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써 내려간 마음속 이야기들 반짝반짝 빛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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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6.29 09:53

[반짝반짝 우리 선생님]
아이들과 그림책 만드는 이현아 서울 홍릉초 교사

6년째 '교실 속 창착 프로젝트' 이어 와
교사는 아이들 목소리에 귀 기울일 뿐
스스로 주제 정하고 글·그림까지 다 해

	“아이들 작품 좀 보세요. ‘그림책은 애들이나 읽는 것’이란 어른들 편견을 싹 깨 준다니까요.” 6년째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이어오는 이현아 서울 홍릉초 교사가 말했다. 이 교사 앞에 있는 책은 모두 초등학생 손에서 탄생했다./이한솔 기자
“아이들 작품 좀 보세요. ‘그림책은 애들이나 읽는 것’이란 어른들 편견을 싹 깨 준다니까요.” 6년째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이어오는 이현아 서울 홍릉초 교사가 말했다. 이 교사 앞에 있는 책은 모두 초등학생 손에서 탄생했다./이한솔 기자
'아빠가 돌아가셨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집에 오니, 엄마가 라면을 끓여주셨다. 라면이 짜다.'

사랑하는 아빠를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 6학년 재환이(가명)는 매 순간 차오르는 슬픔을 '라면이 짜다'는 다섯 글자에 담아냈다. 그전까지 단 한 번도 속 얘기를 꺼낸 적 없는 아이였다. 자신만의 슬픔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 보자는 선생님 제안에 아이는 말없이 연필을 들었다. 아빠를 향한 그리운 마음은 그렇게 작품이 됐다.

이현아(34) 서울 홍릉초 교사는 올해로 6년째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이어 오고 있다. 그의 교실에선 재환이를 비롯한 학생 한 명 한 명이 작가로 불린다. 어린이들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꺼낸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엮어 낸다. 이 교사는 아이들이 제 목소리를 내도록 곁에서 돕는다. 이렇게 아이들과 힘을 합쳐 펴낸 그림책만 200여 권에 달한다. 책 고유 출판 번호인 ISBN까지 달린 '진짜' 책이다.


"모든 어린이는 자기만의 언어를 가졌죠"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사에서 만난 이 교사는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그림책을 한 아름 들고 왔다. 빼뚤빼뚤한 글씨와 어설픈 그림이 영락없는 '초딩' 솜씨였다.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묵직했다. '경쟁 사회' '학업 부담' '죽음과 이별'…. 아이들 저마다 세상을 경험하며 보고 느낀 것들이 글과 그림으로 펼쳐졌다

"어른들은 어린이를 과소평가하곤 해요. 성숙하지 않고 생각이 여물지 않아 깊이 고민할 줄 모른다고요. 제가 오랫동안 아이들과 교실에서 부대끼며 느낀 건 '어린이의 세계도 성인 못지않게 깊다'는 사실이에요. 때론 아이가 어른의 길잡이가 되기도 하죠." 이 교사는 "글을 써 내려가는 제자를 볼 때마다 '꼬맹이가 어쩜 이런 생각을 할까?' 하며 감탄할 때가 많다"며 "모든 아이는 가슴속에 자기만의 빛나는 언어를 가진 존재"라고 했다.

교실 속 그림책 프로젝트는 2015년 출발했다. 교과서 중심 수업에서 벗어나 학생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이 교사는 "진도 나가기에 급급한 교육 체제 안에선 아이들과 마음 나누기 어렵다"며 "동화를 짓고 그림을 그리면, 말로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6학년 실과 시간에 배운 '솎아 내기'란 개념으로 책을 만든 친구가 있어요. 솎아 내기는 작물이 영양분을 더 많이 흡수하도록 옆에 난 약한 새싹을 뽑아내는 일이에요. 아이는 그림책에서 '우리 사회도 약한 사람을 솎아 내고 있다'고 지적했어요. 시험 점수로 학생의 존재 가치를 매기는 사회에선 누구든 언제나 뽑혀 나갈 수 있다면서요. 약한 새싹에도 충분히 자라날 기회를 줘야 한다는 메시지로 끝맺었죠. 정말 놀라웠어요. 여러 번 수업한 내용이지만, 한 번도 솎아 내기를 사회와 연관지어 고민한 적은 없었거든요. 아이들을 가르치며 저도 성장하는 걸 느껴요."


그림책 만들며 내면 깊숙한 곳 들여다봅니다

그림책 수업은 1년여에 걸쳐 이뤄진다. 각자 어떤 그림책을 만들지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글을 쓰고 삽화를 그리는 일까지 전부 아이들이 한다. 모든 아이가 글과 그림에 능숙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작가가 되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그림 대신 사진을 찍어 완성하는 학생도 있고, 신문 기사를 오려 붙여 책을 만드는 아이도 있다. 이 교사는 "그림책 수업 땐 아이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둔다"며 "교사 역할은 자기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 곁에서 약간의 조언을 더하는 일"이라고 했다. "보통 '오늘 기분이 어때?'라고 물으면 대답은 '좋아요' '그냥 그래요'처럼 단답 일색이에요. 지금 감정을 날씨에 비유해 보자고 하면 표현이 훨씬 풍부해지죠. '제 마음에 주룩주룩 비가 내려요. 아침에 동생과 싸워서 엄마께 혼났거든요. 화도 나요. 이따금 우르르 쾅쾅 천둥도 쳐요'같이 생생한 이야기를 꺼내 놔요. 한 교실에 있지만, 아이들은 각기 다른 역사를 품고 있어요. 꼬마 작가들은 그림책을 만들며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잘 이해하게 됩니다."

이 교사는 제자를 위해 1인 출판사도 차렸다. 스케치북에 끼적인 글과 그림은 빳빳한 표지와 작가 소개, 추천사까지 더해져 어엿한 책으로 탄생한다. 이 교사는 "아이들의 세계를 '책'이라는 근사한 틀에 담아 주고 싶었다"며 "완성된 책을 받아든 아이들은 자기 생각이 하나의 온전한 작품이 된다는 사실에 놀란다"고 말했다.

최근 이 교사는 지난 6년여간의 수업 경험을 담아 '그림책 한 권의 힘'이란 책을 냈다. "요즘 아이들, 참 바쁘죠.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정작 마음을 돌볼 시간은 부족해요. 저는 아이들이 그림책 쓰면서 반짝반짝 빛나던 순간을 여러 번 봤어요.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자기를 알아가는 즐거움에 눈을 뜨는 거죠. 앞으로도 아이들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곁에서 돕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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