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some hidden surprise in here. We can just pop it open. Oh! look at this cute, teeny-tiny key."

유튜브 채널 '현서 아빠네 영어TV'의 주인공 배현서(경기 용인 남곡초 3) 양이 생일 선물로 받은 장난감을 뜯어보며 영어로 종알거린다. 또 다른 영상에선 유창한 발음으로 재밌게 읽은 영어 소설을 소개한다. 현서는 평소 원어민 선생님과 막힘없이 대화를 나누고, 디즈니 영화도 한국어 자막 없이 이해할 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현서가 지금껏 학원이나 집에서 영어를 따로 '학습'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영어 유치원을 다녔거나, 영미권 국가로 조기 유학을 갔다 온 것도 아니다. '토종 한국인' 현서의 영어 비법은 무엇일까.

지난 2일, 경기 성남에서 만난 현서는 "모두 유튜브 덕분"이라며 웃었다. 어릴 때부터 영어로 된 유튜브 영상을 보며 자연스럽게 언어를 체득(體得)했단다. 그런 현서에게는 "영어를 어떻게 배웠느냐"는 질문이 가장 어렵다. 영어를 '공부'했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현서 아버지 배성기(44)씨는 지난해 말 '현서네 유튜브 영어 학습법'이라는 책을 내고, 두 달 전부터 유튜브 채널에 딸과 함께 관련 영상을 본격적으로 올리고 있다. 부녀(父女)의 영어 비결을 듣기 위해 몰려든 구독자만 1만3000여 명에 달한다.


"비결은 인내… '겨울왕국' '인사이드 아웃' 60번 넘게 봤어요"

"현서가 세 살 무렵 처음 유튜브를 보여줬어요. 영어판 뽀로로, 미키마우스 클럽하우스 등 아이가 넋을 놓고 볼 만큼 재밌어하는 애니메이션 위주로요."

현서는 한국어도 서툰 나이에 영어 유튜브를 접했다. 4살 때부터는 매일 하루 1시간씩 꾸준히 유튜브를 봤다. 배씨는 "현서가 재밌어하는 영상을 일정 시간 틀어주는 것 외에는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사이 '영어 암흑기'는 있었다. 일곱 살이 될 때까지 현서의 영어 실력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배씨는 "재촉하거나, 영어를 해보라고 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고 말했다. 'Yes, No' 정도만 겨우 내뱉던 현서의 입이 트인 건 일곱 살 이후다. 현서는 "어느 날 갑자기 영상을 볼 때 모르는 단어가 줄어들고, 영어가 잘 들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영어 실력은 갈수록 늘었다. 현재 현서는 어려운 과학 이론이 나오는 영화 '인터스텔라'와 복잡한 줄거리의 '어벤져스' 시리즈도 한국어 자막 없이 이해할 수 있다. 영어 잘하는 아이로 소문나면서, "영어를 어떻게 배웠는지 알려달라"며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생겨났다. 현서가 말하는 비결은 '인내(忍耐)'다.

"언어 실력은 노출량에 비례… 입문용으로 언박싱 영상 추천해요"

"영어 영상을 볼 때 이해 안 가는 부분은 참고 넘어가요. 계속 반복하다 보면 언젠간 들릴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죠. 물론 어려운 영어 영상을 처음 접할 땐, 우리말 더빙 버전과 영어 버전을 반복해서 봐요. '이때 주인공이 한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이해할 수 있죠. 익숙해지면 영어로만 시청해요. '겨울왕국' '인사이드 아웃' 등 좋아하는 디즈니 영화는 60번 넘게 봤어요."


"활용 원칙만 잘 지키면 유튜브는 최고의 선생님"

배씨는 "유튜브만으로 원어민 부럽지 않은 영어 실력을 쌓을 수 있다"고 말한다. 솔깃한 얘기다. 영어 유치원이나 조기 유학을 보낼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 있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그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교육적인 영상만 보여줄 필요 없다"며 "유해한 콘텐츠만 아니라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상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권했다.

"언어 실력은 노출량에 비례해요. 굳이 영어 공부하겠다고 해외에 갈 필요 없어요. 요즘엔 유튜브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로 언제든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답니다."

미디어 중독 등 부작용 때문에 자녀에게 유튜브 보여주기를 꺼리는 부모도 많다. 이에 대해 배씨는 "기본적인 규칙만 정한다면 유튜브는 최고의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서는 거실에 설치된 TV로 유튜브를 시청한다. 시청 시간도 '1시간'으로 사전에 약속했다. 배씨는 "유튜브나 게임 등 한 가지에 중독되는 아이들은 사실 그것 말고는 재밌는 게 없어서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현서 역시 "영어 실력이 늘수록 유튜브 외에 재밌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영어를 잘하면 참 쓸데가 많아요. 좋아하는 영어 소설과 우리말 소설을 동시에 섭렵할 수 있죠. 요즘엔 컴퓨터로 PPT와 게임을 만들고 있어요. 이때 외국 웹사이트를 많이 참고해요. 인터넷에서 영어를 활용하면 많은 정보를 훨씬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답니다."


"미래에 하고 싶은 일 하려면 영어 필수"

요즘 현서는 넷플릭스에 푹 빠졌다. 미국 과학 다큐멘터리 '브레인차일드'나 요리쇼 '파티쉐를 잡아라' 등 다양한 분야의 영어 콘텐츠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최근엔 판타지 영화 '나니아연대기'와 '트와일라잇'을 한국어 자막 없이 봤다.

"아직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친구라면 유튜브에서 '언박싱(unboxing·새 상품을 개봉하고 사용해 보는 것)' 영상부터 찾아보길 추천해요. 감탄사 위주의 쉬운 표현이 대부분이라 알아듣기도, 따라 말하기도 쉽거든요. 그다음 과학, 판타지, 만화 등 각자 가장 좋아하는 분야부터 차근차근 도전해봐요."

올해 3학년이 된 현서는 며칠 전 처음으로 영어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몇 년째 혼자서 영어를 익히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배씨는 "초등학교 3~6학년은 영어 영상 노출과 학습을 병행하면 가장 효과가 높을 시기"라고 강조했다. 어느 정도 영어에 익숙하다면 학원이나 학습지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또 "학년이 올라갈수록 영어 영상 노출과 학습의 비율을 8대2, 7대3 정도로 아이 성향과 환경에 맞게 조정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현서의 장래 희망은 세 가지. 영화감독, 소설가, 일러스트레이터다. 현서는 "어떤 꿈이든,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영어는 필수"라고 말했다.

"영화감독이 되면 외국인 배우와 마음껏 소통하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거예요. 작가가 돼 영어로 된 작품을 발표하면 전 세계 독자가 더욱 쉽게 찾아 읽을 수 있겠죠? 어떤 직업을 택하든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과 나만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어요. 영어를 즐긴다면, 꿈을 이루기 더 쉽지 않을까요?"

현서가 어린이조선일보 독자에게 전하는 영어 팁

현서처럼 3세 때부터 영어에 노출되지 못했다면 때를 놓친 걸까. 배씨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현서 역시 “지금껏 문법이나 단어는 제대로 공부해 본 적 없다”며 “처음엔 관심사에 맞는 영어 유튜브 채널을 보며 영어에 흥미를 느끼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현서가 전하는 영어 팁을 소개한다.

A 아직 영어가 낯선 친구라면 알파벳과 친해지는 게 먼저야! 장난감·게임·애니메이션 등 흥미로운 영상 위주로 영어를 접해봐. 이때 한국어 자막은 끄는 게 좋아. 들리든, 안 들리든 일단 영어에 귀를 기울여보는 거야. 그다음 한국어 자막과 비교해서 들어봐! 꾸준히 반복하면 언젠간 입과 귀가 트이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어.

B 일단 영어로 된 영상을 틀긴 틀었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답답해도 그 순간을 참고 넘어가는 게 중요해. 같은 문장을 수십 번 반복해서 듣다 보면 점점 뜻이 이해되는 문장이 많아질 거야.

C 영어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면 유익한 내용이 담긴 학습 콘텐츠에 도전해봐. 세계적인 교육 강연 프로그램인 ‘테드 에드(Ted Ed)’와 과학적 호기심을 해결해주는 유튜브 채널인 ‘블리피(Blippi)’, 미국 교과목을 배울 수 있는 ‘칸 아카데미(Khan Academy)’ 등 다양한 영어 콘텐츠가 있어. 영어도 공부하고, 지식도 쌓을 수 있지.