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취재] '시속 1000km 꿈의 열차' 하이퍼튜브 실험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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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1.17 06:00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는 진공관
눈 깜짝하기도 전에…
'열차'는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최근 시속 1000km 주행에 성공한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하이퍼튜브 축소형 시험 장치.
최근 시속 1000km 주행에 성공한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하이퍼튜브 축소형 시험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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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 설 연휴 첫날. 조선이는 부산에 계시는 할머니 댁에 가려고 엄마, 아빠와 기차 역으로 향했다. 부모님이 어렸을 때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3~4시간씩 걸렸다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기차가 출발하자 비행기에 탄 것처럼 잠깐 귀가 먹먹해졌다가 돌아왔다. 20분 후, 조선이는 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와 만났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하는 이런 상상이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철도연)은 지난 11일 "초(超)고속열차 '하이퍼튜브'를 축소해 만든 시험 장치가 시속 1000㎞로 이동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이퍼튜브 기술로 시속 1000㎞의 벽을 깬 건 세계 최초다. 지난 12일 시험이 한창인 경기 의왕 철도연을 찾아 그 비법을 물었다.

◇열차가 바퀴 없이 달린다고요?

"하이퍼튜브는 진공* 상태에 가까운 튜브(관) 안에서 비행기보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열차입니다." 김동현 철도연 수석연구원이 기다란 시험 장치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하이퍼튜브를 17분의 1 크기로 축소해 철도연이 독자 개발한 장치다. 이날 시험에서는 총 37.5m의 튜브를 15㎝ 길이의 열차 모델이 달린다.

우리가 아는 열차와 달리 열차 모델에는 바퀴가 없었다. 김 연구원은 "하이퍼튜브는 바퀴 없이 자기부상(磁氣浮上) 원리로 가는 차"라고 했다. 쉽게 말해 서로 같은 극끼리 밀어내고 다른 극끼리 끌어당기는 자석 원리를 이용해 열차를 선로 위에 띄운 다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바퀴가 선로에 닿으면서 생기는 마찰력이 없어 달리는 속도를 더 높일 수 있다.
	튜브 안의 기압이 주변의 1000분의 1(0.001bar) 수준으로 떨어졌다.
튜브 안의 기압이 주변의 1000분의 1(0.001bar) 수준으로 떨어졌다.
◇진공관 속 질주하는 하이퍼튜브

하이퍼튜브는 미국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2013년 처음 제안한 '하이퍼루프'와 비슷한 개념이다. 움직이는 모든 물체는 속도를 낼수록 저항(물체가 움직이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에 부딪힌다. 비행기와 열차는 공기의 저항을 받고, 잠수함은 물의 저항을 이겨내며 이동한다. 하이퍼루프와 하이퍼튜브는 이러한 저항이 없는 진공 튜브를 이용해 열차를 빠른 속도로 날아가게 한다. 공기가 없는 우주에서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시속 2만7500㎞로 움직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테슬라 등 세계 여러 기업이 초고속 진공 열차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속도를 시속 1000㎞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김 연구원은 그 비결을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공기를 막아 다른 나라보다 가장 진공에 가까운 상태를 구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2009년부터 하이퍼튜브 개발에 매진한 철도연은 튜브 안의 기압(공기의 압력)을 주변의 1000분의 1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이는 지상에서 50㎞ 떨어진 높은 하늘의 기압과 비슷한 수치다.
	하이퍼튜브가 상용화됐을 때의 상상도./한국철도기술연구원 제공
하이퍼튜브가 상용화됐을 때의 상상도./한국철도기술연구원 제공
◇전국을 생활권으로 좁히는 미래 교통수단

"발사 준비됐습니다." 그 순간 시험 장치와 연구실 사이에 있는 문이 굳게 닫혔다. 열차 모델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 보니 혹시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 가까이 있다간 다칠 수 있어서다. 시속 1000㎞로 움직이는 모형이 부딪히는 힘은 6t(톤)에 달한다. "3, 2, 1…!" 카운트다운을 마치고 1초 만에 '쿵' 하는 충돌음이 들렸다. 열차 모델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목표 지점까지 도달했다. 이날 시험에서는 시속 1039㎞를 기록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20분 만에 갈 수 있는 속도다.

세계 과학계가 목표로 하는 초고속 진공 열차의 주행 속도는 시속 1200㎞다.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국제선 항공기가 1시간에 800~1000㎞를 이동하니 비행기보다 빠른 셈이다. 실제 크기가 아닌 축소형 모형으로 한 시험이었지만 '꿈의 1000㎞'를 넘는 하이퍼튜브 원천 기술을 증명했다는 의미가 크다. 철도연은 앞으로 실제 사람이 탈 수 있는 하이퍼튜브 차량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나희승 철도연 원장은 "전국의 주요 도시를 짧은 시간에 이동할 수 있는 하이퍼튜브는 지역 통합을 가속화할 새로운 교통수단"이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초연결 미래 사회를 앞당길 것"이라고 했다. 

*진공(眞空): 물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공간. 공기가 거의 없는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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