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노인은 나라의 희망...제약·바이오는 미래의 반도체"…25년 전 이건희 회장이 그린 미래, 월간조선 단독입수 육성 테이프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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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1.18 06:00 / 수정 : 2020.11.20 09:09

	월간조선은 현명관 전 삼성그룹 비서실장이 보관하던 '이건희 회장 업무지시 녹음테이프' 40개(17시간 분량)를 단독 입수, 17일 자로 발간된 '월간조선 12월호'에 특종 보도했다. /월간조선 제공·조선일보DB
월간조선은 현명관 전 삼성그룹 비서실장이 보관하던 '이건희 회장 업무지시 녹음테이프' 40개(17시간 분량)를 단독 입수, 17일 자로 발간된 '월간조선 12월호'에 특종 보도했다. /월간조선 제공·조선일보DB
"노인과 아이들을 중요시하지 않는 나라는 망하게 돼 있어. 젊은 사람들이 전부 도망가 버린다고." "제일 무서운 사람은 회장도 대통령도 아닌 소비자, 국민이야."

지난달 25일 세상을 떠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25년 전 육성 녹음 테이프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다. 월간조선은 현명관 전 삼성그룹 비서실장이 보관하던 '이건희 회장 업무 지시 녹음테이프' 40개(17시간 분량)를 단독 입수, 17일 자로 발간된 '월간조선 12월호'에 특종 보도했다.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가 쓴 보도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그룹의 목표와 회장의 경영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은 임원과 일반 직원들인데, 회장에서 비서실-사장-임원-직원으로 전달되는 동안 뜻이 왜곡돼서는 곤란하다"며 "내 얘기와 지시, 회의 내용을 그대로 녹음해서 직원들 앞에서 틀어주라"고 지시했다. 이 전 회장은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내용으로 알려진 '삼성 신경영'을 발표한 후 경영 방식, 인사(人事), 조직 등을 대거 혁신했다. 이 무렵 현명관 당시 삼성건설 사장을 비서실장에 임명, 삼성의 완전한 변화를 수행토록 했다.

이건희 전 회장은 당시 소니(Sony)의 최첨단 음향기기이던 DAT(Digital Audio Tape) 플레이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측근과 가족들에게도 이를 사용하도록 했다. 테이프 내용은 이건희 회장의 업무 지시가 상당 부분이지만 그 외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고민과 우려, 범(汎)삼성가에 대한 고민 등이 포함돼 있다. 또 녹음테이프에는 이건희 회장과 현명관 비서실장이 신경영 3년간 혁신과 세계 일류 기업 달성을 위해 혼신을 다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월간조선 측의 협조를 받아 관련 내용을 소개한다.
	1993년, 51세의 이건희 회장.
1993년, 51세의 이건희 회장.
세계 일류 기업 집중, 人事 중시

이 전 회장은 세계 일류 기업 만들기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그는 "삼성은 삼성다운 걸 하면서 세계 일류, 고부가가치를 만들어야 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들 5년 후 10년 후에는 뭘 할지 걱정은 하고 있나? 각 팀 각 부서에서 매일 걱정해야 돼. 시뮬레이션은 하고 있나? 생각해본 적도 없는 거 아냐? 일본 일류 회사들은 직급별로 내년에 뭘 할지를 다 파악하고 있어. 우리는 사장 중역들도 내년에 뭘 할지 모르고 있단 말이야"라며 미래를 내다볼 것을 주문했다.

이 전 회장은 임원 상여금 차별화, 고졸 사원 승진 기회 확대 등 인사 문제 해결에도 직접 나섰다. 그는 "사람이 제일 중요해. 절대로 파벌 만들면 안 돼. 사람은 주기가 있어서 잘될 때가 있고 안될 때가 있는 거야. 잘될 때 이쁘다 하고 안될 때 밉다 하고 이런 거 하지 말라고. 실수하면 바로 바꿔버리고 그러면 사람이 클 수가 있나. 인간이 일 년에 석 달 꽃피지 못해"라며 한번 믿은 사람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신뢰를 당부했다. 이 전 회장은 학력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취지로 "고졸 중 실력 있는 이는 정직하게 올려주자고. 과장이든 부장이든 이사든 달아줄 수 있어야 돼"라고도 했다.

미래를 내다본 이건희

이 회장은 임직원들의 복지 향상과 미래 세대 육성도 주문했다. 그는 "회사는 임직원 의식주, 건강, 자식 교육 이런 걸 회사의 영역으로 갖고 와야 돼. 희망이 있어야 되고 자식이 잘 자라줘야 되고 부모가 편안해야 돼"라며 "노인과 아이들을 중요시하지 않는 나라는 망하게 돼 있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사업이나 공장을 할 때마다 노인정, 탁아소 만들라는 게 그 얘기야"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25년 전부터 제약업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의료산업은 21세기에 꽃이 필 거야. 지금은 의료산업이 적자라 하지만 소득이 올라가면 의료비가 국방비같이 자꾸 올라가게 되거든"이라며 "생산으로 돈을 버는 건 메모리(반도체)가 마지막일 거야. 미래를 보지 않고는 크게 돈 벌 수 있는 게 없어. 특히 길게 보고 준비해야 할 건 제약산업"이라고 내다봤다. 이 전 회장은 독일이나 이탈리아, 스위스 국적의 세계적 제약회사 인수도 고려해볼 것을 지시했다.

이번에 월간조선이 공개한 이 전 회장 육성 테이프는 25년 전 세계 초일류 기업의 초석을 마련한 50대 초반 이건희 전 회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래를 내다본 이 전 회장은 물 부족 현상 등 환경 문제에도 남다른 관심을 쏟았다. 그는 "21세기를 대비하는 입장에서 물이 얼마나 중요한데. 국제화가 되면서 농촌도 변화가 생길 거고 에너지와 물은 엄청나게 더 중요해질 거야"라며 "이런 거 배우는 해외 시찰에도 돈 좀 쓰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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