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슈트와 하나 된 선수들 신체 장애 극복하고 '뚜벅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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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1.20 06:00

[현장] '사이배슬론 2020 국제대회'

카이스트팀 金·銅 쾌거
착용형 로봇 '워크온슈트4'
속도 빨라지고 무게 줄여
계단·경사로 등 무사 통과
	지난 13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사이배슬론 2020 국제대회'에서 이주현 선수가 '워크온슈트4'를 착용하고 험지 코스를 통과하고 있다. /대전=조현호 객원기자
지난 13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사이배슬론 2020 국제대회'에서 이주현 선수가 '워크온슈트4'를 착용하고 험지 코스를 통과하고 있다. /대전=조현호 객원기자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된 장애인이 로봇 슈트를 입더니 두 발로 우뚝 선다. 성큼성큼 걸어가 좁은 길을 지그재그로 통과하는가 하면 계단도 오르내린다.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지난 13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사이배슬론 2020 국제대회' 현장이다.

이 대회는 신체 일부가 불편한 장애인들이 로봇을 착용하고 장애물을 넘으며 기량을 겨루는 국제 올림픽이다. 공경철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팀은 두 다리를 감싸는 외골격 로봇인 '워크온슈트4'를 개발, '착용형(웨어러블) 로봇' 부문에 출전해 금메달과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미국·스위스 등 기술력이 쟁쟁한 8국의 연구팀을 제치고 얻은 성과다. 대회는 올해 5월 스위스에서 열릴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일정을 연기하고 각 나라에서 분산 개최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스위스 주최 측에서 실시간으로 상황을 확인했다.
	김병욱 선수
김병욱 선수
로봇과 한 몸 돼 장애물 통과!

"오랜 시간 준비한 프로젝트가 오늘 비로소 막을 내립니다. 로봇이 얼마나 발전했고, 사람이 얼마나 로봇을 편하게 탈 수 있는지 지켜봐 주세요!"

경기 시작 전, 선수로 출전한 김병욱(46)·이주현(20·이화여대)씨가 결의를 다졌다. 하체 마비 장애인인 두 선수는 지난 2월 최종 선수로 선발돼 훈련을 이어왔다. 휠체어에 앉아있던 선수들은 각자 몸에 최적화된 '워크온슈트4'를 착용했다. 로봇에 부착된 벨트로 허리와 허벅지, 무릎, 발목을 단단히 고정했다. 공 교수는 "마치 킹크랩 껍데기와 속살처럼, 딱딱한 로봇과 사람이 완전히 한 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양손에 지팡이(클러치)를 짚고 일어섰다. 오른쪽에는 로봇을 조종하는 장치가 달렸다. 액셀, 브레이크 버튼을 누르면 무릎·발목 등 관절 부분에 달린 모터가 움직인다. 하체에 아무 감각이 없는 장애인도 로봇에 의지해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

주어진 미션은 ▲소파에서 일어나 컵 쌓기 ▲장애물 지그재그 통과하기 ▲험지 걷기 ▲계단 오르내리기 ▲옆 경사로 지나가기 ▲경사로와 문 통과하기 등 총 6개. 걷다가 휘청해서 다른 사람이 부축해주거나, 한 코스라도 건너뛰면 감점이다. 다양한 장애물을 자유자재로 넘을 수 있는 기술력과 선수의 기기 운영 능력 모두 중요하다.

선수들은 각각 세 번 도전해 가장 빠른 기록으로 순위를 가렸다. 최고 기록은 두 선수 모두 3차 시도에서 나왔다. 김 선수는 3분 47초를, 이 선수는 5분 51초를 기록해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공 교수는 "근력이 강한 남성과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이 동시에 메달을 땄다"며 "(체격 조건이) 다른 두 명이 좋은 결과를 얻음으로써 기술의 우수성을 증명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주현 선수가 네 번째 코스인 계단에서 내려 오고 있다. 선수의 관절에 밀착된 모터가 무릎과 발목을 구부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주현 선수가 네 번째 코스인 계단에서 내려 오고 있다. 선수의 관절에 밀착된 모터가 무릎과 발목을 구부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존보다 속도 빨라지고 무게는 줄고

공 교수 팀과 김 선수는 4년 전 열린 첫 번째 사이배슬론 대회에도 출전했다. 당시에는 3위에 그쳐 동메달을 땄다. 이후 연구팀은 기술을 크게 향상시켰다.

이번에 선보인 워크온슈트4의 보행 속도는 8배 이상 빨라져 1분에 최대 43m를 걸어갈 수 있다. 비장애인과 비슷한 속도다. 착용자의 피로감도 대폭 개선했다. 이전에는 착용자가 약 30㎏에 이르는 로봇 무게를 감당해야 해 오랜 시간 착용하기 어려웠다. 이번 모델에서는 무게 중심을 인체 균형에 맞춰 체감 무게를 줄였다.

사람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알고리즘도 적용됐다. 로봇을 착용하고 30보 이상 걸으면 로봇이 보행 패턴을 인식해 ‘사용자 맞춤 보행 모드’를 제공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비상 알고리즘’이 발동한다. 착용자가 힘이 빠져 주춤하면 이를 감지하고 자동으로 운행을 멈춘다. 대회 당일에도 이 선수가 비탈을 오르다가 휘청거리자 로봇은 이 선수가 정상 상태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연구팀의 다음 목표는 더 많은 장애인이 로봇을 입고 걸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 교수는 “현재 기술 수준이면 하체가 완전히 마비된 장애인이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 수 있다”며 “이제는 로봇 이용자에 대한 지원 제도, 보험 정책 등 사회적 여건이 마련될 차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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