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세가 여전히 사납습니다. 어느새 전 세계 확진자 수는 90만 명, 사망자 수는 4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전염병이 인간에게 고통을 안겨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각종 역사서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인류를 괴롭혔던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죠. 조선왕조실록에는 무려 1455건의 기록이 있어요. 현대에도 전염병 막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의학 기술이 부족했던 과거에 역병은 더 큰 공포의 대상이었어요. 한 번 역병이 유행하면 백성과 가축들은 무참히 목숨을 잃었고, 고을 하나가 우습게 쓰러졌죠. 도대체 어떤 전염병이 선조들을 괴롭혔고, 조상들은 어떻게 맞섰을까요? 오늘은 조선 시대로 여행을 떠나봅시다.

호랑이만큼 무서운 질병 '천연두'… 조선을 흔들다

‘호환 마마’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전 세계에서 3억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천연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호환’은 호랑이에게 당하는 화를 뜻해요. 조선 시대 사람들은 천연두가 얼마나 두려웠던지, 여기에 ‘마마’라는 극존칭을 붙였어요. 공손한 태도에 기분이 좋아진 천연두가 멀리 떠나주길 바라면서요. 천연두에 걸리면 온몸을 달구는 고열과 피부 전체에 솟은 붉은 발진으로 고통받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겨우 살아남더라도 얼굴과 신체에는 보기 흉한 상처 자국이 남았고, 때로는 고열의 후유증으로 눈이 멀기도 했어요. 현종실록(1671년)에는 “팔도에 기아와 여역(열병), 마마로 죽은 백성을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는 정도다.(중략) 늙은이들은 이런 상황은 태어나서 보거나 들어본 적도 없는 것으로, 참혹한 죽음이 임진년 병화보다도 더하다고 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여기서 임진년 병화는 임진왜란(1592년)을 가리킵니다.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가 전쟁보다 참혹하다니, 얼마나 끔찍했는지 상상이 되나요?

천연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 퍼졌습니다. 특히 조선 왕실 가족을 괴롭혔죠. 조선 19대 왕인 숙종이 천연두에 걸렸고, 숙종의 첫 부인인 인경왕후 김씨도 이 질병을 앓다가 세상을 떴습니다. 선조는 1603년 겨울 불과 한 달 사이에 아들·딸·손자를 모두 잃었고, 태종·세종·현종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천연두로 떠나보냈어요. ‘목민심서’로 잘 알려진 정약용의 자식 9명 중 5명도 네 살이 되기 전 천연두로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수십 만 목숨 앗아간 '콜레라'와 '독감'

1821년(순조 21년)에는 인도의 풍토병인 ‘콜레라’가 중국을 거쳐 조선에 상륙했습니다. 콜레라균에 감염되면 갑자기 설사와 구토를 하고, 이로 인해 빠르게 탈수가 진행돼 결국 사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조상들은 ‘호랑이가 살점을 물어뜯는 고통을 준다’며 콜레라를 ‘호열자’라고 불렀죠. 콜레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821년 8월 13일 순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평안 감사 김이교는 “평양부의 성 안팎에 지난달 그믐 사이 갑자기 괴질(콜레라)이 유행해 잠깐 사이에 사망한 사람이 열흘 동안 자그마치 1000명이나 됐습니다. 약도 소용없고 구제할 방법도 없으니 눈앞의 광경이 참담합니다”라고 왕에게 보고했어요. 콜레라는 이듬해 조선 전역으로 퍼져 백성 수만 명의 목숨을 위협했습니다.

오늘날 겨울철에 유행하는 ‘독감’도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1750년(영조 26년) 전국에 독감으로 추정되는 ‘역질’이 돌았는데요. 당시 영조실록에는 “팔도에 역질이 차츰 일어나 죽은 자가 즐비했다”는 참상이 기록돼 있어요. 영조는 “아! 해는 이미 바뀌어 만물이 모두 봄기운을 타고 있는데, 우리 백성은 친척·형제·고아·과처가 울부짖고 서러워하니 저절로 처절해진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면서 “죽은 자는 방법을 다해 거둬 묻어주고, 산 사람은 특별히 구원해 살려내게 하라”고 명령했어요. 이때 사망자 수는 20만 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역병 물렀거라! 제사 지내고, 위생 관리하고

조선 시대에는 하늘이나 귀신의 노여움 때문에 역병이 발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전염병·전쟁으로 원통하게 죽은 귀신이나, 후손에게 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의 원한이 저주를 내린다고 여겼죠. 그래서 귀신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제사인 ‘여제’를 지냈습니다. 왕과 신하들은 귀신을 위로하고 공포에 떠는 백성을 안심시키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에 제사를 올렸어요.

일반 백성도 손 놓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집에 들어오려는 귀신을 막기 위해 붉은 글씨가 적힌 부적을 대문에 붙이거나 몸에 지니고 다녔고, 큰 솥에 물을 끓여 마당에 놓고 향을 태웠죠. 호랑이 머리뼈와 각종 약재를 뭉쳐 만든 ‘칠물호두원’이라는 알약을 집 네 모퉁이에 달아놓기도 했어요.

너무 미신적인 처방만 내리는 것이 아니냐고요? 백성을 질병에서 지키려는 체계적인 시스템도 있었습니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존휼’, 즉 백성을 위문하고 구제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근이나 질병이 발생하면 의원을 지방에 파견했습니다. 귀천에 상관없이 누구나 관청에 신고해 치료를 받고 약도 얻도록 제도를 만들었죠. 이런 조치는 환자의 질병 저항력을 강화했음은 물론, 민심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있었어요.

오늘날 인정할 만한 과학적인 대처도 했습니다. 병을 예방하기 위한 위생 관리를 강조한 겁니다. 1525년 중종은 전염병 치료와 예방법을 다룬 ‘간이벽온방’을 지어 반포했어요. 이 책에서 ▲병든 사람이 입은 옷을 깨끗이 빨 것 ▲동쪽으로 난 복숭아 가지를 잘게 잘라 달인 물로 깨끗이 목욕할 것 등 개인이 위생을 지키는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국가 제도나 전문가의 역할뿐 아니라 질병에 맞서는 개인 역할도 중요해진 것이죠.

그림=나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