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지 속 아이들도 누군가에겐 보물… 관심 있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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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22 09:23

실종 아동 찾기 '29년째' 나주봉 미아찾기모임 회장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5월이다. 매년 이맘때면 아물지 않는 그리움에 또 한 번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아침에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실종 아동의 부모들이다. 이들에게 어린이날·어버이날 등으로 가득한 5월은 잔인한 달이다. 나주봉(65)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이하 미아찾기모임) 회장은 눈물 마를 날 없는 실종 어린이 부모 곁을 29년째 지키고 있다. 내년이면 꼬박 30년을 실종 아동 찾기에 바친다. 지금껏 그가 찾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낸 아이만 650여 명이다.

	지난 13일 만난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회장은 요즘도 날마다 거리로 나와 실종 아동 전단을 뿌린다. 그는 “거리에서 전단을 받으면 그냥 버리지 말고 꼭 한 번만 눈여겨봐달라”고 했다.
지난 13일 만난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회장은 요즘도 날마다 거리로 나와 실종 아동 전단을 뿌린다. 그는 “거리에서 전단을 받으면 그냥 버리지 말고 꼭 한 번만 눈여겨봐달라”고 했다. / 주민욱 객원기자
'개구리 소년' 부모 얼굴 자꾸 눈에 밟혀… 그들과 함께하기로

'세계 실종아동의 날'(5월 25일)을 앞둔 지난 13일 나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 청량리역을 찾았다. 6평(약 20㎡) 남짓한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미아찾기모임 사무실로 들어섰다. 벽면에 실종 아동 포스터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나씨는 어린이 한 명 한 명의 사진을 쓸어내렸다. "이 아이는 지금 어딘가에 살아 있을 확률이 높아요. 마흔쯤 됐겠네. 당시 애 엄마가 마당에서 갓난아기를 재우는데, 낯선 여자가 다가오더래요. 물 한 잔만 달라고. 그래서 물 뜨러 잠시 자릴 비운 사이 애가 없어진 거예요. 아기를 갖고 싶은데 어떤 사정으로 낳지 못하는 사람이 납치한 걸로 보여요. 자기가 데려다 키우려고. 아이 없어진 후로 돈을 요구하는 협박 전화 같은 게 안 왔거든요." 실종 아동 전단을 한참 바라보던 나씨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집은 애가 사라진 후로 부모가 이혼했어요. 애 엄마는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세상을 등졌고요. 실종 아동 가정은 대개 비슷한 이유로 무너집니다." 나씨는 "아이를 잃은 부모는 절망에 젖어 남은 인생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한다"며 "그들과 슬픔을 나누고자 시작한 일이 이렇게 오래갈 줄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미아찾기모임 사무실에서 만난 나씨는 벽면의 실종 아동 포스터에 담긴 아이들 사연을 하나씩 풀어놨다. 이야기는 네 시간째 이어졌다.
미아찾기모임 사무실에서 만난 나씨는 벽면의 실종 아동 포스터에 담긴 아이들 사연을 하나씩 풀어놨다. 이야기는 네 시간째 이어졌다.
Q 실종 아동 찾기에 나선 지 올해로 29년째입니다. 어쩌다 이 일에 평생 매달리게 됐는지요.

"1991년 이맘때네요. 인천 월미도에서 장사하며 먹고 살고 있었어요. 그날도 한창 정신없이 물건을 파는데 저만치서 비쩍 마른 아주머니 한 분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쉴 새 없이 나눠 주고 있었어요. 가서 '뭐하시느냐' 물으니 애를 찾는다더군요. 전단을 보니 석 달 전 대구 와룡산에서 실종된 '개구리 소년'이었어요. 개구리 잡으러 나간 초등학생 다섯 명이 실종된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하던 시기였죠. 그 부모가 자식 찾겠다고 대구에서 인천까지 왔던 거예요. 그때 전단을 건네받은 한 사람이 신발에 붙은 껌을 그 종이로 떼고 바닥에 휙 버리더라고요. 분노가 치밀었죠. 나라도 돕자는 생각에 전단을 한 뭉치 받아 왔네요."

나씨는 개구리 소년 부모의 슬픈 눈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장사를 하다가도 문득 자식 잃은 부모의 파리한 낯빛이 떠올랐다. 결국 하던 일도 접고 그들과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Q 그 후로 사라진 아이들 찾으러 방방곡곡을 뒤졌다고요.

"개구리 소년 아빠 다섯 명과 함께 3년 10개월간 전국을 다녔어요. 터미널이나 시장 등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은 다 찾아가서 전단을 뿌렸죠. 전국을 돌며 생활하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길거리에서 군밤 장사해가며 생계비를 마련했어요. 하루 번 돈으로 국밥 한 그릇 사먹고 다시 힘내서 전단 돌리고 그랬죠. 당시 제 이야기가 TV 뉴스에도 여러 번 나왔어요. 그러자 각지에서 "내 아이도 찾아 달라"는 애타는 요청이 이어졌죠. 못 본 체 지나칠 수 없더라고요. '아, 평생을 이들과 함께할 운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가족들에겐 '빵점 아빠, 빵점 남편'이었죠(웃음). 허구한 날 남 돕는다고 바빴으니까요. 지금은 틈틈이 보험 영업을 합니다. 제 명함 앞면에는 미아찾기모임 회장, 뒷면에는 보험 설계사라고 적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아동(아동복지법상 18세 미만) 약 1만 명이 실종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10년 이상 장기 실종 아동은 598명이다.

'지문 사전 등록'하면 이동 실종 막을 수 있죠

	나씨가 미아찾기모임 사무실에서 실종 아동 정보를 검색하고 있다.
나씨가 미아찾기모임 사무실에서 실종 아동 정보를 검색하고 있다.

	나씨가 미아찾기모임 사무실에서 실종 아동 정보를 검색하고 있다(위 사진). 서울 청량리역 2번 출구 근처에 자리 잡은 미아찾기모임 사무실.
서울 청량리역 2번 출구 근처에 자리 잡은 미아찾기모임 사무실.
Q 지금껏 600명 넘는 실종 아동을 찾아 부모 품으로 돌려보내셨어요.

"끝내 못 찾은 아이가 더 많죠.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이 일을 하며 가장 힘든 순간은 변사자 목록에서 실종 아동을 발견할 때예요. 경찰은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이 접수되면 신체 특징 등을 적어서 공고를 냅니다. '이 사람이 죽었으니 가족이 와서 장례를 치르라'는 의미죠. 2003년이었을 거예요. 그때도 한 부모의 애타는 전화를 받고 실종 아동 찾기에 나섰어요. 언어장애가 있던 16살 사내아이였죠. 서울에서 없어졌는데 몇 달이나 흘러 경기 평택경찰서 영안실에서 발견했어요. 혼자 전철 타고 평택까지 갔다가 그만 사고를 당했던 겁니다. 아이가 영안실에 있는 것도 모르고 전단을 뿌리고 다녔던 거죠."

나씨는 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 지문 사전등록제' 도입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2012년 7월 시행된 아동 지문 사전등록제는 18세 미만 아동의 지문과 사진 등 신상 정보를 보호자 연락처와 함께 경찰에 등록해 놓도록 한 제도다.

Q 관계 기관에 아동 지문 사전등록제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수년간 애쓰셨다고요.

"이런 사례가 다시는 없어야 하니까요. 어른이야 주민등록증이 있으니 실종돼도 찾기가 수월해요. 사망한 그 아이도 신상 정보가 경찰에 등록돼 있었다면 금방 찾았겠죠. 사람은 만 3세면 지문이 형성돼요. 지문 등록만 해두면 서울에서 사라진 아동이 제주에서 발견돼도 누군지 알 수 있어요. 과정도 간단해요. 가까운 경찰서나 파출소에 자녀와 함께 방문해 등록하면 됩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8세 미만 아동이 실종될 경우 부모를 찾기까지 평균 81.7시간 걸리지만, 지문을 사전 등록한 아동은 평균 46분 만에 찾을 수 있다. 나씨는 "좋은 제도지만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만18세 미만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만약을 대비해 지문 등록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

Q 10여 년 전 이맘때 어린이조선일보(구 소년조선일보)와 인터뷰하셨죠. 강산이 한 번은 바뀔 시간이 흘렀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달라진 게 있을까요.

"예전만큼 '우리 애 좀 찾아 달라'는 연락을 자주 받지는 않아요. 우리 사회가 아동을 잘 지켜 주고 있다는 뜻이겠죠. 그렇지만 10년이 지나든 100년이 지나든 자식 찾는 부모의 애타는 심정이야 변하겠나요. 어휴, 이제는 정말 이 일을 그만하고 싶어요. 그만둬야지, 그만둬야지 하다가도 어딘가에 살아 있을 아이들 생각하면 눈에 밟혀서…. 모든 국민이 실종자 가족의 아픔에 공감해 주시면 좋겠어요. 길거리에서 전단을 받으면 두 번, 세 번 관심 있게 봐 주세요. 전단 속 아이들은 모두 누군가에겐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입니다."

◇세계 실종아동의 날

	세계 실종아동의 날
세계 실종아동의 날은 1979년 5월 25일 미국 뉴욕에서 실종된 에탄 페이 사건을 계기로 제정됐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에탄은 홀로 등교 중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경찰은 대대적인 탐문 수사를 벌였지만 아이를 찾는 데 실패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983년, 당시 미 대통령이던 로널드 레이건은 실종 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에탄이 실종된 날을 '세계 실종아동의 날'로 정했다. 매년 이 날이 되면 각국에서는 실종 아동을 찾는 거리 행진과 캠페인을 진행한다. 한편, 에탄은 납치 살해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012년 5월 범인인 페드로 에르난데스(51)가 이웃에게 범행을 털어놓았다가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그가 체포된 날은 에탄의 실종 33주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아동 실종 막으려면 이렇게

1. 등·하굣길에 혼자 다니지 마세요. 여러 명이 함께 다니면 유괴 등 범죄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어요.

2. 책가방, 신발주머니 등 소지품에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쓰지 않는 것이 좋아요. 낯선 사람이 소지품에 적힌 개인 정보를 보고 범죄에 악용할 수 있어요.

3. 낯선 사람이 '아빠·엄마 친구'라며 함께 가자고 해도 절대 따라가지 마세요. 반드시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인지 확인하세요.

4. 낯선 사람이 도움을 청한다면 직접 나서지 마세요. 주위 어른에게 부탁하세요.

5. 누가 따라오는 것 같다면 근처 슈퍼마켓이나 문방구, 파출소 등에 들어가 도와달라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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