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린이] 푸드카빙 마스터 박수빈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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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7.31 06:00


	푸드카빙 마스터  박수빈 군
수빈이는 칼 한 자루와 채소만 있으면 각종 꽃과 동물을 만들어 낸다. 인터뷰 당일에도 ‘수박 꽃’을 30분 만에 뚝딱 완성하더니 “놀이터에서 노는 것보다 카빙하는 게 더 재밌다”며 웃었다. /영주=양수열 기자
장난기가 가득한 열 살 소년의 얼굴이 '수박' 앞에 서자 진지해진다. 커다란 수박 껍질을 자기 팔뚝만큼 긴 칼로 석석 벗겨 내더니, 작은 칼을 집는다. 그리고 온 집중을 다해 수박을 조각하기 시작한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수박은 어느새 붉은 꽃으로 변해 있었다.

박수빈(경북 영주 안정초 4) 군은 '푸드카빙 마스터'다. 어른도 1~2년 걸려 따는 이 자격증을 수빈이는 연습한 지 10개월 만에 손에 넣었다. 초등학생답지 않은 손목 힘으로 단단한 과일과 채소를 거침없이 깎아 낸다. 수빈이 손이 닿은 수박 위에서는 화려한 장미가 만발하고, 당근은 용맹한 용이 된다. 무는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듯한 물고기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 22일 경북 영주 경북카빙아카데미에서 '꼬마 미켈란젤로' 수빈이를 만났다.

수박은 '만능 스케치북'


	박수빈
지난해 5월 ‘서울국제푸드앤테이블웨어박람회’에 참가한 수빈이가 수박에 장미를 새기고 있다.
‘푸드카빙’은 과일이나 채소를 섬세하게 깎아 모양을 내는 작업이다. 수박·당근·무·호박 같은 음식 재료의 원래 색깔과 특징을 살려 화려한 작품을 만든다. 요리사나 취미로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이 음식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주로 배운다. 수빈이가 푸드카빙을 택한 이유는 조금 달랐다. “대부분 취미 생활에 쓰이는 재료가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더라고요. 요즘 환경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과일이나 채소는 자연을 오염시키지 않아요. 버려도 썩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니까요. 푸드카빙 작품 재료는 음식이다 보니까 2~3일 후에는 폐기해야 해요. 작품을 그냥 버리지 않고 동물 먹이로 주거나 비료로 쓰니까 낭비되는 것도 없어요.”

수빈이는 다양한 재료 중 수박을 제일 좋아한다. 지금까지 카빙 대회에서 네 번 상을 받았는데, 모두 수박을 재료로 했을 때였다. 수빈이에게는 수박이 ‘만능 스케치북’이다. 어벤져스의 타노스, 개구리 왕눈이, 뽀로로, 펭수 등 좋아하는 캐릭터를 수박에 가득 새긴다. “제 이름 ‘박수빈’을 거꾸로 하면 ‘빈수박’이잖아요(웃음). 친구들이 부르는 별명이에요. 실제로 카빙할 때 속이 약간 비어 있는 수박을 써야 해요. 너무 속이 꽉 차고 잘 익은 수박은 칼을 살짝만 그어도 쩍 갈라지니까 조각하기 어렵거든요. 제 이름부터 카빙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 같죠?”

세 시간이면 용 한 마리 만들어요


	박수빈
수빈이가 만든 당근 용. 커다란 당근 세 개를 조각하고 이어서 완성했다.
수빈이는 지난해 4월 카빙을 시작했다. 텔레비전에서 고등학생 형이 푸드카빙을 하는 걸 보고는 손이 근질거렸단다. 평소 흔히 볼 수 있는 당근이 새우로 변하고, 무가 돌고래가 되는 것이 꼭 마법 같았다.

부모님 허락을 받고 본격적으로 푸드카빙 학원에 다녔다. 종이에 꽃과 동물을 그리는 연습부터 했다. 이어 무에 꽃을 조각하는 법을 배웠고, 무를 다루는 게 익숙해지자 수박에 꽃잎을 새겼다. 기초 실력을 쌓고서는 이를 응용해 각종 캐릭터를 조각했다. 실력은 쑥쑥 늘어, 배운 지 한 달 만에 나간 수박 카빙 대회에서 수빈이는 고등학생 형·누나들을 제치고 은상을 받았다. 지난 2월에는 당근으로 용을 만들어 푸드카빙 마스터 자격증을 땄다.

전문가들은 푸드카빙에 필요한 자질로 ‘뚝심’을 꼽는다.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4~5시간씩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빈이는 자격증 시험과 대회가 있을 때마다 남다른 근성을 발휘했다. 매일 학원에서 6~7시간씩 연습했다. 팔뚝과 손에 근육통이 생기고, 손가락 끝이 갈라지기도 했다. 어른들은 칼을 계속 쥐면 굳은살이 박이지만, 어린 수빈이의 피부는 약해서 쉽게 찢어졌다. 당근을 붙일 때 쓰는 접착제가 손에 달라붙어 지문이 거의 떨어져 나간 일도 있다. 수빈이는 상처 난 손가락에 골무를 끼고 용 만들기에 집중했다.

“이것 보세요. 아직도 손끝에 상처가 남아 있어요. 그래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재밌으니까요! 용 만들기가 진짜 어려워요.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도 불어넣어야 하고, 머리·몸통·다리 비율도 맞춰야 하고, 세워야 하니까 균형감도 중요해요. 시험 볼 때는 용 한 마리를 네 시간 안에 완성해야 해요. 처음에는 머리 조각하는 데만 두 시간 걸렸어요. 근데 연습 삼아 머리만 40개 정도 만들고 나니까 40분이면 완성할 수 있게 됐어요. 그다음에는 발을 40개 만들고 몸통도 만들고…. 두 달 정도 훈련했더니 용 한 마리를 세 시간에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이 당근 세 개로요!”
	(왼쪽부터) 무로 만든 물고기, 당근 돌고래, 수박에 새긴 캐릭터 ‘람머스’.
(왼쪽부터) 무로 만든 물고기, 당근 돌고래, 수박에 새긴 캐릭터 ‘람머스’.
엄마가 끓인 국에 '당근 꽃 퐁당!

평소 수빈이는 장난을 좋아하는 평범한 초등학생이다. 집에서도 가족이 먹을 음식 재료로 엄마 몰래 장난을 치고는 한다. “엄마가 저녁을 하려고 준비해 놓은 당근이나 무로 꽃을 만들어요. 근데 그러면 엄마한테 혼나요. 가족들이 먹을 거랑 장식은 다르다면서요. 그래도 국 안에 몰래 채소 꽃을 넣고 휘적휘적 저어요. 엄마가 ‘너 뭐해?’ 하면 음식 탈까 봐 젓고 있던 거라고 해요. 히히.”

수빈이가 “조각하다가 배고파서 몰래 재료를 집어 먹을 때도 있다”고 고백하자 듣고 있던 카빙 선생님이 한소리 했다. “수빈아, 그러면 안 돼! 제가 항상 중간에 먹지 말라고 일러요. 습관이 잘못 들면 나중에 대회에 나가서 자기도 모르게 음식을 입으로 가져갈 수 있거든요. 재료에 침이 튈 수도 있고, 보기에도 안 좋잖아요. 수빈이 알겠지? 나중에 끝나고 먹어.”

수빈이는 앞으로 봉황·공작·독수리 같은 웅장한 작품을 배울 생각에 부풀어 있다. 최종 꿈은 ‘푸드카빙하는 경찰관’이 되어 세상에 빛을 밝히는 것이란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 ‘로보캅 폴리’를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장래 희망이 경찰관이에요. 경찰이 돼서도 푸드카빙은 계속할 거예요. 소외된 어린이들한테 이렇게 재밌는 푸드카빙을 가르쳐 주면서 바른길로 인도하고 싶어요!”
	[이 어린이] 푸드카빙 마스터  박수빈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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