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Gauguin(1848~1903)

자화상 1893년

고갱은 19세기 중후반의 프랑스 화가입니다. 취미로 미술품을 수집하던 주식 중개인이었는데, 시장이 침체돼 직장을 잃자 미술 애호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화가의 길을 택했지요.

고갱은 함께 '후기 인상파 화가'로 꼽히던 반 고흐와 프랑스의 남부 지방인 아를에서 함께 작업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예술에 대한 생각과 성격 차이 때문에 관계는 비극적으로 끝나고 말았지요.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고갱은 프랑스 북서부의 소박한 브르타뉴 지방과 대도시 파리를 오가며 원시 자연을 꿈꿉니다. 결국 남태평양에 있는 타히티섬으로 향했지요. 아쉽게도 고갱은 외로움과 향수병 때문에 2년 만에 파리로 돌아오게 돼요. 섬에서 그린 그림이 미술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자 다시 타히티섬으로 떠나 병과 가난에 시달리며 죽을 때까지 원주민들의 삶을 그렸습니다. 오늘날에는 그곳에서 그린 그림 대부분이 높은 평가를 받으며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지요.

설교 뒤의 환상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888년

‘설교 뒤의 환상’은 성서에 나오는 야곱과 천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제목처럼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나서 떠오른 상상을 그렸다고 해요. 고갱이 종교적 주제로 그린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림에는 현실과 상상이 뒤섞여 있어요. 먼저 붉은 땅 위에서 야곱과 천사가 벌이는 결투는 성서 속에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그림 왼쪽부터 하단에 있는 사람들, 즉 싸움을 구경하거나 손을 모아 기도하는 여성들은 모두 브르타뉴의 전통 의상을 입은 현실의 사람들을 나타낸 것이지요.

고갱은 순박한 브르타뉴 농민들의 성실함과 두터운 신앙심에서 영감을 받아 ‘설교 뒤의 환상’ ‘황색 그리스도’와 같은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고갱이 살았던 19세기 말에는 상징주의 사조가 활기를 띠었어요. 일상의 풍경이나 사물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 사랑, 환상, 신비처럼 구체적인 모습을 지니지 않은 것들을 다른 대상에 비유해 표현하는 미술 양식이지요. 그림을 시작한 초기에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고갱은 차츰 상징주의 작품을 내놓게 됩니다. 그래서 고갱을 상징파 화가로 보기도 한답니다.

황색 그리스도 1889년

고갱은 고흐와 헤어지고 브르타뉴 지방의 퐁타방이라는 곳으로 가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때 ‘황색 그리스도’가 탄생했지요.

멀리 퐁타방 마을과 언덕이 보입니다. 그림 앞쪽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있고, 주변에는 브르타뉴 지방의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 세 명이 있어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모습은 교회당의 십자가상을 보고 그린 것인데 어쩐지 성스러운 예수상이라기보다는 브르타뉴 지역의 순박한 농민처럼 느껴집니다.

이 시기 눈에 보이는 현실과 상상이 뒤섞인 풍경을 즐겨 그린 고갱은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종합적’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이 작품도 영적 세계의 예수 그리스도와 현실 세계의 여인들을 한 그림에 종합적으로 담아냈지요. 고갱이 타히티섬으로 떠나기 전에 그린 작품 중에 최고로 꼽히는 그림이 바로 이 ‘황색 그리스도’ 입니다.

● 구름서재 ‘미술관 놀이터: 100편의 명화와 함께하는 미술감상과 창작놀이’(이일수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