하나 바꿔나가자 아이들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우리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요!"

소극적인 아이들도 엉뚱공작소에서 재능을 발휘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 특수학급 학생들에게도 저마다 특기가 생겼다. 공구를 걸어둘 곳이 필요하다고 하자, 한 학생이 2주 동안 점심때마다 나무판에 일일이 구멍을 뚫어 타공판을 뚝딱 완성했다.

김 선생님은 "학생들이 공간에 대한 주인 의식과 문제 해결력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강조한다. 학생들은 공간 사용 중 생긴 문제를 회의 안건으로 채택하고, 스스로 규칙을 정해 해결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학교에 구매를 요청하거나 직접 제작한다. "아이들은 지금까지 어른들이 제공한 교실에서만 지냈어요. 우리 학교 학생들은 그 공간에 손을 대기 시작한 거예요. 교사로서는 신경 써야 할 일이 늘었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니 저도 뿌듯합니다."(김황 선생님)

학생들은 아직도 바꾸고 싶은 공간이 많다고 했다. 지혜원(6학년) 양은 "앞으로 의자를 더 만들어 복도 여기저기에 배치할 생각"이라며 "야외용 테이블도 짜서 옥상에 정원을 꾸미고 싶다"고 말했다. 졸업을 앞둔 아이들은 정이 듬뿍 든 공간을 곧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워했다. "1년 동안 우리 손으로 만든 것들을 남겨두고 졸업하기 너무 아까워요. 중학생이 돼서도 찾아올 거예요. 세상 어디에 이런 장소가 있겠어요!"(6학년 장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