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거름이 무척 귀했어. 거름은 농사를 지을 때 반드시 필요해. 땅을 기름지게 해 주고 농작물을 쑥쑥 자라게 해 주니까 말이야.
옛말에 '거름 한 지게가 곡식 한 지게'라는 말이 있어. 거름을 많이 주면 곡식을 더 많이 거둘 수 있다는 뜻이지. 거름을 만들기 위해 옛사람들은 노력을 많이 기울였어.
여름에는 산에 올라가 베어온 풀을 썩혀서 퇴비를 만들었지. 그런데 똥 한번 다른 데서 누고 와 봐. 그만큼 거름이 없어지는 게 아니겠어? 혼날 만하지. 어른들이야 똥이 마려워도 꾹 참고 집에 와서 볼일을 볼 수 있지만, 아이들이야 어디 그래? 아무 데서나 마려우면 똥을 누게 된단 말이지. 그러면 집에 와서 혼이 나. 남의 집 거름만 보태 주고 왔다고 말이야.
얼마나 똥을 귀하게 여겼느냐 하면, 옛날 사람들은 남의 잔칫집에 가서 먹고 마시다가도 똥이 마려우면 먼 집까지 어떻게든 걸어와서 일을 봤다고 해. 그런데 이 똥이란 것이 마려운 것을 참고 참다가 보면 똥구멍이 막혀 버려. 요즘에야 이런 걸 변비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그저 똥구멍이 막혔다고 했지. 하여간 그렇게 참다 똥구멍이 막힌 사람이 수두룩했어.
더 재미있는 것은 마을에서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똥에 더 인색했다는 것이지. 개똥도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을 그냥 못 봤어. 그래서 아침마다 망태기 하나씩 메고 길바닥에 널린 개똥을 주우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어. 그런데 꼭 그렇게 개똥을 주우러 다니는 사람이 마을에서는 제법 산다는 사람이었거든.
개똥뿐만 아니라 소똥이든 뭐든 거름이 될 만하다 싶으면 무엇이든 주워서 거름더미 위에 던져둬. 그리고 소가 있는 외양간에는 지난해 농사짓고 생긴 짚을 깔아 주지. 소가 밟고 오줌 누고 똥 누고 해서 이 짚이 축축하게 젖고 소똥 범벅이 되면 이걸 끌어내다가 거름더미를 만들어. 그럼 거기에 던져넣은 개똥이랑 똥재가 섞여 발효되고 나중에는 훌륭한 거름이 된단다.
어때? 우리 옛사람들은 이렇게 똥을 더럽다 생각하지 않고 귀하게 대접했어.
똥구덩이 만들기
할아버지도 어릴 때는 개구쟁이 짓을 해서 많이 혼이 났단다. 똥을 가지고 개구쟁이 짓을 하다 혼난 이야기 들려주마.
요즘이야 웬만한 길은 딱딱한 콘크리트로 다 덮여 있어서 함부로 파헤칠 데가 없지만, 옛날에는 길이 모두 흙바닥이었단다. 흙길 위에 돌부리가 삐죽 솟아올라 있어서 까닥하다간 돌부리를 걷어차고 꼬꾸라지기 일쑤였지. 아이들이야 엎어지면 그냥 일어나서 무릎의 흙이나 툭툭 털면 그만이지만 어른들은 그게 아니었어. 어른들은 지게를 많이 지고 다녔거든. 지게 위에 곡식이나 거름, 무거운 물건을 얹어서 져다 나르는 거지. 그러니 길바닥에 꼬꾸라지면 큰일이란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일이야. 할아버지도 너희만 할 땐 무척 개구쟁이였거든. 어느 날은 '무슨 재밌는 일 없나' 생각하다가 일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지. 동네 또래 아이 녀석을 골릴 생각을 한 거란다. 그래서 녀석이 잘 다니는 동네 길 한가운데를 낑낑대면서 팠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제법 발이 쑥 빠질 만한 구덩이를 팠어. 그리고 집으로 가서 똥바가지에다가 똥을 가득 떠와서 구덩이에다가 부어 넣었지.
그러고는 그 위에 짚을 살짝 깔고 나서 아까 파낸 흙을 살살 덮어 두었어. 친구 녀석 골릴 생각에 혼자 낄낄대느라 냄새가 나는 줄도 모르고 말이야. 그런 다음에 멀리 수풀 속에 숨어서는 지켜보는 거야. 이제나저제나 친구 녀석이 그 길로 지나가다가 똥구덩이 속에 빠지기를 기다리면서 말이지.
그런데 어쩐 일인지 늘 나타나던 녀석이 오늘따라 나타나지 않는 거야.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집에서 일을 도와주던 아저씨 한 분이 지게에다 거름을 잔뜩 지고 대문을 나오더구나. 그러더니 미처 내가 말릴 틈도 없이 그만 똥구덩이에 한쪽 다리가 푹 빠지면서 앞으로 꼬꾸라졌어. 그랬으니 어째? 지고 있던 거름이 쏟아져 쓰러진 몸을 덮었지. 숨어 있던 나는 나가지도 못하고 솟아오르는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써야만 했단다.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참아야 했지.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키득키득 웃고 말았단다.
쓰러진 아저씨가 내가 숨어 있는 쪽을 힐끔 바라봐. 그러더니 말없이 지게를 일으켜 세우고 거름을 다시 실어서 내가더구나.
그리고 어떻게 됐냐고? 그날 저녁에 집에 들어갔다가 엄마에게 잔뜩 혼이 났단다. 눈물이 쏙 빠지게 말이다. 아마 아저씨가 내 웃음소리를 알아듣고 일러바쳤나 보더구나. 이런 아이들 장난은 예전부터 있어온 일이란다. 내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니야.
이이화·김진섭 글 | 심가인 그림 | 파랑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