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1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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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1.14 13:35

그가 톤즈로 봉사 떠난 이유? "세상서 제일 가난한 곳이니까"

간이 진료실서 하루에 150명 넘게 치료
아이들 위해 학교 세우고, 악기도 가르쳐
남수단서 외국인 최초 대통령 훈장 받아

2년간 대장암 앓다가 48세 나이에 '영면'
의사 꿈 이룬 제자 아콧 "신부 뜻 이을 것"

의사라는 미래가 보장된 직업을 버리고 오지 중의 오지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떠난 고(故) 이태석(1962∼2010) 신부. 그는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서 평생을 바쳐 가난과 병마에 스러져가는 이들을 품었습니다. 함께 사제의 길을 걷던 김상윤 신부가 "왜 톤즈에 가려고 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해요.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곳이니까." 오늘(14일)은 이태석 신부가 하늘의 별이 된 지 딱 10년째 되는 날입니다. 이 신부의 선종(善終) 10주기를 맞아 그의 숭고한 삶을 돌아봤습니다.

하루 150명 넘는 환자 홀로 돌본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1962~2010) 신부와 남수단 톤즈의 어린이들. 이 신부는 톤즈의 유일한 마을 의사이자 교육자, 음악가였다. 남수단은 이 신부를 ‘영웅’으로 기억한다.
이태석(1962~2010) 신부와 남수단 톤즈의 어린이들. 이 신부는 톤즈의 유일한 마을 의사이자 교육자, 음악가였다. 남수단은 이 신부를 ‘영웅’으로 기억한다. / 수단어린이장학회 제공

	이 신부는 톤즈의 아이들을 모아 35인조 브라스 밴드를 결성했다. 아이들은 이 신부로부터 트럼펫·플루트 등의 악기를 배우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나갔다.
이 신부는 톤즈의 아이들을 모아 35인조 브라스 밴드를 결성했다. 아이들은 이 신부로부터 트럼펫·플루트 등의 악기를 배우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나갔다. / 마운틴픽처스 제공
"반드시 이곳에 다시 돌아올 거야. 내 남은 삶을 이들과 함께하겠어."

1999년 8월,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당시 그는 로마에서 신부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었어요. 방학을 맞아 아프리카로 봉사를 떠난 이 신부는 내전이 한창이던 남수단의 참혹한 민 낯을 마주합니다. 아이들은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해 뼈가 앙상하게 드러났고, 폭격으로 팔다리를 잃은 이들이 길바닥에 누워 음식을 구걸하고 있었죠. 2001년 11월, 한국에서 가톨릭 사제가 된 이태석 신부는 곧바로 짐을 꾸려 남수단으로 향했어요. 그의 나이, 서른아홉의 일이었어요.

그가 정착한 톤즈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지로 불리는 곳이었어요. 마을 곳곳에는 하루빨리 치료받아야 할 환자가 넘쳐났어요.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한 이 신부가 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겠죠? 이 신부는 흙과 짚더미를 엮어 간이 진료실을 세웠습니다. 말라리아 등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하루에도 150명 넘는 환자를 홀로 돌봤다고 해요. 마을 주민들이 오염된 강물을 마셔 콜레라가 번지자 직접 우물을 파 식수난을 해결하기도 했죠. 그들은 지금도 이 신부를 '수단의 슈바이처'로 기억하고 있답니다.

음악가이자 교육자, 남수단 사람들의 '영웅' 쫄리

	2018년 부산 인제의대 학위수여식에 참석한 토마스 타반 아콧씨가 이태석 신부의 동상 위에 학사모를 씌우고 있다.
2018년 부산 인제의대 학위수여식에 참석한 토마스 타반 아콧씨가 이태석 신부의 동상 위에 학사모를 씌우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신부가 톤즈에서 의사 역할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웠어요. 이 신부는 주로 수학을 알려줬다고 해요.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이 신부는 35인조 브라스 밴드(brass band)를 결성해 아이들에게 악기도 가르쳤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아이들은 총 대신 악기를 쥐어 들고 평화를 노래했죠. 이 신부는 톤즈에서 유일한 의사이자 교육자였고, 또 음악가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쫄리(John Lee·이 신부의 영어 이름)'라고 부르며 따랐어요.

남은 헌신적으로 돌봤지만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했던 걸까요. 2008년 휴가차 잠시 귀국했던 그는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습니다. 이 신부는 2년간의 투병 끝에 2010년 바로 오늘, 48세라는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 2018년 남수단 정부는 이 신부에게 대통령 훈장을 추서했습니다. 남수단에서 외국인이 대통령 훈장을 받은 것은 이 신부가 처음이었죠. 이 신부의 삶은 남수단 초등·고등 교과서에도 실렸어요. 교과서는 이 신부에 대해 "남수단은 물론 전 세계의 영웅(hero)"이라고 설명했답니다.

이태석 신부의 뒤를 잇는 사람들

이 신부가 뿌린 사랑의 씨앗은 또 다른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의 뒤를 잇는 사람들 덕분이죠. 지난 2018년 이 신부의 모교인 부산 인제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토마스 타반 아콧(35)씨가 그중 한 명입니다. 톤즈에서 나고 자란 아콧씨는 어릴 적 이 신부의 약통을 들고 따라다니며 그를 도왔어요. 이 신부를 보며 의사를 꿈꿨다고 해요. 이제 그의 목표는 하나입니다. 외과 전문의가 돼 고향으로 돌아가 이 신부의 남은 뜻을 펼치는 것이죠.

이 신부의 발자취를 따르는 또 다른 인물은 박세업(59)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본부장입니다. 그는 최근 부산사람이태석기념사업회로부터 '제9회 이태석 봉사상'을 받았습니다. 의학을 공부한 그는 40세라는 늦은 나이에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어요. 지금껏 의료 환경이 열악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아픈 환자를 돌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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