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2주년 남산 국치길을 걷다

102년 전 오늘, 한반도 곳곳에 "대한 독립 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일제는 총칼로 막았지만 선조들은 목소리를 유일한 무기 삼아 독립 만세를 외쳤다. 비(非)폭력·평화를 추구하는 3·1운동의 정신은 중국·인도·이집트 등 전 세계 민족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선조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평화적인 독립운동을 펼쳤다. 외교 활동으로 전 세계에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모금을 진행해 나라를 이끌 학생을 가르쳤다. 인도주의 정신을 실현하는 국제기구인 적십자사도 설립했다.

서울 남산 일대는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서려 있는 장소다. 지난달 22일 어린이조선일보 명예기자 임우빈(경기 김포 청수초 6) 군과 정다혜(충남 천안 한들초 4) 양이 역사의 흔적을 찾아 출동했다. 목정하 대한적십자사 인도법연구소 과장이 남산 국치길과 적십자사 일대를 안내했다.

강제 병탄 이뤄진 그때 그 장소

“1910년 8월 29일은 ‘국치일’입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 병탄한 날이죠. 이날 우리는 국권을 잃었습니다.”

목 과장의 설명을 들으며 남산 예장자락 국치길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국치길은 서울시가 2019년 수치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조성한 1.7㎞의 탐방로다. 한국통감관저 터와 조선총독부 터, 조선신궁(朝鮮神宮) 터 등 침탈의 상처가 남아있다. 국치길 바닥에는 ‘ㄱ’자 모양의 보도블록이 곳곳에 박혀있다. 역사를 ‘기억(ㄱ)하겠다’는 의미다.

국치길 초입에는 한국통감관저 터가 있었다. 한·일 강제 병탄 당시 통감이었던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집이 있던 곳이다. “바로 이곳이 친일파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조선과 일본을 합병한다는 문서에 사인한 장소입니다. 조약을 체결하는 데는 30분도 채 안 걸렸다고 해요.” 우빈 군과 다혜 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관저 터 옆에는 모든 과정을 지켜봤을 400년 된 은행나무와 거꾸로 세운 동상이 있다. 을사늑약을 주도한 하야시 곤스케 일본공사 동상이다. 2015년 서울시가 흩어져 있던 동상의 잔재를 모아 ‘치욕을 기억하겠다’는 의미에서 동상을 뒤집어 세웠다.

대한적십자사 별관 옥상에 오르자 국치길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남산을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일제는 그런 남산을 헐고 일본 신(神)을 모시는 신사와 신궁을 지었어요. 조선인에게 신사참배도 강요했죠. 우리의 정신까지 지배하려고 한 겁니다.” 이어 목 과장은 빈터를 가리켰다. “저곳에는 총독부가 있었어요. 그 앞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경복궁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고 해요. 아마 조선을 어떻게 삼킬지 정치적 구상을 했겠죠?”

한국통감관저·조선신궁 터 잇는 역사 탐방로
곳곳에 기록된 일제 만행 설명 들으니 '숙연'
대한적십자회 '영문 화보집' 등 자료도 살펴
"아픈 역사 반복 않으려면 독립 희생자들 기려야"

일제의 만행, 사진으로 알리다

고종은 1905년 대한적십자사를 세웠다. 적십자사는 독립국만이 설립할 수 있는 국제기구였다. 고종은 적십자사를 만들어 대한제국이 독립된 주권 국가임을 알리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1909년 대한적십자사는 일본적십자사에 통폐합된다. 1919년 안창호 등 상해 임시정부 요원들은 국치일에 맞춰 다시 대한적십자회를 설립했다. 하지만 주권국으로 인정받지 못해 최종 승인은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상해 임시정부는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마지막 코스인 대한적십자사 본관 사료전시실에는 당시 활동을 기록한 자료가 남아있었다. “대표적인 활동은 ‘영문 화보집 발간’이었습니다. 52쪽 분량의 사진첩에 3·1운동 탄압, 제암리 학살 등 일제의 만행을 고스란히 담아 미주, 서유럽 등에 배포했죠. 우리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 세계에 알리고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한 겁니다.”

대대적인 모금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조선인은 어려운 형편에도 돈을 냈다.

3·1운동 102주년 남산 국치길을 걷다

조선의 참상을 알게 된 외국인도 모금에 참여했다. 모금액은 가난에 지친 사람들을 돕고, 학생들을 교육하는 데 썼으며, 독립운동 자금으로도 활용했다.

투어를 마친 명예기자들의 표정이 어딘가 결연했다. “제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 사람을 해쳐야 하는 전쟁에는 차마 뛰어들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기꺼이 나라를 위해 봉사하거나 기부를 했을 것 같아요.” (정다혜) “만약 우리가 독립하지 못했다면 지금도 일본어를 쓰고 있을지 몰라요.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독립을 위해 애썼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정신을 기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 생각도, 힘도 없으면 또 침략을 당할 수 있어요.” (임우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